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은이파, ‘풀살롱’으로 1년 반 만에 331억 매출

▲ <뉴시스> 조양은

재건을 노리던 조직폭력배들이 일망타진됐다. 1970~80년대 서방파, OB파와 함께 국내 폭력조직을 삼분했던 ‘양은이파’를 재건하려던 조직폭력배 일당이 검찰에 붙잡힌 것. 일당은 유흥주점과 숙박업소를 운영하면서 불법 성매매를 알선해 수백억 원의 돈을 끌어 모았다. 양은이파가 조직된 당시부터 조직원으로 활동하던 김모(50)씨는 두목 조양은(61)으로부터 공식 후계자로 지목되자 본격적인 조직 재건에 나섰다. 검찰은 양은이파 재건조직 등이 검거됨에 따라 과거 폭력조직을 재건하려는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출소 후 조양은 신임 하에 공식 후계자로 지목돼 양은이파 재건 나서 

손님 1인당 40만 원씩 받아 이 중 23% 양은이파 순수익으로 돌아가


서울중앙지검 강력부(부장 김회종)은 지난 2일 유흥주점과 숙박업소를 운영하면서 폭행과 금품갈취, 성매매알선을 일삼은 혐의로 김씨 등 양은이파 간부와 조직원 4명을 구속기소했다. 검찰은 또 1980년대 그룹 ‘강병철과 삼태기’의 멤버 박모(51)씨 등 2명은 불구속 기소하고 달아난 폭력배 2명을 지명수배했다.


양은이파 재건 기도


양은이파는 1975년 당시 서울지역 폭력조직 가운데 최대 규모였던 신상사파를 기습 공격해 명동을 장악한 ‘명동 사보이호텔사건’을 주도한 조양은이 1978년에 결성한 폭력조직이다. 이번에 구속된 김씨는 광주에서 상경해 양은이파 결성 당시부터 조직원으로 활동해 온 인물이다.


김씨는 양은이파 가입 후 무교동에서 숙소 생활을 하며 숙박과 유흥업소를 관리해오가 1980년에 핵심조직원으로 활동하게 됐다. 김씨는 양은이파 산하조직인 ‘순천시민파’ 두목이 부두목의 반란을 제압하는 제압조에 포함돼 이른바 ‘양 조직 간의 전쟁’을 무사히 치뤘기 때문이다.


이후 김씨는 조양은이 1981년 김해교도소에 복역 중일 때 이 곳 경비교도대로 발령받아 군복무를 하며 조양은과 조직원들 간의 연락책 역할을 하며 신임을 얻었다. 김씨는 이때부터 ‘양은이파’ 재건을 다짐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양은이파는 서울과 광주, 대전, 순천 등의 각 지방조직까지 규합해 전국적 규모의 조직으로 세를 키웠으나, 1980년 2월 순천시내 폭력배 20여 명과 패싸움을 벌였다 폭력범죄단체 구성 혐의로 기소돼 조직이 와해됐다.


특히 김씨는 1989년 서울 구로구 독산동의 한 스텐드바 앞에서 ‘순천시민파’의 부두목 박모씨를 흉기로 난자해 전치 11주의 중상을 입힌 살인 미수 사건으로 악명을 떨쳤다. 당시 김씨는 서울지검 강력부에서 조양은을 살인 미수 혐의로 구속기소하자 “개인적인 감정으로 폭력을 휘둘렀을 뿐 조양은과는 무관하다”며 단독 범행이라고 허위 진술했다. 결국 김씨는 살인미수 혐의로 징역 15년을 선고받아 14년 5개월간 복역하고 2005년 출소했다. 2009년부터 김씨는 조양은의 신임 하에 후계자로 인정받아 활동하며 양은이파 재건을 위한 날개짓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조양은은 김씨를 후계자로 지목한 뒤 일선에서 떠나 조직의 원로로 활동하고 있다.


이후 김씨는 부두목 정모(46)씨 등과 함께 조직 재건 목적으로 명동에서 활동 중인 폭력배 40여 명을 끌어 모아 조직 재건을 꾀했다.


풀살롱으로 수백억 수익


김씨는 서울 강남  역삼동 일대에 룸살롱 4곳과 모텔을 차리는 등 유흥타운을 조성해 불법 성매매를 알선했다. 김씨는 룸살롱과 성매매 숙박업소를 한 건물에 모아 놓은 유흥업소인 이른바 ‘풀살롱’을 운영하며 2010년 6월부터 지난해 11월까지 331억 원의 매출을 올리고 78억 원의 수익을 냈다.


김씨는 이 풀살롱에 여종업원 200명, 영업사장·실장 등 30여명을 고용해 기업형으로 운영했다. 김씨는 바지사장을 내세웠으며 손님 1인당 평균 40만 원을 받아온 것으로 조사했다. 이중 아가씨들과 영업사장 및 실장 임금 및 운영비를 제외한 매출의 23%가량을 김씨 일당이 챙겼다.


김씨는 유흥업소 운영 수익금으로 불법 사채업도 했다. 그는 채무를 빌미로 조직원을 동원해 채무자의 집과 사무실로 찾아가 행패를 부렸다. 또 풀살롱 전용룸과 창고에서 영업부진과 청소불량 등을 이유로 영업사장을 수시로 때리고 BMW 스포츠카를 빼앗기도 했다.


이뿐 아니다. 김씨는 영업사장에게 영업손실금 명목으로 8억 원 상당의 각서 작성을 강요했다. 2억4000만 원을 빌린 채무자가 돈을 제때에 갚지 못하자 룸살롱 옥상 창고로 끌고 가 야구방망이로 마구 때려 무릎인대를 파열시켰다. 또 이 채무자를 보름 동안 감금해 제트스키와 인피니티 차량을 받아내는 등 모두 8억 원을 뜯어냈다. 김씨는 리모델링을 맡긴 공사업자에게도 공사비를 부풀렸다는 트집을 잡아 미지급 공사금 1억4500만 원을 주지 않고, 이미 지급한 2억4000만 원을 되돌려 받기도 했다. 


조양은의 살해지시는 사실?


한편 검찰은 조사과정에서 김씨가 2004년에 작성한 자서전 ‘보스의 전설은 없다’ 초본을 압수해 새로운 사실을 파악했다. 1989년 순천교도소에 수감 중이던 조양은이 김씨에게 “조직의 배신자 순천시민파 부두목을 손보라”며 살인을 지시했다는 내용이 김씨 자서전에 기록돼 있었던 것이다. 이 자서전의 내용은 제목대로 조양은의 전설을 부정하는 내용으로 조직에 대한 불만이 주로 적혀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검찰은 “이미 공소시효가 지난 사건이다”며 “현행법상 무죄 판결은 재심 사유가 되지 않아 무죄로 확정된 조양은에 대한 처벌이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검찰은 2000년대 들어 폭력조직원이 대거 출소함에 따라 조직재건 움직임과 폭력조직간 도심 충돌 현상이 재현되고 있는 것으로 보고 폭력조직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최은서 기자> choies@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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