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내사 권한 축소 ‘검·경 수사권 조정안’

▲ 지난 6월 28일 국회 법사위원회의실에서 열린 검.경수사권관련 회의에서 이귀남(오른쪽) 법무부장관과 조현오 경찰청장이 겸연쩍은 듯 시선을 피한채 악수를 나누고 있다. <정대웅 기자> photo@ilyoseoul.co.kr

반년 가까이 밀고 당기던 검·경 수사권 조정 문제가 국무총리실의 검·경 수사권 강제 조정안으로 일단락됐다. 경찰은 그동안 관행적으로 해오던 ‘내사’ 권한을 보장받되 자체 종결한 내사사건도 사후에 검찰에 보고하게 됐다.

경찰의 내사와 수사가 검찰의 견제를 받게 된 것으로 특히 경찰의 내사 범위가 크게 줄어들게 됐다. 이번 조정안에 대해 경찰이 강력 반발에 나선데다 총리실이 입법예고 기간(20일) 동안 추가 논의 가능성을 열어둬 검·경 간 갈등 재점화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경찰 집단 반발 확산…“사실상 경찰 내사 부정”
검찰 신중한 반응…“수사지휘권 행사에 과도한 제약”

 

그동안 수사권 조정을 놓고 힘겨루기를 하던 검찰과 경찰은 합의안 도출을 시도했으나 입장차만 확인하고 평행선을 달렸다. 결국 국무총리실이 내놓은 강제조정을 통해 합의안을 도출하는 것으로 결론났다.
 
경찰은 강력 반발했고 검찰 역시 조정안에 불만을 표시했다. 국무총리실이 내놓은 강제조정안의 핵심은 ‘경찰의 입건 전 내사 사건에 대한 검찰 지휘 명문화’와 ‘검사 수사지휘에 대한 재지휘 건의 및 의견제시 가능’ 이 두 가지다.


조정안, 무엇이 담겼나


조정안에 따르면 향후 경찰 수사 절차에 있어 가장 크게 달라지는 것은 경찰 내사 범위가 크게 제한됐다는 점이다. 경찰은 피의자 신문조서 작성과 긴급체포, 신병구속, 주거지와 건조물의 압수수색 신청 등에 관해서 검찰에 의무적으로 보고해야 한다.

 

그 외 압수·수색·검증영장 신청, 현행범 체포·인수도 분기별로 사건목록과 요지를 만들어 검찰에 제출해야 한다. 그동안 경찰은 검찰의 지휘 없이도 관행적으로 강제수사에 나서고 범죄 혐의가 없다고 판단될 경우 사건을 자체 종결했다.


앞으로는 입건여부와 관계없이 인권침해 소지가 있는 내사사건은 검찰이 사후 보고를 받아 통제할 수 있게 됐다. 내사 범위도 단순한 정보나 첩보 수집, 탐문 활동 등으로 제한 받는다. 이 조정안에는  검사가 직접 수사 필요성을 인정할 경우 경찰이 진행 중인 수사를 중단하고 관련 사건을 곧바로 검찰에 송치하도록 지휘 할 수 있게 하는 조항도 명시됐다.

조정안에 따르면 검사에 대한 경찰의 수사개시 보고 범죄 범위가 22개에서 13개로 대폭 축소됐다. 또 긴급체포 후 석방 때 검사 사전승인제도가 폐지됐다. 이는 긴급체포된 사람을 석방할 때 사전승인 받도록 하는 규정을 삭제해 신속히 석방이 이뤄지도록 했다.
 

이밖에도 검사의 수사지휘에 대한 재지휘건의 및 의견제시 규정이 명문화 됐다. 경찰은 구체적 사건에 대한 검사의 지휘내용에 대해 검사에게 의견을 밝히고 재지휘를 건의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수사경과 반납 줄이어 ‘격앙’


이 같은 국무총리실의 검경 수사권 강제조정안에 경찰이 강한 불만을 드러내고 있는 반면 검찰은 신중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경찰은 내사는 물론 수사권까지 침해당했다며 강력 반발에 나섰다. 조현오 경찰청장은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 출석해 “총리실 조정안을 보면 내사 부문이 지금보다 개악돼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경찰청도 공식 입장을 밝혔다. 경찰청은 “일부 진전된 내용도 있었으나 경찰의 내사에 대해서만 검사의 광범위한 개입과 통제를 허용해 사실상 경찰의 내사를 부정하고 검찰 내사 영역은 통제장치가 없이 오히려 확장되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밝혔다.

 

경찰청 박종준 차장은 경찰의 입장이 추가로 수용되지 않으면 형사소송법을 개정하는 방안을 추진해야한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경찰 내부 역시 들끓고 있다. 지난 24일 경찰 내부망 등에 따르면 수사경과 반납 등 단체행동을 보이고 있어 국무총리실의 검경 수사권 강제조정안 파문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수사경과 반납운동은 경남 진해경찰서의 양영진 경감이 수사해제 희망원 인증사진과 글을 올리면서 시작됐다. 이에 서울 중부경찰서 이대우 경감이 동참했다.

 

이 경감은 또 온라인에서 11년 넘게 운영한 ‘범죄사냥꾼’이란 강력범죄 수사 카페를 폐쇄하겠다며 회원들에게 “자유롭게 수사할 수도 없고 언제든 수사에 제동을 거는 체계에서 형사의 길은 무의미하다”는 공지를 돌리기도 했다.


이를 시작으로 수사직을 포기하겠다는 수사경과 반납이 줄을 잇고 있어 경찰 반발이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한 경찰 관계자는 “경찰 내부 분위기가 격앙되어 있다”며 “경찰 입장으로선 이번 조정안으로 얻은 것이 하나도 없다. 오히려 혹 떼러 갔다 혹 붙이고 온 격이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이어 “파워싸움에서 경찰이 밀린 것으로 한마디로 경찰이 완패했다”고 말했다.


검찰, 대체로 수긍하는 분위기


검찰의 경우 불만의 목소리는 있지만 대체로 수긍하는 분위기다. 국무총리실의 수사권 강제조정안에 대해 검찰도 유감스럽다는 입장을 밝혔으나 이는 경찰 집단 반발을 감안한 반응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검찰은 지난 23일 ‘수사지휘 관련 대통령안에 대한 검찰의 입장’을 발표해 “오늘 발표된 대통령령안은 국민의 인권보호, 수사의 투명성 확보에 매우 미흡하다”며 “형사소송법상 '모든 수사'는 검사의 지휘를 받게 돼 있는데도, (총리실의 조정안은) 수사지휘권 행사에 과도한 제약을 가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한 “검사의 수사지휘에 대한 이의 제기 및 수사협의회 설치 등은 법적 근거도 없고, 긴급체포에 대해 석방 시 검사의 승인규정을 삭제하는 등 인권 보장에 반하는 내용도 포함됐다”고 지적하며 “조정안은 과도하게 경찰 주장에 편향돼 일선 검사들이 강력 반발하고 있어 우려되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한 검찰 관계자는 “경찰을 수사의 주체로 인정해 준 만큼 수사뿐 아니라 내사단계부터 검찰 지휘를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며 “만약 검찰 지휘를 받지 않고 스스로 내사 종결권을 가진다면 엄청난 부작용을 초래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번 총리실 강제조정에 대해 경찰은 피상적으로 접근하고 검찰은 구체적으로 접근했다는 점이 차이”라며 “경찰의 결정적 실수는 검사 등 검찰 직원들을 경찰에서 수사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했는데 이것이야 말로 검경수사권을 감정적으로 피상적으로 접근했다는 증거”라고 지적했다.


<최은서 기자> choies@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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