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4일 실시된 대만의 총통 선거에서 국민당의 마잉주(馬英九) 총통(總統)이 승리했다. 마 총통은 민진당의 차이잉원(蔡英文:여) 후보를 56.6% 대 45.63%로 눌러 2008년 초선에 이어 재선에 성공했다.

국민당의 마 총통은 대선 유세 중 중국과의 교류협력 강화를 역설하면서 “안정되고 발전적인 미래를 위해 전진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에 반해 민진당의 차이 후보는 마 총통이 대만의 “대중(對中) 경제의존도를 높여 국가의 정체성을 훼손시켰다”며 대중 교류 활성화에 제동을 걸고 빈부격차 해소와 청년일자리 창출 등을 다짐했다.

마 총통은 1950년 홍콩에서 태어나 대만대 법학과를 거쳐 미국 하버드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법무장관 시절 정치권에 대한 칼날 같은 사정과 폭력조직과의 전쟁을 주도하면서 ‘청렴한 정치인’이라는 명성을 얻었다.

그의 부인 저우메이칭(周美靑)은 뉴욕대 법대를 나온 변호사다. 저우는 늘 단발머리에 화장하지 않은 수수한 얼굴, 보석이나 반지도 없으며 명품 핸드백도 없다. 출퇴근은 버스로 하며 청바지를 즐겨 입는다.

마 총통은 집권하면서 대만과 중국은 각기 헌법에서 ‘하나의 중국을 규정하고 있다’며 ‘하나의 중국’ 원칙을 선언했다. 마 총통의 국민당은 1949년 중국 본토에서 대만으로 쫓겨났으나 중국 본토가 국민당이 수복해야 할 구역이라며 ‘하나의 중국’ 원칙을 고수해 왔다.

공산국 중국도 ‘하나의 중국’을 주장한다. 1982년 덩샤오핑(鄧小平)은 홍콩·마카오·대만을 일국양제(一國兩制)로 규정하고 대만을 홍콩과 마카오와 같이 중국에 귀속한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대만의 전임 천수이볜(陳水扁) 총통은 대만과 중국은 별개의 독립체라며 ‘하나의 중국과 하나의 대만(一中一臺)’을 주장했다. 천 전 총통은 대만 출생으로 1949년 이전 대륙에서 이주해온 토착 대만인들을 중심으로 구성된 민진당 소속이다.

국민당의 마 총통은 취임하면서 중국과 59년만에 통상·통신·통항 3통 실시에 합의했고 실행에 들어갔다. 그 후 중-대만 교역량은 크게 증폭돼 연간 1300억 달러에 달하고, 중국에 진출한 대만 상공인은 100만 명에 이른다. 대만인들이 1990년대 이후 중국에 투자한 돈은 1500억 달러를 상회한다. 대만 수출의 40%가 중국으로 간다. 연간 170만 명이 왕래하며 잘 사는 대만으로 시집온 중국 신부도 30만 명이나 된다.

하지만 1·14 대선에서 패배한 민진당은 일자리 창출과 청렴도에서 국민당에 크게 뒤졌다. 전임 천 총통은 깨끗한 척했으나 부패와 수뢰죄로 17년6개월의 징역형을 받고 복역중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깨끗한 척하더니 수뢰죄로 조사받던 이중성을 상기시켰다. 대만 유권자들은 민주화나 외쳐대고 장래를 불안케 하며 깨끗한 척하던 민진당에 등을 돌렸다.

마잉주 총통의 재선은 남북한에 적지 않은 교훈을 준다. 남북한은 경제교류를 활성화해 서로 득이 되는 윈윈(Win-Win·서로 승리)관계로 나서야 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북한은 경제교류 대신 천안함 격침은 물론 연평도 포격 등 도발로 일관한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핵무기를 개발해 핵 공격마저 서슴지 않을 태세다. 김정일은 작년 사망했지만, 20대의 철부지 아들 김정은이 후계자로 나서 ‘유훈 통치’를 떠들어대며 변할 조짐을 보이지 않는다.

김정은이 대만·중국관계에서 배워야 할 교훈은 분명하다. 중국처럼 개방하고 동족 끼리 교류협력하며 윈윈 관계로 나서야 한다. 그래야만이 북한도 남한과 함께 번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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