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권통합과 DJP연합... ‘DJ-盧’의 통합지혜를 보다

[일요서울ㅣ정찬대 기자]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95년 국민회의를 창당해 야권을 통합시켰고 이후 김종필 당시 자민련 총재와의 후보단일화에 성공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지난 16대 대선에서 ‘국민통합21’ 정몽준 후보와 막판 단일화에 성공함으로써 그의 정치적 역량을 발휘했다.

비록 선거 하루 전 정 후보가 단일화 파기를 선언했지만 어쨌든 민주당은 통합과 연대라는 전술을 통해 정치적 중대고비를 헤쳐 나갔다. 그리고 이를 통해 민주정권 창출에 성공할 수 있었다.

최근 민주당이 보여주고 있는 통합을 둘러싼 ‘구태’를 보면서 국민적 실망감이 크다. 당내 ‘통합전대파’와 ‘단독전대파’ 모두 두 전직 대통령의 유훈인 ‘통합’을 기치로 내걸고 있지만 그 방식과 내용에서 상당한 입장차를 보이고 있어 결국 당의 분화까지 야기 시키고 있다.

‘국민회의’의 흡수통합과 ‘DJP연합’의 대승적 결단

1992년 14대 대선에서 패배한 김대중 전 대통령은 정계에서 은퇴한다. 이후 1995년 정계복귀를 선언하면서 ‘국민회의’(이후 새정치국민회의로 변경)를 창당하였고, ‘김대중’ 이라는 상징적 인물을 중심으로 야권은 자연스레 재편되고 흡수통합을 이루게 된다.

당시 민주당은 국민회의에 빠른 속도로 흡수됐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극심한 내홍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다.

민주당은 ‘통합반대파’인 이기택 의원이 당대표에 당선되면서 당내 갈등은 더욱 극심해졌고, 통합을 추진해온 김원기 전 국회의장과 노무현 전 대통령을 비롯한 통합추진세력이 ‘선(先) 정권교체’라는 명분을 내세우며 결국 국민회의와 결합하게 된다.

DJ가 빠진 민주당, DJ가 없는 호남민심은 성립자체가 불가능했다는 측면에서 야권통합은 어디까지나 ‘김대중’이라는 상징적 인물 하나만으로 가능했던 일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정치적 역량은 ‘DJP연합’에서 여과 없이 드러났다. 도저히 연대가 불가할 것이라 여겼던 김대중-김종필 두 인물이 15대 대선을 앞두고 후보단일화를 이룬 것이다.

김대중 당시 대선후보는 DJP연합을 앞두고 “모든 책임 있는 민주세력에 문호를 개방하겠지만 무엇보다 자민련과의 공조가 최우선이다. 단일화만이 승리할 수 있다”고 장담했다.

민주세력의 적통을 논한다면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충청권의 민심은 반드시 필요했고, 결국 대승적 결단을 선택했다.

정권교체가 무조건적인 대의가 될 수는 없다. 그럼에도 김 전 대통령은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모든 불식과 우려를 종식시키고 단일화에 성공했다. 그 결과 수평적 정권교체를 이루었고, 민주정권이 들어설 수 있었다.

‘노짱’이 몰고 온 국민적 단일화 열풍

2002년 대선이 가까울수록 이회창 후보의 대세론은 거셌다. 당시 여론조사결과를 보면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가 40%를 웃돌며 선두를 차지했고, 이어 정몽준 ‘국민통합21’ 후보가 그 뒤를 쫓았다. 노무현 ‘새천년민주당’ 후보는 20%대였으며, 권영길 ‘민주노동당’ 후보는 5% 미만을 유지하고 있었다.

민주진영의 지지율 분산으로 승리를 장담할 수 없었던 만큼 정몽준 후보와 노무현 후보의 단일화 요구가 거세게 일었고, 당시 한일 월드컵 열기와 함께 정 후보의 지지율이 상승하면서 노 후보는 단일후보 경선에 대한 깊은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정치권에서는 단일화 경선이 붙을 경우 노 후보가 불리하다는 관측이 점쳐졌다. 그러나 노무현 후보에게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적어도 한나라당에 정권을 뺏기지 않을 것이라는 안도감과 함께 절반의 가능성은 있다고 판단했다.

결국 그의 정치적 결단으로 16대 대선은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와 노무현 단일후보의 양자구도로 치러졌다. 그리고 ‘국민의 정부’ 이어 ‘참여정부’가 들어서면서 민주진영은 재집권에 성공할 수 있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당시 상황에 대해 “단일후보 경선을 할 경우 이길 확률은 반반, 만약 여기서 단일후보가 된다면 본선에서 이길 확률은 거의 100%다. 그렇다면 50%의 확률로 대통령이 될 수도 있고, 안 그러면 대통령이 될 확률은 0%니까, 0%보다는 50%가 낫다고 판단했다”고 후보 단일화 배경을 설명했다.

자가당착적 ‘통합론’에 민주당 분열

60년 전통의 역사를 가진 민주당이 통합문제를 둘러싸고 뿌리 채 흔들릴 위기에 처하면서 당 안팎에서 비토가 터져 나오고 있다.

더욱이 최근 보여주고 있는 민주당의 통합 모습은 김대중·노무현 두 전직 대통령의 ‘유훈’과는 상당부분 괴리감을 보여주고 있어 당의 분열을 가속화시키고 있다.

‘통합전대파’인 이인영 최고위원은 “김대중 전 대통령께서 추구한 변화의 절반은 끝없는 통합의 길이었으며, 나머지 절반은 새로운 충원이었다”고 강변했다. 또한 “노무현 전 대통령 역시 자기세력의 기득권 수호와 복원에 한 번도 안주한 적이 없다”고 강조했다.

신기남 상임고문도 “김대중 전 대통령은 민주당 60년 역사에서 누구보다 대담하게 당의 문호를 개방해 진취적인 사고와 개혁적인 인물로 당을 탈바꿈하는데 앞장서 오신 분”이라며 “1991년 평화민주당과 재야의 ‘신민주연합’이 함께 한 <신민주연합당> 창당과 2000년 <새천년민주당> 창당이 바로 그런 노력의 결과”라고 주장했다.

반면, ‘독자전대파’의 수장격인 박지원 전 원내대표는 “김대중 대통령은 위기시마다 합당과 영입을 통해 돌파했는데, 그때마다 원칙과 절차를 지키며 유연성을 발휘했다“고 말했다.

이어 “원칙과 절차를 지키면서 유연성을 발휘하는 식으로 통합을 추진해야지, 유연성을 먼저 발휘하고 원칙과 절차를 갖추려 하면 일이 안 된다”고 맞받아쳤다.

당내 일각에서는 ‘연대’는 가능하나 ‘통합’은 불가하다는 ‘원칙론’이 제기되기도 했다. 즉 ‘혁신과 통합’은 연대해야 할 세력이지 결코 통합할 수 있는 주체가 아니라는 것이다. 지난 23일 민주당 중앙위원회 참석한 여러 당원들도 이 점을 누차 주문했다.

지난 8월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2주기 행사에서도 손학규 대표와 박지원 전 원내대표의 통합에 대한 입장차를 확인할 수 있었다.

손 대표는 이날 “정권교체를 위한 ‘야권통합’은 김대중 대통령의 명령이고 역사가 우리에게 맡긴 지상과제”라고 주장했으며, 박 전 원내대표는 “김 전 대통령은 마지막 병석에서까지 ‘야권연대’를 통한 정권교체를 소망하셨다”고 강조했다.

한편, 지난 23일 민주당 중앙위원회에서 만난 한 당원은 “두 전직 대통령의 통합지혜가 무엇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현 상황은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너무나 부끄러운 모습”이라고 쓴 소리를 내뱉었다.

이어 “‘통합전대파’와 ‘단독전대파’ 모두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의 ‘통합론’을 내세우고 있지만, 결국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른 ‘통합론’에 불과한 것 아니겠냐”며 “당에 대한 진정어린 애당심을 갖고 있다면 상황을 이렇게까지 몰고 가진 않았을 것”이라고 성토했다.

<정찬대 기자> mincho@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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