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만에 족쇄 풀린 구당

헌법재판소가 구당 김남수씨에 대한 기소유예처분 취소 결정을 내린 데에 대해 논란이 일고 있다. 헌재는 뜸 시술 자격증 없이 침사 자격만으로 뜸 시술을 해온 것은 사회통념상 용인이 가능한 행위라며 김씨의 손을 들어줬다. 이로써 김씨는 3년여 만에 국내에서도 합법적으로 뜸 시술을 할 수 있게 됐다. 뜸 시술이 불법 의료행위인지를 놓고 김씨와 오랜 갈등을 겪어 온 한의계는 헌재의 이번 결정에 강력 반발하고 나섰다.


헌재 “침사 자격만으로 뜸 시술 해온 것은 사회통념상 용인 가능”

한의협 “수십 년간의 뜸 시술·침사 자격이 면죄부 될 수 없다”

▲ 김남수(96) 옹이 여의도 국회의사당 정문 앞에서 지난해 10월 ‘침뜸을 국민의 품으로 돌려주세요’라는 문구를 걸고 1인시위를 하고 있다. <뉴시스>

헌재는 김씨가 “별다른 부작용이나 위험성이 없는 뜸 시술을 위법하다고 본 기소유예 처분을 취소해달라”며 제기한 헌법소원 사건에서 김씨의 뜸 시술이 사실상 위법성이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헌재의 이번 판결은 오랫동안 침사 자격만으로 뜸을 놓아온 김씨의 이력과 김씨가 침사로 활동할 당시의 배경 등을 고려해 내린 판결로 분석된다. 김씨는 1943년 침사 자격을 얻었으나, 구사 자격은 없다. 침구사 자격증은 1962년 의료법 개정으로 한의사 제도가 신설되면서 폐지됐으나 이전에 면허를 취득한 39명(침사 31명, 침·뜸이 가능한 침구사 8명)에 대해서만 법적 자격을 인정해왔다. 


헌재, 구당 뜸 시술 인정


헌재는 “뜸 시술 행위 자체가 신체에 미치는 위해 정도가 그리 크다고 보기 어려운데다 뜸이 김씨와 같은 침사에 의해 이뤄진다면 위험성은 걱정하지 않아도 무방할 만큼 적다”고 밝혔다.


헌재는 또 오랫동안 침사에 의한 뜸시술 행위에 대한 아무런 제재가 없었다는 것은 침사에 의한 뜸 시술 행위를 사회에서 관습으로 인정해 받아들이고 있는 것으로 봤다.


이어 “침사로서 수십 년간 침술과 뜸 시술 행위를 해 온 김씨의 뜸 시술 행위는 법질서나 사회윤리, 사회통념에 비춰 용인될 수 있는 행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어 위법성이 조각될 여지가 많다”며 “정당행위 여부에 관해 제대로 판단을 하지 않고 유죄로 인정해 기소유예 처분을 한 것은 평등권과 행복추구권을 침해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구당 제자들의 모임인 ‘한국뜸사랑(회장 김남수)’ 측은 “헌재 판결을 환영하고 다행스런 결정이다”라며 “헌재판결을 떠나 국회에 상정되어 있는 뜸시술 자율화법이 통과되는 등 의료법도 반드시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뜸사랑 측은 이어 “침구사 자격증 도입이나 뜸만이라도 합법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법 정비가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서울북부지검은 김씨를 구사 자격 없이 뜸 교육으로 100억 원대의 부당이득을 챙긴 혐의 등으로 지난 6월 불구속 기소해 1심 재판이 진행 중으로 징역 3년에 벌금 1000만 원을 구형받은 바 있다. 때문에 이번 헌재 판결이 오는 23일 서울북부지법에서 열릴 판결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에 대해 뜸사랑 측은 “검찰이 무리하게 기소한 측면이 있다”면서 “아직 판결이 나지 않았지만 헌재 판결로 미뤄 낙관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의협 “헌재 결정 부당”


반면 이동흡 재판관은 “뜸과 침은 별개로 뜸을 시술할 때는 그 자체에 대한 전문적 지식이 필요하므로 침사라고 해서 당연히 뜸도 제대로 뜰 수 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반대 의견을 내놓았다. 특히 “김씨가 구사 자격을 취득할 수 있는 기회가 충분히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격 취득 없이 뜸 시술 행위를 한 것은 정당행위로 용인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대한한의사협회도 이번 결정에 강력하게 반발했다.

한의협 관계자는 “의료에 대해서 파악하지 못한 헌재가 잘못된 판결을 내린 것”이라며 “엄연히 영역이 다른 면허가 있는데 다른 자격을 취득한 채 자격 범위를 넘어선 시술행위를 장기간 했다고 해서 합법이 된다는 것은 스스로 법을 무너뜨리는 판결이다”고 헌재의 결과에 대해 부당함을 표명했다.


이 관계자는 또 “오토바이 면허증만 갖고도 장기간 무사고 운전을 한다면 자동차 운전도 할 수 있다는 이야기냐”고 반문하며 “범법행위라도 장기간 계속한다면 처벌받지 않는다는 잘못된 인식이 사회에 만연하게 될 것이다. 이번 판결로 불법 무면허 침, 뜸 행위 등 불법 의료가 양산될 가능성이 있어 우려된다”고 말했다. 침사 자격을 갖고 있다는 것과 수십 년간 뜸 시술을 해왔다는 점이 면죄부가 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헌재의 이번 결정에 대해 한의협이 부당함을 강력 표명함으로써 불법 의료 논란이 다시 빚어질 것으로 보인다. 


<최은서 기자> choies@ilyoseoul.co.kr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