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복지사각지대 상계동 양지마을 탐방

갑작스런 한파로 인해 길거리 행인들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매서운 바람을 막기 위해 겉옷도 두터워졌다.
겨울 날씨가 본격적으로 다가오면서 온정의 손길을 기다리는 이들의 마음은 더 빨리 얼어붙고 있다.
지난해도 경기가 안 좋아 온정의 손길이 끊기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그래도 따뜻한 손길은 이들을 외면하지 않았다. 하지만 몇 년 동안의 전 세계적으로 불어 닥친 경제 불황으로 인해 올해는 아무래도 예년만 못할 것이라는 불안감도 있는 듯하다.
서울 북쪽 끄트머리에 자리 잡고 있는 상계동 양지마을은 몇 곳 남지 않은 이른바 ‘시간이 멈춰선 마을’이다. 산등성이 중간에 자리 잡은 이 마을은 주민들의 움직임을 찾아보기 힘들다. 낮이기는 했지만 동네를 돌아다니다 만난 주민은 고작 서너 명에 그칠 정도다.
만난 주민들도 대부분 연세가 드신 어르신들이었다. 점점 추워지는 날씨 속에 양지마을의 겨울나기 채비를 살펴본다.

서울지하철 4호선 시작역인 당고개역을 나와 노점상 할머니에게 양지마을의 위치를 묻자 왼편으로 올라가다 보면 있다고 말씀하신다. 할머니의 말씀대로 왼편으로 한참 올라가다보니 주변의 건물들과는 너무도 다른 우뚝 솟은 최신식 건물을 만났다.

 

주변과 대조적인 모습을 보이는 이 건물은 통합동인 상계3·4동 주민센터 건물이다. 외벽은 유리로 되어 있어 바로 뒤편의 오래된 기와지붕 건물과 대조돼 더욱 더 하얗게 빛이 난다.

 

별도의 이정표가 없어 어디가 양지마을인지 구분하기 어려웠지만 직감적으로 주민센터 뒤편 마을이 양지마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낡은 집 한 채가 주민센터 옆으로 붙어있었는데 마치 시간이 멈춰선 듯한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그 길옆으로 난 골목으로 들어가면서부터 양지마을 취재가 시작됐다.


70·80년대 모습 그대로 남아 있는 양지마을


양지마을은 말 그대로 시간이 멈춰선 곳이다. 마을입구에서 왼쪽은 그나마 평지에 가까워 개발이 이뤄졌지만 오른쪽 언덕 위로는 오래된 단층집들이 줄지어 있었다.

 

다른 곳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다세대주택도 전혀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키 낮은 집들이 어깨를 맞대고 나란히 붙어 있는 모습은 그야말로 70·80년대 그대로였다.

 

언덕길을 따라 동네를 둘러봤지만 주민들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한 낮이라 대부분의 주민들이 일터로 나갔기 때문이라 생각됐지만 인적이 너무도 없었다. 마침 한 아주머니가 문을 열고 나왔지만 이내 빠른 걸음으로 언덕길을 내려갔다.

 

좀 더 좁은 골목으로 들어가자 트럭 한 대가 세워져 있었고 뒤에는 세간이 들어차 있었다. 이사를 가는 듯한 모습이었지만 세간은 몇 개 되지 않았다. 단촐한 세간이지만 이사 가는 분은 이 마을을 떠나는 것이 시원섭섭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멈춰버린 이 마을을 떠나 좀 더 발전된 곳으로 가는 것이 시원했겠지만 한편으로는 정든 곳을 떠난다는 것에 조금은 섭섭할 수도 있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지금은 보기 힘든 장독대의 모습도 양지마을에서는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장독대에는 크지 않은 항아리가 줄지어 놓여 있어 예전의 모습이 항아리 속의 익어가는 장처럼 추억을 떠오르게 했다. 아마도 장독대를 매일 같이 오르내리는 안주인은 식구들을 위해 매일 같이 음식을 만들며 좀 더 나은 내일을 그릴 것이라 생각됐다.


“이곳에서 쫓겨나면 갈 곳도 없어”


아무래도 마을에 대해 자세히 들어보려면 주민들이 많이 찾는 슈퍼마켓에 들르는 것이 좋을 듯싶어 슈퍼마켓을 찾았지만 그 어디에도 슈퍼마켓은 없었다.

 

골목을 좀 더 뒤져보니 이름도 없는 조그마한 구멍가게가 하나 눈에 들어왔다. 조심스레 문을 열고 들어가자 할머니 한 분이 방문을 반쯤 열며 기자를 빤히 쳐다봤다. 동네에서 처음 보는 얼굴이라 그런지 약간은 의아해하는 모습이었다.

 

할머니에게 잠시 뭣 좀 물어봐도 되겠느냐고 양해를 구한 뒤 가게 가운데 놓인 간이의자에 자리를 잡으며 급하게 가게 안을 둘러봤다.

 

가게 안에는 참치 통조림, 라면, 양초 등이 놓여있었는데 그나마 양도 얼마 되지 않았다.

 

주인 할머니께서는 기자가 가게 안을 둘러보는 모습을 보고 한숨 섞인 목소리를 말문을 열었다.

 

“하루 종일 있어도 담배 두 갑 팔기도 힘들어요”라고 넋두리로 인사를 대신한 할머니는 “날씨는 추워지는데 걱정이네”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양지마을에서 41년을 사셨다는 염학순(78) 할머니에 따르면 이곳 양지마을의 거주민들은 독거노인이 대부분이며 간혹 젊은이들도 있기는 하지만 오래 있지 않고 떠난다고 했다.

 

“예전에는 토박이 분들이 많이 사셨는데 대부분 철거민들이었어. 서울 여기저기서 철거를 당해 갈 곳 없는 사람들이 이곳으로 많이 왔지”라며 양지마을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알려주었다.

 

염 할머니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던 중 할머니 한 분이 가게 문을 열고 들어와 곧바로 염 할머니가 있는 방으로 들어가시는데 염 할머니보다 연세가 조금 더 들어보였다. 강분필(85) 할머니도 이곳에서 오래 사신 분이었다.

 

두 분의 말씀에 따르면 양지마을에는 도시가스가 들어오지 않는데 그래도 돈을 좀 번 사람들은 3,4백만 원을 들여 도시가스가 들어올 수 있게 공사를 한다고 부러움을 나타냈다.

 

아닌 게 아니라 언덕길을 올라오며 담 옆에 놓여진 LPG가스통을 많이 볼 수 있었다. 도시가스 공급이 안 되다보니 취사용으로 LPG가스를 사용하고 있는 것이었다.

 

상계동 하면 재개발 얘기가 있던 곳이라 이에 대해 묻자 염 할머니는 “아파트가 들어온다는 얘기가 있었지만 실제로는 된다, 안 된다고 하며 시간만 끌었어. 그래도 대부분 양지마을 사람들은 아파트 들어서는 것을 원치 않아. 아파트가 세워져도 들어갈 돈이 없으니 그림의 떡이지 뭐. 이곳에서 쫓겨나면 그걸로 끝이야”라며 넋두리를 했다.

실제로 양지마을은 주거환경개선입안지였지만 개발에 대한 구체적인 얘기는 제대로 없는 상황이다.


점심 도시락 후원도 끊기고, 연탄 공급도 걱정


겨울이 되면 양지마을에는 연탄가스 냄새를 쉽게 맡을 수 있다고 한다. 아직까지도 연탄을 때는 집들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연탄은 연탄은행을 비롯한 사회복지기관에서 제공하는 것으로 보통 일 년에 네 번 정도 지원받는데 한 번에 150~200장씩 정도라고 한다.

 

처음에 받는 이들은 200장 정도 받는데 늦게 받는 이들은 150장 정도만 받을 수 있어 모두들 처음에 받기를 원하고 있다.

 

염 할머니는 하루에 두 번 연탄 가는 것도 힘에 부쳐 기름보일러로 교체했는데 기름값이 너무 비싸 그마저도 제대로 사용하지 않는다고 했다. 염 할머니는 연탄을 지원해주는 곳에서 기름값도 조금 지원해주면 좋겠다는 소망을 밝혔다.

 

강 할머니께서도 그동안 점심 도시락이 배달돼 한 끼를 해결할 수 있었는데 몇 년 전부터 도시락 후원이 끊겨 가뜩이나 어려운 살림에 식사 끼니마저 제 때 챙기기 힘들다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주민센터에 이런 두 할머니의 소망에 대한 해결책은 없는지 문의해봤으나 “구에서 하는 사업이 아니고 사회복지단체와 복지관에서 하는 것이기 때문에 강제할 수 없다”며 “아쉽지만 이런 비슷한 사업에 구 예산이 배정된 것도 없다”고 말했다.


소주 한 잔으로 때우는 점심


두 할머니와 마을에 대한 얘기를 나누던 중 할아버지 한 분이 가게로 들어와 “먹으면 안 되는 것을 사러왔다”며 냉장고 문을 열었다.

 

순간 놀랐지만 할아버지가 집어 든 것은 다름 아닌 소주였다. 점심시간이 조금 지난 시간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소주를 마시기에는 한참 이른 시간인지라 할아버지를 따라 나섰다.

 

할아버지께 양해를 구해 집에서 취재를 하기로 했다. 할아버지께서는 할머니와 함께 살고 계셨는데 이제야  점심을 드시기 위해 점심상을 차리고 계셨다.

 

할아버지께서 방금 전에 가게에서 산 소주는 아마도 점심 반주를 위한 것으로 짐작됐다.

 

두 내외분께서는 이곳에서 10년째 살고 계셨는데 그동안 구에서 지붕과 문도 고쳐주고 도배도 해줘 고맙다며 연신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올해는 연탄을 늦게 받아 예년보다 양이 조금 적어 걱정이 되지만 그래도 이렇게 지원을 해준 것만으로도 감지덕지라며 감사의 말을 잊지 않았다.

 

양지마을 거주민들의 대다수는 온정이 손길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가게에서 뵀던 두 할머니도 그렇고, 소주를 사가시던 할아버지 그리고 집 앞에서 조그마한 상자에 심어둔 상추를 따던 할머니도 그랬다.


서울시 내년 복지 예산 대폭 늘려


박원순 서울시장은 지난 10일 내년도 서울시 예산을 21조7900여억 원이라고 직접 발표했다.

 

이중 오세훈 전 시장이 야심차게 진행했던 한강예술섬, 서해뱃길, 동대문 디자인플라자 건립 등과 같은 사업은 전면 중단하거나 유보했다.

 

반면 복지예산은 올해보다 6000여억 원이 늘어난 5조1600여 억 원으로 늘었다. 서울시 전체 예산의 26%가량을 차지하는 비중이다.

 

서울시는 사각지대 없는 더불어 행복한 복지를 실현하겠다며 저소득층에 대한 특별 지원을 대폭 확충할 계획이다.

 

서울시는 423억 원의 예산을 확보해 소득최저 생계비 폭을 170%까지로 확대해 현재 월단위로 지원 받는 4100가구를 1만4651가구로 늘릴 계획이며, 특히 부양가족이 있다는 이유로 제도적인 지원을 받지 못하는 저소득층에 대한 지원도 늘릴 예정이다. 이 경우 생계비 지원 등 가구당 월 평균 24만 원 정도의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된다.

 

양지마을에 거주하는 어르신 중 자식이 집을 나간 지 오래됐지만 자식이 부양가족으로 되어 있어 지원을 못 받는 분들도 계신 것으로 파악됐다. 결국 박 시장의 계획처럼 특별 지원이 늘게 되면 양지마을에 거주하는 어르신들도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된다.

 

양지마을과 같은 서울에 몇 곳 남지 않은 저소득층 마을도 겨울을 지금처럼 걱정하지 않아도 될 수 있을지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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