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미한 주식시장, 급할수록 돌아가라

현대의 삶이 응축된 만큼 어려움과 위기 역시 복잡
주가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 약 500여 가지…예측불가

세상이 점점 복잡해지고 우리의 정신 또한 더욱 번잡스러워지고 있는 느낌이다. 스스로 경험할 수 없었던 과거의 것보다 자신이 몸담고 있는 최근의 것을 더욱 과장되게 느낀다. 이런 소박한 인간심리를 감안하더라도 그 복잡성은 다소 지나친 감이 있다. 사실 과거로부터 현재에 이르는 동안 기록된 여러 지표를 살펴보면 우리가 느끼는 이 번잡함이 단순한 심리적 과장이 아닌 엄연한 현실임을 깨닫게 된다.

지난 1790년 영국에서 석탄 등의 화석연료를 에너지원으로 하는 산업혁명이 일어나기 전까지 거의 2000년 동안 인류의 삶은 지극히 평탄했다. 그 시절의 인류는 태어날 때와 죽을 때 자신을 둘러싼 거의 모든 환경은 다르지 않았다. 여전히 사람들은 옛날과 똑같은 모습으로 농사를 짓고 자식을 교육했고 과거와 거의 흡사한 장송곡을 들으며 무덤에 묻혔다.

자료를 살펴보면 산업혁명 이전 2000년 동안 전세계 일인당 평균 GDP는 450~600달러 정도로 거의 변동이 없었다. 지구 위에서 묵묵히 삶을 꾸려가던 인구 또한 10억~15억 명 정도로 미미한 상승세를 이어왔다. 요컨대 자신의 삶이란 아버지, 할아버지 그리고 그 윗대 조상의 삶과 별반 다를 것 없는 충분히 예측 가능한 삶이었다. 그러던 것이 산업혁명 이후 현재는 일인당 평균 GDP가 6300달러로 거의 10배 이상 급격히 상승했고 인구 또한 70억 명을 돌파했다.

산업혁명 이후의 인간은 선조들에 비해 응축된 삶을 살게 된 것이다. 학자들은 현대인들이 약 3만 배 정도 응축된 삶을 살고 있다는 연구결과를 내놓고 있다. 태어났을 때와 죽을 때가 비슷하기는커녕 현대인들은 어제와 오늘마저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다. 우리의 객관적 상황이 이럴진대 스스로 복잡하고 번잡하게 느껴지지 않는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것이다. 만약 내일의 삶을 예측할 수 있다면 특이한 경우라 할 것이다.

이처럼 복잡한 상황 속에 살아가니 하루하루가 예측 불가능하고 수많은 위기와 어려움이 찾아온다. 폭풍우 치는 바다 위 조각배에 앉아 높은 파도를 탓하는 격이다. 우리의 삶을 향하여 쉴 새 없이 돌진해오는 어려움과 위태로움 역시 자세히 들여다보면 단순하지 않다. 현대의 삶이 응축되고 압축된 만큼 어려움과 위기 역시 복잡하기 그지없다. 수없이 많은 변수와 상수 그리고 환경과 조건이 얽힌 결과로 만들어진 것이다. 따라서 해결책도 복잡하고 단계적일 수밖에 없다. 이 복잡한 위기의 정체를 일도양단 식으로 단순하고 깔끔하게 정리할 수 있다거나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뭔가 다른 꿍꿍이를 가진 사람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주식투자 역시 마찬가지다. 주가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가 대략 500여 가지가 있다. 이를 명쾌하게 정리하고 확실하게 내일의 움직임을 예측할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틀림없이 흑심을 품고 있는 것이다. 이는 슈퍼컴퓨터를 동원해도 예측이 불가능하다.

지난 8월 이후 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아찔한 추락을 거쳐 이제 어느 정도 정신을 차린 상태지만 여전히 에너지는 부족하고 혼미하게 느껴진다. 답답한 박스권에 걸터앉은 채 지루한 횡보를 보여주기도 한다. 이 아슬아슬하고 답답한 장세에서 개인투자자는 한없이 답답하고 위로 받을 요량으로 여기저기 기웃거려보기도 한다.

옛 속담에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이 있다. 이 속담은 단순히 경거망동을 경계한 말이 아니라 우리의 태도와 근본적인 마음가짐 그리고 혼미한 정신을 추스르라는 결연한 아포리즘일 것이다.

이강률 우리투자증권 원주지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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