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괴 되팔면 큰돈 벌 수 있다” 금괴 투자 사기

콜라텍과 나이트클럽 등지를 돌며 부녀자들에게 접근해 수억 원을 받아 가로챈 사기꾼이 경찰에 덜미를 잡혔다. 서울 마포경찰서는 수도권 일대 콜라텍·나이트클럽에서 만난 중년 여성들을 꾀어내 금괴 투자를 유도한 뒤 투자금만 받아 가로챈 남모(59)씨를 지난달 29일 구속했다. 남씨는 자신을 세관 공무원 출신이라며 수시로 전화해 친밀감을 높인 뒤 공범 2명과 짜고 2~3차례 소액의 금을 되파는 모습을 보여줘 신뢰감을 형성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 조사결과 피해자 대부분은 노후나 자녀 결혼비용을 위해 모아뒀던 목돈을 남씨에게 건네 줬으며 남씨는 이들에게서 등친 돈 대부분을 경마비나 유흥비로 탕진한 것으로 드러났다.


세관 공무원 출신이라 속여…친밀감 형성 뒤 사기행각

고수익 꿈꾸다 노후자금·자녀 결혼자금 사기 당해 생계곤란



지난 9월 서울 영등포구의 한 콜라텍에서 남씨는 50대 중년 여성들을 물색하던 중 가정주부 김모(57·여)씨에게 접근해 자신을 세관 공무원이라고 소개했다. 수준급 춤 솜씨에 호남형 외모를 갖춘 남씨는 “춤 한 번 추실까요”라며 김씨에게 다가가 “세관에서 퇴직한 공무원”이란 거짓말을 늘어놓았다.


춤을 빌미로 접근


남씨는 춤을 추고 나서 “같이 춤을 춰 줘서 고맙다. 식사를 대접하고 싶은데 연락처를 알려달라”며 김씨의 연락처를 알아냈다. 남씨는 김씨에게 안부를 묻는 등의 연락을 하는 등 수시로 전화해 친근감을 쌓았다. 어느 정도 친밀감이 형성됐다고 판단한 남씨는 김씨에게 식사를 대접하고, 등산 등을 함께 가며 신뢰를 쌓아나갔다.


만남이 잦아지기 시작하자 남씨는 본격적으로 마각을 드러냈다. 남씨는 “세관에서 공매로 나오는 금괴를 받아 되팔면 큰돈을 벌 수 있다”며 “한 돈에 만 원의 마진이 있다”고 김씨를 꾀어냈다. 솔깃한 제안에 마음이 흔들린 김씨는 남씨의 제안을 덥석 물었다.


지난 10월 12일 종로구의 한 다방에서 남씨는 김씨에게 금 판매업자를 소개해 300만 원 어치 금을 구입하게 했다. 남씨는 그 자리에서 금을 사겠다는 남성을 데려와 김씨가 구입한 300만 원 어치의 금을 330만에 팔아넘겼다.


순식간에 눈앞에서 30만 원의 수익금이 생기자 김씨는 남씨에 대한 의심을 접게 됐다. 남씨는 이익금을 포함한 330만 원을 김씨에게 돌려주며 “10돈 짜리 금괴 20개(한 돈 당 25만 원)가 있는데 투자해 보는 게 어떻겠느냐”며 “6000만 원이 필요한데 구할 수 있는데까지 구해오라”고 김씨를 유인했다. 


결국 김씨는 그동안 딸의 결혼자금으로 모아뒀던 4000만 원을 남씨에게 투자했다. 그러나 4000만 원을 건넨 직후부터 남씨를 영영 볼 수 없었다. 연락이 잦던 남씨가 행방을 감추고서야 사기당한 사실을 눈치 챈 김씨는 남씨를 경찰에 고소했다.


중년여성이 주 타깃


남씨의 사기 행각은 이뿐 아니었다. 세관 공무원이라고 피해자들을 속인 남씨의 실상은 사기전과 20범의 무직자였다.


남씨와 공범들은 금괴를 가지고 있지도 않았다. 남씨는 피해자들을 속이기 위해 금괴가 아닌 소량의 금을 직접 구매한 후 공범들과 금 매매를 하는 것처럼 가장했다. 한 피해자에게는 인천공항에서 과장으로 근무하다 퇴직했다고 속이기도 했다.


남씨는 피해자들에게 투자 명목으로 건네받은 소액을 공범 2명과 함께 금매매를 가장해 수익을 만들어 준 뒤 “다음번에는 더 많은 금이 나오니 현금을 최대한 준비해라”고 권유하기도 했다. 경찰 관계자는 “남씨가 사기 20범이긴 하나 언변이 뛰어나지는 않다”며 “콜라텍에서 만난 만큼 남씨가 뛰어난 춤 솜씨를 갖고 있는데다, 피해자들과 3~4주 간에 걸쳐 잦은 연락을 하고 함께 여행·등산을 다니며 신뢰를 준 점이 피해자들을 혹하게 했던 것 같다”고 전했다. 


남씨는 피해자들이 모아둔 목돈 2000만~6600만 원을 가져오자 금 판매자 역할을 하는 공범에게 건넨 뒤 “금괴를 가져오겠으니 기다려라”라며 밖으로 나가 그대로 도주했다. 경찰 조사결과 남씨는 피해자 5명에게서 모두 2억5000만 원을 받아 달아난 것으로 드러났다.

남씨가 2~3차례 소량의 금 거래로 소액의 이익금을 만들어주자 피해자들은 남씨를 신뢰해 그가 공범과 함께 피해자들이 건넨 거액의 돈을 들고 “준비해온 금을 가져오겠다”며 도주한 후에도 사기당한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남씨는 공범들과 짜고 콜라텍과 나이트를 무대로 중년여성들을 노렸다. 중장년층 문화공간으로 자리 잡은 콜라텍에 춤을 추러 온 주부들이 남씨의 주 타깃이었다. 춤을 빌미로 손쉽게 연락처를 주고받고 접근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경찰 관계자는 “나이트클럽이나 콜라텍을 자주 드나드는 중년 여성들이 사기에 취약할 것이라고 남씨가 판단했던 것 같다”며 “한마디로 남씨는 업그레이드된 제비인 셈”이라고 전했다.


경찰 조사결과 피해자들은 대부분 노후자금이나 자녀 결혼을 위해 모아둔 돈이나 차용금 등을 남씨에게 투자금 명목으로 건넸으며 남씨는 가로챈 돈을 경마와 유핑비로 탕진한 것으로 드러났다. 남씨의 제안에 고수익을 꿈꿨던 피해자들은 오히려 노후대비 명목으로 모아둔 돈 등을 사기 당해 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부산과 대구, 성남, 원주 등의 콜라텍 등지에서 발생한 유사사건에 대해 여죄를 수사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전국적으로 콜라텍 등지에서 금괴뿐 아니라 보톡스, 항공기 중요부품을 되팔면 높은 수익을 얻을 수 있다며 중년 여성들을 유혹하는 범죄가 발생하고 있다”며 “터무니 없는 수익을 올려준다거나 고수익을 보장하는 말에 현혹되지 말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경찰은 남씨와 함께 금괴사기에 연루된 공범 2명이 더 있는 것으로 보고 이들을 추적하고 있다.


<최은서 기자> choies@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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