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 당무 거부, ‘진보의 부활’ 표류 위기

▲ 통합진보당 심상정, 이정희, 유시민 공동대표<사진=정대웅 기자>

[일요서울ㅣ정찬대 기자] 4월 총선을 앞두고 통합진보당이 예비후보들의 경선규칙을 놓고 극심한 갈등을 보이고 있다. 특히 일부지역에서는 옛 민주노동당, 국민참여당, 통합연대 출신 예비후보들의 대립이 극에 달하면서 후보간 조율이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공동대표단의 권고 및 조정안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등 갈등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어 ‘진보의 부활’을 꾀하며 출범한 통합진보당의 발걸음이 더욱 무거워지고 있다. 급기야 유시민 공동대표는 현 상황을 ‘무정부 상태’라 진단하고 당무를 내려놓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통합진보당, 총선 앞두고 계파갈등 ‘극심’

지난해 12월 민주노동당과 국민참여당 그리고 진보신당 탈당파인 통합연대가 합당하면서 통합진보당이 새롭게 출범했다.

그간 지지부진한 모습을 보였던 진보정당은 통합진보당 창당을 통해 ‘진보의 부활’을 시도했지만, 4.11총선을 앞두고 예비후보 조정문제로 계파간 갈등을 보이면서 불협화음이 초래되고 있다.

현재 통합진보당은 170여 곳의 지역구에서 총선 출마자를 확정했으며, 이중 10개 지역구에서는 예비후보자들이 경선 규칙을 놓고 입장을 조율 중에 있다.

문제는 복수의 후보가 출마를 준비 중인 지역의 경선규칙을 특정 후보에 의해 거부당하고 대표단의 수용 권고조차 먹히지 않는 상황이 발생하면서 사태가 더욱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곳이 서울 성북갑, 성북을, 구로갑, 울산동구 등 4개 선거구로 이들 지역구에서는 후보간, 계파간 갈등으로 경선과정에서 파행사태가 빚어지고 있다. 결국 지난 4일까지 모든 지역구의 출마자를 결정한 후 본격적인 총선체제에 돌입하겠다던 지도부의 구상에도 곧바로 차질이 발생했다.

서울 성북갑은 민주노동당 출신 정태흥 예비후보와 국민참여당 출신 엄윤상 예비후보가 치열한 접전을 벌이고 있으며, 성북을 지역구는 민주노동당 출신 편재승 후보와 통합연대 출신 박창환 후보가 경쟁하고 있다.

또한 구로갑의 경우 민주노동당 출신 오인환 후보와 통합연대 출신 이호성 후보가 맞붙었으며, 울산동구는 민주노동당 출신 이은주 후보와 통합연대 출신 노옥희 후보가 당내 경선을 준비 중이다.

그러나 국민참여경선을 통해 최종 후보를 선출하기로 한 이들 지역구는 각 후보간 이해관계가 얽히면서 파행이 지속되고 있다. 특히 중앙당 후보조정위원회가 이들 지역에 맞는 경선 규칙 등을 권고했음에도 불구하고 옛 민주노동당 출신 예비후보들이 이를 모두 거부하면서 갈등은 더욱 증폭되고 있다. 물론 공동대표단의 권고수용 호소도 소용이 없었다.

이런 가운데 일부 후보들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대표단 권고 거부가 결국 당원투표를 염두에 둔 행동이라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대표단의 조정이 무산될 경우 당원 투표를 통해 후보를 결정하게 되는데, 그렇다면 당원 규모에서 월등한 일부 계파와 후보가 절대적으로 유리해질 수밖에 없다.

구리·하남 참여경선 연기... ‘패권주의’ 논란

지난달 30일 예정됐던 경기 구리와 하남시의 통합진보당 예비후보 국민참여경선이 돌연 취소됐다. 투표용지에 ‘기권’ 기표란을 넣기 위한다는 이유에서다.

당원이 아닌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한 국민참여경선에서 통합진보당 중앙선관위는 투표가 진행되는 날 갑작스레 투표를 취소하고 이날 오전 8시께 투표가 연기됐다는 내용의 문자 한통만을 각 선거인단에 전송했다. 선거인단에 참여한 시민들은 적잖이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선거 연기가 공동대표단에게 통보조차 되지 않은 채 벌어진 이날의 선거파행 사태는 공정성 시비로 이어졌고, 이후 구 민주노동당 당권파의 당선을 위한 선관위 측의 일방적 투표무산 결정이라며 ‘패권주의’ 논란까지 가져왔다.

이날 투표가 무산되자 일부 후보와 당원들은 중앙당에 즉각 항의하는 등 진상규명을 요구했다. 특히 이들은 구 민주노동당 당권파 계열의 특정 후보에게 국민참여경선이 불리할 수 있다는 점을 꼬집으며 이 때문에 투표를 연기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실제로 구리의 경우 350명의 당권자 가운데 민주노동당 계열이 210명, 국민참여당 계열이 90명, 통합연대 계열이 50명 정도로 민주노동당이 당원 투표에서 월등하게 유리한 상황이지만, 선거인단 투표의 경우 통합연대 출신 후보가 지역 활동을 기반으로 1,000여명이 넘는 선거인단을 모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국민참여경선은 선거의 막판 변수로 떠올랐다.

또한 하남시는 집단 입당을 통한 당비 대납 의혹이 불거지면서 패권에 의한 선거의 공정성 문제가 야기되고 있다. 실제로 조승수 예비후보와 이경훈 예비후보가 경합을 벌이고 있는 울산 남구의 경우 경선과정에서 당원 부정입당 및 당비 대납 등이 불거져 선거일정이 연기되는 파행을 겪고 있다.

이 지역은 당초 258명의 당권자가 있었지만 경선이 확정된 1월 이후 약 2주 동안 543명의 입당자가 몰리면서 이에 대한 의혹이 제기됐고, 이후 울산시당 선관위는 자체조사를 실시한 결과 233명만을 정상적 절차에 따른 입당으로 인정하고, 나머지 310명은 당비대납 등 부정입당과 서류미비 등으로 당권을 취소했다.

유시민 “심한 무력감 느낀다” 토로

유시민 공동대표는 당내 이 같은 상황에 대해 “무정부 상태”라고 규정한 뒤 대표단의 조정안이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는 상황에서 “당 대표로써 심한 무력감을 느낀다”며 당무를 거부했다.

유 대표는 실제로 지난달 26일부터 당 대표 업무를 보지 않았으며, 강원도당, 서울시당, 경북도당 창당대회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또한 지난달 30일에는 공동대표단 회의에 참석하지 않아 회의가 무산되기도 했다.

그는 지난 1일 당 게시판을 통해 “당의 통합과 총선 승리를 저해하는 여러 일들이 당 안팎에서 일어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예방하거나 바로잡을 수단이 없는 현실 앞에서 너무나 심각한 무력감을 느낀다”며 당무 거부에 대한 배경을 설명했다.

이어 “총선 후보를 결정할 때 합의 조정을 우선으로 한다는 것은 통합할 때 우리 모두가 서로에게 한 약속”이라며 “하지만 대표단에 조정 노력을 요청하고 그것을 존중하기로 한 전국운영위 결의와는 달리 대표단의 조정안을 그대로 받아들인 경우가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통합진보당 공동 대표단은 전국 30여 개의 경선 지역 가운데 10여 곳에 후보를 정하는 후보 조정안이나 경선규칙 조정안을 제안했지만 대부분의 지역에서 이를 거부당하는 등 대표단 권고안이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유 대표는 이에 대해 “우리 당은 지금 중앙당 지도부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 무정부상태에 빠져 있다”며 “공동대표단은 예비후보자들에게 간곡하게 호소하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을 찾지 못했다. 대표단의 노력을 별로 인정하지 않거나 존중하지 않는 것으로 느꼈다”고 심경을 토로했다.

<정찬대 기자> mincho@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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