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참하게 생을 마친 사담 후세인에 이어 무아마르 카다피의 최후를 지켜보면서 독재자들의 참혹한 2000년 역사가 떠올랐다.

독재자는 살아서 절대적 권력을 휘두르며 정적을 참혹하게 처단한다. 하지만 독재자는 남에게 잔혹하게 가한 만큼 자신도 그렇게 당하고 만다는 사실이 2000년 역사를 통해 입증됐다. 북한 김정일도 잔혹한 독재자라는 데서 처참한 최후를 피하기 어려울 것 같다.

로마 제국의 황제 칼리귤라는 서기 41년 자신의 경호원에 의해 참살됐다. 칼리귤라 황제는 변덕스러웠고 잔혹했으며 자신을 신격화했다. 그는 마음에 안 들면 누구든지 잔혹하게 처단했다.

로마인들은 칼리귤라가 암살됐는데도 그가 민심을 떠보기 위한 술책으로 의심하며 그의 시체를 확인해야 한다며 시체로 달려갔다. 로마인들이 얼마나 칼리귤라의 학정에 시달렸는지를 반영한다.

동(東)로마(비잔틴 제국)의 안드로니쿠스 1세 황제는 서기 1185년 폭도들의 손에 처참하게 죽었다. 그의 폭정에 치를 떨던 군중들은 그를 때려 죽인 후 이빨과 머리카락을 뽑아냈는가 하면, 그의 사지를 찢었다. 그의 잘 생긴 얼굴에는 끓는 물을 부었다.

이집트의 여왕 샤자르 알-두루는 1257년 살해한 새 남편의 첩들에 의해 자신이 신고있던 나막신으로 무참하게 맞아죽었다. 샤자르는 방종생활을 일삼던 중 새 남편을 살해 했다가 참혹하게 생을 마감했던 것이다.

이탈리아의 독재자 베니토 무소리니는 1945년 도망치던 중 반정부 빨치산에 체포돼 현장에서 약식재판을 거친 후 자신의 정부(情婦)와 함께 즉결 처형됐다. 이탈리아인들은 그의 시체를 로마로 가져가 거꾸로 매달았고 갈기갈기 찢어 사지를 질질 끌고 다녔다.

소련 공산독재자 요세프 스탈린은 1953년 심장마비로 쓰러졌다. 그러나 그의 주변에는 쓰러진 스탈린을 돌볼 의사들이 없었다. 스탈린이 담당 의사 십여 명을 암살음모자로 몰아 체포했기 때문이었다. 스탈린은 오줌을 싼 채 12시간이나 홀로 방치돼 있어야 했다.

루마니아의 독재자 니콜라이 차우셰스쿠도 참혹하게 처형됐다. 그는 1989년 12월25일 반란군에 의해 약식 재판을 거쳐 즉각 총살당했다.

3명의 총살 집행 군인들은 차우셰스쿠에 대한 증오심으로 가득차 한 두발 만 쏴도 될 것을 30발씩 모두 90발을 발사했다. 그의 몸은 벌집처럼 쑤셔져 시신을 수습하기에도 불편할 정도였다.

이라크의 독재자 후세인은 쥐구멍 같은 땅굴 속에 숨었다가 체포돼 교수형으로 끝났다. 리비아의 독재자 카다피도 하수관으로 숨어들었다가 반란군에 의해 발견돼 머리채를 잡힌 채 두들겨 맞던 중 머리에 권총을 맞고 사살됐다.

이처럼 2000년 역사를 통해 입증된 독재자들의 처참한 종말은 자신들이 저지른 죄에 대한 인과응보(因果應報)였다. 우리나라의 속담 처럼 “죄는 지은 대로 받는다”는 말 그대로이다.

잔인무도한 북한 독재자 김정일도 죄를 지은대로 받지 않을 수 없다. 독재자의 참혹한 종말은 2000년 인류 역사가 어김없이 입증했다는데서 그렇다.

다만 관심은 김정일이 어떻게 최후를 맞이하게 될 것이냐는데 있다. 세 가지를 예상할 수 있다.

첫째, 그의 아버지 김일성처럼 심장마비 등으로 병사할 수 있다. 둘째, 카다피와 같이 주민들의 반란에 의해 참혹하게 끝날 수 있다. 이 경우 안드로니쿠스 1세나 무소리니처럼 처참한 종말을 피할 수 없다. 셋째, 로마 제국의 칼리귤라 황제 처럼 측근에 의해 참살될 수 있다. 카다피 이후 김정일의 최후가 전 세계인들의 흥미 대상으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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