롯데 마린스 이승엽의 방망이에 드디어 불이 붙었다. 일본 언론은 이를 두고 힘, 기술, 두뇌 3박자가 낳은 예술 작품으로까지 평하고 있다.그러나 이승엽의 불방망이 맹공을 저지하려는 일본 투수들의 필사적인 저항도 만만치 않다. 인코스 공으로 시작된 위협이 본격적인 몸쪽공략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승엽(28·롯데 마린스)이 지바마린스 스타디움에서 열린 니혼햄과의 홈경기 2차전에 4번지명타자로 출전, 2회말 첫 타석에서 중견수 앞 안타를 날려 3경기 연속안타행진을 이어갔다. 엄청난 힘으로 비거리 논쟁을 불러일으킨 150m짜리 장외포, 절정의 타격 기술과 상대의 수를 읽는 지략을 선보인 125m짜리 2호 홈런까지. 일본은 한국서 온 홈런킹 이승엽으로 인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아시아 홈런킹’이 새롭게 ‘일본 야구사’를 쓰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이다.

‘승짱열풍’을 일으키며 열도정복을 향해 한발 한발 나가고 있는 이승엽의 성공비결에 대해 전문가들은 힘, 기술, 두뇌 등 3박자가 어우러진 이승엽의 빠른 적응력에서 해답을 찾고 있다. “직구를 노렸지만 변화구를 쳤다. 센터 쪽으로 친다는 생각으로 스윙을 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파울이 됐거나 높이 뜨는 타구가 됐을 것이다.” 이승엽(롯데 머린스)이 지난 5일 일본햄 파이터스와의 홈경기에서 6회 우월 솔로홈런을 친 뒤 밝힌 내용이다. 이승엽은 일본햄의 오른손 선발투수 이와모토가 던진 110㎞짜리 커브를 마치 알고 있었다는 듯 완벽하게 걷어올려 시즌 2호 홈런을 만들었다. 일본 언론은 “이승엽의 1호 장외홈런은 적절한 타이밍과 배트스피드, 힘이 만든 걸작이고 2호는 중심이 앞으로 쏠려 균형이 무너지는 상황에서도 완벽한 배트 컨트롤로 만든 기술의 홈런”이라고 격찬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승엽의 1호 장외홈런을 지켜본 다이에의 오 사다하루(왕정치)감독은 “어려운 코스의 공이었다. 파울이 돼야 하는 공을 페어지역으로 보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며 이승엽의 타격기술에 찬사를 보냈다.2호 홈런을 허용한 니혼햄 이와모토 쓰토무는 “노려 치지 않고는 절대 홈런을 만들 수 없는 커브였다”고 혀를 내둘렀다. 결승타 3번을 포함, 팀 승리에 결정적인 역할을 맡고 있는 이승엽의 활약에 따라 롯데의 우승 전략도 바뀌고 있다. “이렇게 빨리 일본 야구에 적응할 줄 몰랐다”는 보비 밸런타인 감독의 말은 이승엽의 일본 적응이 끝나가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그 이유로 우선 일본 투수의 구질과 볼 배합에 빠르게 적응하고 있는 점을 들 수 있다. 1호 홈런은 145㎞짜리 몸쪽 높은 직구를 잡아당긴 것이다. 2호 홈런은 가운데 낮게 떨어지는 110㎞짜리 커브였다.

이 밖에도 직구. 체인지업 등 다양한 구질을 공략해 안타를 만들고 있다. 시범경기 초반 “변화구가 까다롭다”며 고개를 젓던 모습과는 딴판이다. 이승엽은 배팅 포인트가 몸에 가까운 편이다. 공을 최대한 몸쪽으로 끌어놓고 친다는 말이다. 이와 동시에 그동안의 훈련을 통해 밀어치기에도 능해졌다. 이는 일본 야구의 까다로운 변화구를 쳐낼 수 있는 비결로 작용하고 있다. 여기에 자신있는 스윙까지 더해져 실투를 놓치는 실수도 줄고 있다. 일본 현지 언론에서는 벌써 일본 야구의 새 역사가 씌어질 것이라는 예상을 내놓고 있다. 스포츠 전문 일간지인 ‘닛칸 스포츠’는 “이승엽이 빠르게 적응하고 있어 올해 홈런을 35개 이상 쳐낼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런 이승엽의 선전을 견제하듯 일본 투수의 물불 안 가리는 몸쪽 견제구도 심상치 않다. 일본 투수들의 ‘무례한’ 몸쪽공은 이승엽의 일본 적응에서 이미 예상되었던 복병. 이승엽은 6일 니혼햄전 7회 타석에서 왼손투수 시미즈 아키오의 초구 몸쪽 143㎞짜리 직구에 오른쪽 엉덩이를 얻어맞고 1루로 걸어나갔다.

일본에 진출한 후 시범경기를 통틀어 처음 몸에 맞았다.이승엽은 이에 앞서 5회 타석에서는 니혼햄 선발 라이언 루프의 초구 144㎞짜리 몸쪽 직구를 휙 돌아서며 가까스로 피했다. 전날까지 이승엽이 이틀 연속 홈런을 터뜨리며 가공할 만한 파괴력을 보이자 본격적으로 몸쪽 공략을 시작했다. 이승엽의 약점으로 꼽혔던 인코스 공에 주눅들지 않고 유연하게 대응하자 강도를 높여 몸쪽에 위협구를 던지기 시작한 것. 우리나라에 비해 일본야구는 몸쪽 공략이 거세다. 98년 6월 23일 나고야돔에서 벌어진 한신전에서 주니치 이종범이 가와지리 데쓰로의 공에 맞고 오른팔 골절상을 입어 선수생활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은 것이 대표적인 예다.타석에서 보통 타자들보다 떨어져서 치는 이승엽은 시범경기 개막 초반에 “몸쪽공으로 나를 맞히면 가만있지 않겠다”며 일본 투수들의 집요한 몸쪽 공략에 단호히 대처할 뜻을 내비쳤다.

선수 생명을 위협할 수도 있기 때문에 묵과할 수 없다는 것. 그러나 유비무환의 뜻을 살려 팔꿈치에는 항상 가드를 하고 있다.지난해까지 16년간 롯데에서 외야수로 활약했고 올해는 TV 해설위원으로 활약하고 있는 오무라 이사오(35)는 “몸쪽 볼로 집중적으로 공략당한다는 것은 이승엽이 상대방에게 위협적인 존재라는 증거다. 연간 10개 정도는 각오하고 나서는 게 좋을 것이다”며 “그렇다고 하더라도 달아나거나 인코스를 의식하지 말고 강한 심장을 갖고 맞닥뜨려야 한다. 인코스를 의식하면 아웃코스를 공략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또 “그러나 가고시마 스프링캠프 때부터 줄곧 지켜본 이승엽으로서는 충분히 그 벽을 넘을 수 있을 것이다. 머리가 좋고 승부욕이 강하며 몸이 강건하기 때문이다”라고 분석했다.한편 1994년 롯데 마린스를 정규리그2위까지 끌어올렸던 보비 밸런타인 감독의 재부임으로 ‘밸런타인 효과’를 기대했던 롯데는 ‘승짱열풍’까지 겹치면서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팀은 초반 돌풍을 일으키며 리그 단독 선두(7승3패)를 질주하고 있다. 스탠드에서는 ‘해변으로 가요’ 등 한국 유행가가 흘러나오고 홈팬들은 한국말로‘날려버려’라는 구호를 목청껏 외치는 등 응원 열기도 고조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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