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호남 중진의원들 숨죽인 채 ‘불출마 고민’

▲ 좌부터 한나라당 이상득, 홍정욱 의원과 민주당 정장선, 장세환 의원(사진=뉴시스)

[일요서울ㅣ정찬대 기자]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여야 의원들의 불출마 선언이 줄을 잇고 있다.

한나라당 이상득, 홍정욱 의원에 이어 민주당 정장선, 장세환 의원이 19대 총선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현재 여야 모두 쇄신과 통합으로 전면 탈바꿈을 진행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들의 불출마 선언은 정치권에 상당한 파장을 불러올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정치권에 대한 대대적 물갈이가 예상되면서 현역의원들의 불출마 러시가 앞으로 더욱 확산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게 점쳐지고 있다.

‘상왕’ 이상득, ‘7막7장’ 홍정욱 돌연 불출마 선언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이자 국회부의장을 지낸 ‘상왕’ 이상득(경북 포항남구·울릉군) 의원이 내년 총선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지난 18대 총선 당시에도 물갈이 대상으로 거론됐던 이 의원은 자신의 지역구에서 6선을 한 당 최고 중진의원이다. 이 대통령의 형으로 그간 ‘상왕’ 역할을 해오면서 권력사유화 논란의 중심에 섰던 그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함에 따라 당내 영남 중진의원들은 술렁이고 있다. 향후 다선의원들의 거취문제가 당 안팎에서 본격적으로 거론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의원은 “한나라당이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운데 당의 쇄신과 화합에 작은 밑거름이 되고자 한다”며 불출마 배경을 설명했다. 그러나 현재 그의 보좌관이 SLS그룹 측으로부터 수억 원대의 금품을 수수한 혐의로 검찰소환 조사가 진행되고 있고, 검찰의 칼끝이 이 의원을 향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대승적 결단에 따른 자발적 선택이라기보다 ‘떠밀려 나갔다’라는 점에서 불명예 퇴진을 한 셈이 됐다.

이에 앞서 홍정욱(서울 노원병·초선) 의원도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당내 소장·쇄신그룹의 초선 의원이라는 점에서 그의 불출마는 의미하는 바가 크다. 물갈이 대상이 결코 중진이나 노장 의원들에게만 국한될 수 없다는 상징성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홍 의원은 “지난 4년은 제게 실망과 좌절의 연속이었다”며 “18대 국회의원의 임기를 끝으로 여의도를 떠나고자 한다”고 말했다. 한·미FTA 비준안 처리 당시 본회의에 불참했던 그는 “정당과 국회를 바로 세우기에는 제 역량과 지혜가 턱없이 모자랐다”며 “벼슬을 하는 자는 직분을 다하지 못하면 떠나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지난 8월 한나라당 김형오(부산 영도구·5선) 전 국회의장과 원희룡(서울 양천갑·3선) 전 최고위원이 불출마를 선언한 바 있으며, 3선의 허태열(부산 북구·강서을) 의원도 “박근혜 전 대표를 위해 내년 총선에 출마하지 않을 수 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당 쇄신 작업이 본격화될 경우 더 많은 현역의원들의 불출마가 이어질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정장선·장세환, ‘호남물갈이’ 신호탄 되나

지난 12일 민주당 정장선(경기 평택을·3선) 의원은 돌연 기자회견을 갖고 19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그는 “한미FTA 비준안이 단독 처리되고 최루탄까지 터지는 일이 발생했다”고 지적한 뒤 “국회의원을 3선이나 했음에도 국회가 나아지는데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했다. 정치 불신에 대한 책임이 크다”며 현 상황을 통감했다.

민주당 현역의원 가운데 첫 총선 불출마 선언이라는 점에서 정 의원의 불출마가 당 쇄신과 물갈이의 물꼬를 트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특히 당 사무총장으로써 손학규 지도부와 호흡을 함께하며 통합을 이끌어온 것을 상기할 때 이러한 주장을 더욱 뒷받침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호남에 지역구를 둔 장세환(전주 완산을·초선) 의원도 내년 총선에서 출마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장 의원은 14일 국회 기자회견을 갖고 “통합과정에서 당의 분열과 갈등의 모습을 보면서 회의를 느꼈다”며 “저의 기득권 포기가 야권통합, 내년 총선 승리와 정권교체의 밑거름이 되기를 소망한다”고 말했다.

장세환 의원의 불출마 선언은 호남 의원 가운데 첫 사례라는 점에서 ‘호남 물갈이론’의 촉매제가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실제로 당 안팎에서는 호남 중진의원들에 대한 쇄신 이야기가 심심찮게 들려오고 있으며, 향후 시민통합당과의 통합과정에서 이들에 대한 교체 압박이 한층 거세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현재 박상천(전남고흥) 김영진(광주 서구을) 김충조(비례) 의원이 5선이며, 정세균(전북 무안진안장수임실) 의원은 4선의 중진이다. 이 가운데 정세균 최고위원은 내년 총선에서 호남 지역구를 버리고 종로에서의 출마를 공언한 상태이며, 3선의 김효석(전남 담양곡성구례) 의원도 자신의 지역구를 뒤로 한 채 서울 강서구를 타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가운데 김부겸(경기 군포·3선) 의원은 지난 15일 국회 기자회견을 갖고 내년 총선에서 민주당의 불모지인 대구 출마를 선언하고 나섰다.

18대 총선, 거물급 정치인들의 잇따른 ‘불출마’

지난 18대 총선 직전에도 자의반·타의반식으로 많은 이들이 불출마를 선언했다. 특히 이들 가운데 거물급 정치인들이 대거 포함돼 있어 정치권에 상당한 충격을 주기도 했다.

면면을 들여다보면 대통합민주신당 임채정(서울 노원병·4선) 국회의장을 비롯해 김원기(전북 정읍·6선) 전 국회의장과 강금실 전 법무부장관, 노무현 전 대통령의 복심인 염동연(광주 서구갑·초선) 의원 등이 포함돼 있었다. 여기에 대통합민주신당에서 탈당한 이해찬(서울 관악을·5선) 전 총리도 총선에 출마하지 않을 것임을 선언했다.

한나라당에는 강재섭(대구 서구·5선) 대표를 비롯해 맹형규(서울 송파갑·3선) 의원과 4대강 사업을 반대한 고진화(서울 영등포갑·초선) 의원 그리고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 김현철(경남거제)씨 등이 불출마 대열에 합류했다. 특히 대표적 보수·친박계 의원으로 분류되는 김용갑(경남 밀양·창녕) 의원은 3선을 끝으로 명예 제대하겠다며 한나라당 현역의원 가운데 가장 먼저 18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盧의 실정과 친이-친박 갈등

2007년 대선에서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가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에게 완패한 뒤 노무현 전 대통령과 정치적 유대관계를 맺던 이들과 일부 열린우리당 세력들은 ‘대선 패배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며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다.

참여정부의 실정과 대선 패배로 확인된 냉엄한 민심은 총선에 대한 부담감을 더욱 가중시켰고, 어떻게든 자기반성과 혁신의 모습이 필요했다. 누군가는 이러한 상황에 책임지고 떠나야 했고, 이러한 이유로 과거 열우당 사람들이 대거 숙청대상에 포함되기도 했다.

김원기 전 의장은 당시 총선 불출마 관련 기자회견에서 “대선 패배와 함께 대통합민주신당이 미니 정당으로 전락하게 될지도 모르는 지금의 엄중한 사태에 고민해 왔고, 저한테도 일말의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민심을 직시하고 이에 대한 반성의 뜻으로 스스로 정치적 ‘퇴장’을 선택한 것이다.

한나라당의 경우 대선후보 경선부터 시작된 친이(친이명박)-친박(친박근혜)간 갈등이 총선공천을 두고 더욱 거세졌으며, 당내 개혁은 물론 쇄신작업 실패 이유를 들어 결국 강재섭 대표가 불출마를 선언한다.

17대 대선을 앞두고 이명박 후보와 박근혜 후보는 경선룰을 두고 신경전을 벌여왔다. 서울시장을 역임했던 이 후보는 국민적 지지도가 높은 반면, 한나라당의 최대주주였던 박 전 대표는 당원들 사이에서 신임이 두터웠다. 당원투표와 국민경선에 대한 입장차가 갈렸고, 결국 대선이란 점을 상기할 때 국민경선에 비중을 둬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으면서 이명박 후보가 최종 대통령 후보로 선출된다. 이후 친이계가 당의 실권을 잡으면서 18대 총선에서 급기야 친박에 대한 대대적 살생이 감행되기도 했다.

강 대표는 총선 불출마 기자회견에서 “양 계파의 싸움에 참고 또 참았다. 차라리 제가 수모를 당하는 게 전체를 위해 도움이 된다고 믿고 희생했다”며 “이제 더 이상 친박이다, 친이다 이런 애기가 나오지 않길 바란다”고 거듭 당부했다. 그의 이 같은 발언에서 당내 계파갈등의 정도를 충분히 가늠해볼 수 있다.

강 전 대표는 지난 4.27 재보선에서 분당에 출마, 정치적 재귀를 꿈꾸기도 했지만 민주당 손학규 대표와 맞붙으면서 발목을 잡혔고, 결국 패장으로 물러서야만 했다.

與-野, 쇄신과 통합바람 타고 당내 ‘물갈이’ 예고

한나라당은 ‘디도스 사태’라는 악재를 만나면서 지도부가 전면 사퇴했다. 이에 따라 박근혜 전 대표를 중심으로 현재 당 쇄신을 위한 작업이 진행 중이다.

민주당은 시민통합당과 통합을 이뤄 ‘민주통합당’의 새로운 당명으로 출범을 목전에 두고 있으며, 내년 총선에서 국민 참여경선제를 통해 공천이 확정될 것으로 보이면서 대대적 물갈이를 예고하고 있다.

여야 의원들의 잇따른 불출마 선언은 당내 이러한 분위기와 결코 무관치 않다. 쇄신의 소용돌이 속에서 몸을 낮춰 더 큰 정치를 하기 위한 수단으로 ‘불출마 카드’를 선택했을 수도 있고, 최근 정치권이 보여준 ‘구태’의 한가운데서 이에 실망하고 정치판을 떠나는 것일 수도 있다.

현역의원들의 불출마 선언은 앞으로 더욱 확산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총선이 다가오고 공천문제가 직접적으로 거론되면 당내 공천이 불확실하거나 공천을 받는다 하더라도 승리가 어렵다고 판단되는 지역구의 의원들은 ‘선당후사’라는 명분을 내세우며 불출마를 선언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더욱이 영호남 중진의원들의 퇴진압박이 그 어느 때보다 높게 점쳐지면서 당내 물갈이 폭이 더욱 커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결국 여의도에 불어 닥친 쇄신의 칼바람이 대대적 물갈이로 이어지면서 여야 정치권은 추이를 지켜보며 총선 불출마에 대한 깊은 고민에 빠져들고 있다.

<정찬대 기자> mincho@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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