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 전면 등판 거부 시 당 진로 불투명할 수도

▲ 한나라당 홍준표 대표가 9일 오후 3시 대표직을 사퇴했다.<정대웅 기자>

한나라당 홍준표 대표가 9일 오후 3시 기자회견을 갖고 결국 거센 반대급부에 부딪혀 당 대표직을 사퇴하고 물러났다. 

 

홍 대표는 이날 여의도 당사에서 밝힌 사퇴의 변에서 "당을 재창당 수준으로 쇄신하고 내부정리한 후 사퇴하고자 했다"며 "이것마저 매도되는 걸 보고 저는 더 이상 이 자리에 있는 게 무의미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홍 대표가 전날 내년 2월 재창당 계획을 담은 쇄신안을 발표한 지 하루 만에 이른바 ‘홍준표 쇄신안’을 그야말로 말 뿐인 휴지조각이 돼버렸다.

 

이날 한나라당 최고위원회의는 유승민, 원희룡, 남경필 최고위원들의 사퇴로 예상됐던 홍 대표 체제 붕괴는 한 단계 더 나아가 황우여 원내대표, 이주영 정책위의장, 지명직 김장수 최고위원까지 불참하면서 사실상 지도부 해체로 귀결됐다.


이로써 홍 대표의 사퇴는 피해갈 수 없는 벼랑 끝에 서 있는 형국이 됐다. 애당초 그의 쇄신안은 반발을 예고하고 있었다.


앞서 최고위원을 사퇴한 3인방 외에도 민본21모임, 재창당모임 등 소장파와 친이계 쇄신파가 등을 돌렸고, 홍 대표를 떠받쳐 왔던 친박계까지 이대로는 당이 공중분해된다는 위기감이 팽배해지면서 전면적인 비상대책위 체제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파악된다.


재창당 수준이거나 아예 당을 해체하고 새로 신당 창당을 희망하는 당내 목소리가 빗발치면서 거대 여당 한나라당 지도부는 침몰하고 말았다. 당장에 홍 대표 사퇴 이후 진로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현재 당내 쇄신과 재창당을 주장하는 쪽에선 박근혜 전 대표의 전면 등판을 한 목소리로 요구하고 있다. 우선 황우여 원내대표가 당 대표를 맡아 내부 의견을 조율해 재창당 또는 신당 창당을 목표로 비대위를 구성하는 가교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홍준표 쇄신안이 발표된 이후 “당이 재창당 수준으로 가야하며, 홍준표 대표로는 안된다”는 뜻을 측근을 통해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초토화된 당 지도부의 상황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는 판단에 따라 박 전 대표는 직접 전면에 나설 뜻을 굳혔다는 관측도 제기됐다.


그래서 지도부 공백 상태를 오래 끌지 않고 친박계와 쇄신파 주도로 비상대책위가 구성돼 내주 초 당 진로를 놓고 머지않아 새로운 방향설정이 공개될 것이라는 전망도 흘러나온다. 


이는 결과적으로 민본21 모임과 탈당을 보류한 친이 재창당 모임의 바람대로 박 전 대표의 조기등판이 현실화되는 것으로 본인도 더 이상 거부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했음을 수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만약 박 전 대표가 내년 총선 패배라는 상처를 의식해 비대위 구성에서 ‘수렴청정’하는 형태로 한 발 물러나는 모양새를 비칠 경우, 여러 갈래로 분화된 한나라당 내 갈등과 불만은 또다시 수렁으로 빠져들 수 있다.

 

친박계 한 핵심 의원은 “(박 전 대표가) 결심의 큰 방향은 선 것으로 보인다”며 “그러나 쇄신 방향에 대해 당내 목소리가 다른 만큼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고심 중”이라고 밝혔다.


비대위 구성과 관련해 아직까지는 구체적인 방안은 도출되지 않았으나 박 전 대표의 전면 등판을 바라는 쪽에선 본인이 직접 비대위원장부터 직접 맡는 방안과 비대위 구성은 외부 인사에게 맡기고 당명과 정당 구조를 뜯어고친 재창당 단계에서 나서는 방안 등이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고동석 기자>kds@ilyoseoul.co.kr

 

 

[홍준표 대표 사퇴 회견 전문]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사랑하는 당원동지 여러분.


저는 지난 7월 전대에서 22만의 당원동지가 저를 압도적으로 뽑아준 그 뜻에 보답키 위해 지난 5개월 동안 불철주야 국정을 살피면서 내년 총선과 대선을 준비해왔다.


그러나 무상급식 주민투표에 이어 돌발적인 서울시장 보선, 한미FTA 비준안 처리 후 디도스 사건 등 당을 혼돈으로 몰고 가는 악재가 잇달아 터졌다. 이 모든 게 제 부덕의 소치다.


그동안 대한민국 서민대표로서 저는 서민의 애환을 살피고 반값아파트 정책 등 대한민국을 바꾸는 획기적 개혁정책도 내놨다. 한나라당에서 유일하게 혁신에 성공한 현재 당헌을 만들면서 개혁과 쇄신에 앞장서왔다.


그런 저를 최근 일부에서 쇄신의 대상으로 지목하는 걸 보고 저는 참으로 마음이 아팠다. 집권여당 대표로서 혼란을 막고자 당을 재창당 수준으로 쇄신하고 내부정리한 후 사퇴하고자 했다. 그런데 이것마저 매도되는 걸 보고 저는 더 이상 이 자리에 있는 게 무의미하다고 판단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사랑하는 당원동지 여러분.


더 이상 당내 계파투쟁과 권력투쟁은 없어야 한다. 모두 힘을 합쳐야 총선과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다.


여러분의 뜻을 끝까지 받들지 못하고 한나라당 대표직을 사퇴하는 걸 너그럽게 용서해 달라. 평당원으로 돌아가 대한민국과 한나라당 발전에 기여하는 한 알의 밀알이 되겠다.


그동안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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