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의 비상대책위원회(非對委)는 땅에 떨어진 민심을 한나라당 스스로 회복할 수 없다는 절박감에서 설치된 비상기구이다. 당 지도부를 해체하고 국회의원 4명과 외부인사 6명으로 구성됐으며 박근혜 전 대표에게 위원장직과 전권을 맡겼다.

비대위는 4개의 분과위원회를 둔다. 1)정치개혁및 공천제도 개선, 2)정강정책및 총선공약 개발, 3)온·오프라인 소통, 4)인재영입, 등이 그것들이다. 동시에 현장을 다니며 국민과의 소통 및 정책쇄신 문제 등도 수렴키로 했다.

그러나 비대위는 12월 27일 출범하면서 내분에 휩싸였다는데서 존재적 가치와 실효성을 의심케 한다. 실효성의 문제점은 다음 네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비대위는 집권 여당이며 거대 정당인 한나라당 위에 겹쳐 세워진 옥상옥의 중복 기구라는 데서 필요한 건지 따져볼 일이다. 한나라당은 정치개혁과 공천제도 개선 등을 다룰 수 있는 방대한 조직과 기능을 두루 갖추고 있다. 그럼에도 한나라당이 비대위를 설치하였다는 것은 한나라당 자체에 대한 뿌리깊은 불신 탓이다. 친이·친박·소장파 등으로 갈라졌고 총선 후보 공천도 실세들의 담합과 낙점식으로 이뤄졌다는데 기인한다. 한나라당은 뿌리깊은 불신과 모순을 뼈를 깎는 아픔으로 도려내면 된다.

한나라당이 스스로 위기에 대처할 능력이 없다면, 수권정당으로서 자격이 없다. 해체되어 마땅하다. 더욱이 박근혜와 쇄신파측이 비대위를 보기 싫은 사람들을 쳐내기 위한 거수기로 이용하려 한다면, 정당성을 상실하고 반발만 빚어낼 따름이다. 외부인을 끌어들여 인적쇄신의 악역을 맡기려 한다면, 더 더욱 무책임하고 비굴한 짓이다.

둘째, 일부 비대위 위원들이 합의과정을 거치지 않은 채 튀는 발언으로 한나라당을 내분으로 들끓게 했다는데서 당에 도움이 될지 의심스럽다. 비대위의 이상돈 교수는 “현 정권을 창출해 이끌어 온 주류들과 당 대표로서 물의를 일으키고 재·보선에서 참패한 분들은 책임지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고 내뱉었다. 김종인 위원도 인적쇄신을 강조하며 이 위원의 발언을 지지하고 나섰다. 인적쇄신은 쿠데타 하듯이 싹쓸이 방식으로 해선 안 된다. 능력과 도덕성 그리고 과거 행적 등을 신중히 고려하며 합리적 절차를 거쳐야 한다.

여기에 한나라당 관련자들이 가만히 있을 리 없다. 그들은 김 위원이 비리로 감옥에 갔던 사람으로 비대위 위원 자격이 없고, 이 위원은 천안함 피침과 관련해 북한 소행이라기 보다는 선체 피로에 의한 침몰로 주장한 바 있다며 두 사람의 사퇴를 요구하였다.

셋째, 한나라당 불신과 추락에 대한 비대위의 인식이 옳은 것인지 의심스럽다. 한나라당 불신은 경기침체, 20%의 젊은 세대 실업률, 부의 불균형, 웰빙당·부자당 이미지, 기회주의적 처신, 무소신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들 중에서도 경제침체에 대한 불만이 가장 결정적이다.

하지만 비대위의 인식 초점은 인적쇄신으로 쏠려있다. 현실인식에 대한 오류가 아닐 수 없다. 비대위는 단순한 인적쇄신 보다는 경제회복및 부의 배분 등에 중점을 두고 대안모색에 집중해야 한다. 4·11 총선을 앞두고 인적쇄신과 공천기준 마련 등이 급한 건 사실이지만, 비대위는 넓게 봐야 한다. 점령군, 국보위, 완장찬 사람 같이 설쳐서도 안된다.

한나라당은 거대 집권여당으로서 땅에 떨어진 신뢰도를 스스로 끌어올릴 수 있다는 자신감과 결자해지(結者解之)의 자세로 임해야 한다. 한나라당의 미래는 바로 한나라당에 의해 결정돼야 하며 낯선 외인부대에 맡겨선 안 된다. 책임 있고 당찬 한나라당을 보고싶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