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월터 감독이 박찬호의 등판 간격은 고무줄 당기듯 늘였다 줄였다 하면서도 9일 선발로 등판한 R A 디키의 5일 등판 간격을 유지해 주기 위해 호아킨 베노아를 선발에서 제외시킨다는 발표를 했다. 이 때문에 박찬호가 선발서 제외되는 것 아니냐는 추측이 나돌고 있는 가운데 벅 쇼월터 감독의 의도를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박찬호(31·텍사스)가 10일(이하 한국시간) 디트로이트와의 홈경기 때 불펜 대기 임무를 맡아 그 진의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중간계투진 고갈에 따른 임시변통인지, 부진이 계속될 경우에 대한 예비책인지 아리송한 분위기다. 박찬호는 이날 경기서 불펜에만 있었을 뿐 실제 마운드에 오르진 않았다. 텍사스는 미국 현지시간으로 낮 1시5분부터 치러진 디트로이트전에 앞서 박찬호에게 불펜 지시를 내린 것으로 확인됐다.

박찬호는 경기 내내 아메리퀘스트필드(구 알링턴볼파크) 외야 우중간에 있는 불펜에 대기해 있었다. 벅 쇼월터 감독은 경기에 앞서 기자들에게 “전날 경기 상황이 이 같은 조치를 만들었다. 가급적 박찬호가 등판하지 않는 상황이 연출됐으면 좋겠다”고 애매모호하게 대답했다.텍사스가 박찬호를 불펜 대기조에 합류시킨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 하나는 텍사스는 전날(9일) 디트로이트전에서 16-15로 대역전극을 거두면서 마무리 투수 프란시스코 코데로를 포함, 6명의 구원 투수들을 소진했다. 따라서 선발 투수가 일찍 무너질 경우 박찬호를 투입하려는 의도로 볼 수 있다. 또 다른 하나는 박찬호가 오는 13일 등판예정인 터라 선발진 중 가장 많은 휴식일을 보내게 된다.

8일 만에 선발 등판하는 박찬호의 컨디션을 조절해 주려는 의도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그러나 여기에는 어딘지 개운치 않은 구석이 있는 게 사실이다. 로저스, 디키의 로테이션 간격을 일정하게 유지해 주는 가운데 박찬호만 들쭉날쭉 등판 일정이 늘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여기에 지역언론 또한 콜비 루이스 등 부상자들이 돌아오는 5월 말을 기해 박찬호의 불펜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일종의 예행연습이 아닌가 하는 의혹을 지우기 힘든 실정이다. 쇼월터 감독은 느닷없이 “임시 선발 투수인 드레스는 싱커볼 투수이다. 싱커볼 투수는 오랫동안 쉬면 안 좋다”며 박찬호의 등판일을 변경한 이유를 댔다. 이로써 지난 5일 탬파베이전에 등판했던 박찬호는 8일 만에 마운드에 오르게 됐고 6일 역시 탬파베이전에 등판해 호투하며 승리투수가 된 우완 드레스(2승 무패, 방어율 2.25)는 6일 만에 출장하게 됐다. 쇼월터 감독은 드레스가 ‘싱커볼 투수’라는 핑계를 내세웠지만 박찬호로선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박찬호는 올 시즌 제1선발 케니 로저스에 이어 제2선발로 시즌을 출발했지만 9일 현재 1승 3패에 방어율 5.50으로 투구 내용이 불안해지면서 자신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등판 순서가 계속 변경되고 있는 것이다. 제1선발 로저스는 5일 로테이션을 보장받으며 에이스 대접을 받고 있는 반면 제2선발 박찬호는 제4선발 R.A. 디키에게 등판 순서에서 밀린 데 이어 이번에는 임시 제3선발인 라이언 드레스에게마저 추월당하고 말았다. 박찬호는 마치 제5선발처럼 등판일이 들쭉날쭉하게 되면서 컨디션 조절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정상 5일에서 6일로 한 차례, 또 6일에서 7일로 한 차례, 그리고 이번에 7일에서 8일로 매 경기 등판 간격이 늘어지고 있다. 박찬호의 불펜 대기는 다저스 시절이던 지난 2001년 9월18일 샌디에이고전 이후 처음. 포스트시즌 진출 여부가 걸려있는 이 경기서 박찬호는 선발 케빈 브라운에 이어 7회 마운드에 올랐으나 아웃카운트 하나도 잡지 못한 채 무사 만루를 만들어주고 마운드를 내려온 바 있다.

다저스와 박찬호의 결별도 이 경기서 비롯됐다. 무려 8일 만의 등판. 박찬호가 제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을지조차 의문이다. 상대는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 꼴찌 팀이지만 방심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박찬호가 이번 탬파베이전서 호투해 승리투수가 되어야만 구겨진 자존심을 회복하는 것은 물론 정상 로테이션 보장과 함께 벅 쇼월터 감독 등 코칭스태프로부터도 다시 존중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평균 연봉 1,300만달러의 팀내 최고 몸값 선수인 박찬호가 점점 궁지에 몰리는 분위기라 13일 탬파베이전 역투가 더욱 절실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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