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경 수사권갈등 점입가경

▲ <정대웅 기자> 조현오 경찰청장

검경 수사권 조정안이 시행되면서 수사권 조정을 둘러싼 검경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경찰은 검찰에서 보낸 진정·탄원 접수를 거부하고 있고, 검찰은 경찰이 신청한 압수수색 영장을 기각해 맞대응에 나섰다. 형사소송법 개정과 대통령령을 놓고 첨예하게 대립해온 검경이 이제는 일선 현장에서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는 모양새다. 이에 검찰과 경찰의 볼썽사나운 밥그릇 싸움에 시민들만 피해를 입고 있다.

이런 가운데 검경 수사권 조정안을 둘러싼 갈등의 핵심은 경찰의 강력한 정보력에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이와 함께 검찰은 검경 수사권 조정안 시행 이후 내사지휘 거부로 불거진 팽팽한 대립상황을 뒤집을 반전카드를 준비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흘러나오고 있다.


 

준법투쟁 선언한 경찰…검경 일선 현장에서 정면충돌

경찰, 검찰 힘 빼기로 힘 양분하려 한다는 분석 나와



경찰청은 대통령령 제정에 따라 ‘검찰의 수사 지휘를 법 테두리 안에서 최대한 거부하라’는 내용의 수사실무지침을 일선 경찰서에 내려보냈다. 지난 3일 ‘대통령령 제정, 시행에 따른 수사실무 지침’은 ‘지검장 등의 수사준칙 시행 관련 지침’, ‘수사개시, 범인인지서 작성 관련 지침’, ‘송치지휘(수사 중단·송치명령) 관련 지침’ 등 모두 17개 세부항목으로 구성돼 있다.


특히 경찰은 검찰의 내사·진정 사건은 내사로 간주해 수사지휘를 받지 않기로 했다. 그동안 검찰이 관행적으로 의뢰해오던 진정사건을 더 이상 수사해주지 않겠다는 것으로 사실상 ‘준법투쟁’을 선언한 셈이다.


검찰 역시 정식 수사 개시 여부를 증명하는 ‘범죄인지서’가 누락됐다며 경찰의 압수수색 영장을 기각하고 나섰다. 이처럼 검찰과 경찰 모두 그동안의 관행을 거부하고 원칙 대응에 나서면서 마찰이 끊이지 않고 있는 형국이다.


이같은 경찰의 검찰 내사 지휘 거부는 ‘검찰 영역에 제한을 두겠다는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또 경찰이 총선과 대선이라는 국가 중대사를 앞두고 검찰 힘빼기에 나서 힘을 양분하려 한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내사 지휘 거부 배경?


경찰이 최근 수사국에 기업형 조직폭력배뿐 아니라 고위 공직자와 검사의 비리까지 첩보를 입수하고 수사에 활용하는 ‘범죄정보과’를 신설하는 등 전면전에 나선 것도 이 같은 주장에 설득력을 더하고 있다.


지난 2일 대구 수성서와 성서서가 검찰 수사 사건을 받지 않는 것을 시작으로 검찰 내사 지휘를 거부하는 일선 경찰서가 늘어났다. 검찰은 관행대로 직접 수사를 개시하지 않고 경찰에 내사 지휘를 했고 이에 경찰이 사건 접수를 거부하면서 논란이 일었다. 경찰이 검사의 수사중단·송치 명령 권한의 범위를 매우 제한적으로 해석해 내사 지휘를 사실상 거부한 것이다.


이에 경찰이 검찰의 내사 지휘를 계속 거부할 경우 검찰 수사에 어려움이 예상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또 경찰이 사실상 수사 업무 자체를 거부한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그동안 검찰이 접수한 진정·탄원 사건의 80% 가량을 경찰이 수사해왔기 때문에 검찰 지휘거부 사태가 전국 일선 경찰서로 확산 될 경우 검찰 업무가 마비될 것 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특히 수사관할 범위가 전국단위와 연계돼 내사첩보수집 단계부터 검경간 수사 협조가 필수적인 ‘미제사건’의 경우 수사차질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조현오 경찰청장은 지난 3일 “내사 지휘 접수 거부는 형사소송법 개정에 따른 현실에 맞춘 것”이라며 “경찰 한 명이 연간 내사사건을 13건 처리하지만 검찰은 1.5건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또 최근 경찰 수뇌부 출신 인사들의 총선 출마가 가시화되고 있다. 이는 경찰 안팎에서 경찰 출신 인사가 입법부에 활발히 진출해 경찰의 입장을 대변해야 한다는 의견이 힘을 얻으면서 경찰 인사의 총선 출마를 부추기고 있는 것. 특히 검경수사권 조정에 따른 갈등이 ‘검찰 견제를 위해서라도 경찰 출신이 정치에 참여할 필요성이 있다’는 분위기에 불씨를 당겼다. 최기문 전 경찰청장과 박종준 전 경찰청 차장이 총선 출마를 공식화한 가운데 경찰 수뇌부 출신 인사 4명의 출마 가능성도 꾸준히 흘러나오고 있다.


이런 가운데 검경 수사권 조정안을 둘러싼 갈등의 핵심은 경찰의 정보력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검찰의 선택은?


13만 명을 보유하고 있는 경찰의 조직력과 정보력은 국내 최고다. 전국적 정보망을 갖춘 경찰의 정보는 특히 대선과 총선이라는 대형 이벤트를 앞두고 민심파악을 위한 주요 정보로 활용된다. 경찰은 전국적 조직에 기반한 저인망식 정보 수집을 해 다른 사정기관보다 선거와 관련된 구체적이고 신뢰할만한 정보 입수에 발빠른 강점을 갖고 있다.


경찰은 범죄정보는 물론 민심 동향까지 훑는 광범위한 정보력을 갖고 있다. 경찰이 수집하는 정보는 범죄정보, 민심 및 여론 동향, 주요 인사 동향 등이 포함된다. 일례로 노무현 정권은 사정기관 정보 중 경찰 정보를 가장 신뢰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검찰과 경찰이 상대기관에 대한 비리 정보를 수집하는 상황이 벌어진다면 경찰이 유리한 위치를 선점할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수사권 조정 당시 검찰 측 역시 경찰의 막강한 정보력을 수사권 부여 반대 논리로 삼았으며, 경찰의 정보력 강화가 권력집중현상을 빚을 수 있다는 우려를 내놓기도 했다.


한편 경찰의 내사 지휘 거부 ‘강수’에 검찰이 판을 뒤집을 반전카드를 준비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검찰이 경찰 핵심인사 비리·비위를 조사하는 등 분위기 반전을 꾀하고 있다는게 소문의 내용이다. 이에 대해 한 검찰 관계자는 “경찰과 불필요한 갈등을 일으키지 않고, 경찰 심기를 가능한 건드리지 않는 선에서 방안을 찾으려고 하고 있다”며 “경찰이 내사 지휘를 받지 않겠다고 할 경우 검찰이 강제할 수단이 없다”고 말했다. 대검찰청도 지난 5일 단순 진정·탄원사건에 대해서 내사지휘를 하지 않기로 방침을 정했다.


<최은서 기자> choies@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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