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국민들이 정치 허무주의(Nihilis m)에 빠져 있다. 국민들은 정부·집권여당·야당 모든 정치권을 불신한다.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드러난 것과 같이 유권자들은 한나라당과 민주당을 함께 거부했다.

허무주의는 19세기 중후반 제정 러시아에서 확산됐던 사조(思潮)다. 당시 러시아는 정부를 비롯한 기존 체제에 대한 불신과 허탈감으로 가득 찼다. 폭력혁명과 무정부주의자인 미하일 바쿠닌 등에 의해 기존 정부 전복 선동으로 확산돼 갔다. 끝내 러시아는 공산주의들의 거짓 선동과 폭력에 의해 전복되고 말았다. 우리나라도 오늘날 만연돼가는 정치 허무주의를 극복하지 못한다면 위기를 면하기 어렵다.

아시아에서 인도는 민주주의 체제를 먼저 발전시켰고 다음으로 경제발전에 나섰다. 그러나 이 나라는 경제 성장속에 파고든 부정부패로 국가의 기둥이 썩어 주저앉을 지경이다. 중국은 ‘사회주의적 시장경제’체제 아래 발전했고 우주 정거장을 건설 중이지만, 1당 공산독재체제하에서 절대 썩고 언론·출판·결사의 자유가 절대 억압당하고 있다.

그렇지만 우리나라는 인도·중국과 달리 먼저 경제를 키운 뒤 자유민주주의 체제로 진입했고 부정부패도 극복단계로 접어들어 자랑스럽다. 물질적 여유속에 정치적 자유도 한 껏 누리고 있다. 하지만 여당은 집권당으로서 무거운 책임감을 통감하지 못한 채 충동적인 여론에 끌려 다니며 포퓰리즘(대중영합)에 흔들린다. 그런가 하면 야당들은 한껏 누리는 자유를 남용해 반미·친북좌익으로 치달으며 국회를 폭력으로 마비시켰다.

한나라당은 국회 의석의 과반수를 확보했으면서도 소수 야당들의 회의실 점거 등 폭력에 겁먹고 한미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 조차 처리하지 못하고 끌려 다닌다. 다수당으로서 무책임하고 비굴한 작태이다. 쇠망치를 휘두르는 야당들의 폭거와 거기에 겁먹고 절절매는 한나라당의 나약한 행태는 의회정치에 대한 환멸과 정치 허무주의를 확산시키기에 족하다.

2400여년 전 아테네의 플라톤은 ‘국가론’에서 민주주의의 맹점을 적시했다. 민주주의가 타락하면 무지막지한 사람들이 지배하는 ‘폭민정치(暴民政治:Mobocracy)로 전락된다고 했다. 한국은 피 흘려 민주주의를 쟁취해놓고서도 그 소중한 민주주의를 ‘폭민정치’로 퇴화시켰고 포퓰리즘과 반미·친북좌익세력의 먹잇감으로 바쳤다. 

그밖에 일부 종교와 시민단체들도 친북좌익 의식에 물들어 있다. 일부 종교인들은 신을 섬기기 보다는 김정일을 섬긴다. 일부 시민단체들은 권력과 재력을 감시한다는 명분아래 그 감시 대상인 기업들로부터 “협찬” 명목으로 돈을 뜯어 낸다. 우리 국민들은 정치권에 대한 환멸속에 위안을 얻고자 종교와 시민단체에 기대를 걸었지만, 그들도 경멸과 불신의 대상이 돼버렸다. 이 나라에는 어디 한 구석 멀쩡한 곳이 없다.

경제 규모는 세계 13대 대국으로 커졌고 1인당 국민소득도 2만 달러를 넘겼으나 체감 실업률은 11.8%에 이른다. 1%는 호화판으로 흥청대고 99%는 빚더미에 눌려 허덕인다. 노조는 권력화 했고 자신들의 기득권보호를 위해 비정규직의 정규직 진입을 막는다.

국회는 경제적 위기와 사회적 모순점들을 극복하는데 힘을 모아야만 한다. 그렇지만 국회 회의실은 민주당과 민주노동당에 의해 10여 일 넘게 점거된 채 한미FTA 비준안 조차 처리하지 못하고 마비돼 있다. 정치권에 대한 국민의 허무주의는 날로 심화돼 간다. 이 허무주의는 제정 러시아 처럼 대한민국을 위기로 몰아넣을 수 있다. 망국의 덫에서 탈출하기 위해서는 먼저 정치권이 뼈저리게 반성해야 하고 ‘폭민정치’에서 벗어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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