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 3선급 배제? 도덕성 기준 내정 ‘논란’

▲ 지난 8일 국회 민주통합당 대표실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한 박지원, 문성근 최고위원이 똑같은 표정으로 회의자료를 살피고 있다. <정대웅 기자> photo@ilyoseoul.co.kr

현역·전의원·비례·신인 차등가산점 부여
한명숙 ‘당주류’ VS 박지원 ‘구민주계’ 전운 감지


[일요서울Ⅰ정찬대 기자]  4·11총선을 앞두고 민주통합당에 불어 닥친 ‘호남 용퇴론’이 그 어느 때보다 매섭다. 중진급 호남 인사들의 수도권 출마가 잇따른 데다 지난 9일엔 5선의 호남 중진인 박상천(전남 고흥·보성) 의원이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특히 민주통합당 공천심사위원회가 공천심사를 착수한 시점에 나온 불출마 선언이라는 점에서 향후 ‘호남 물갈이’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한명숙 지도부의 인적쇄신과 ‘호남 물갈이론’이 맞물리면서 민주통합당의 현역의원 교체 폭이 더욱 커질 것으로 공천 ‘칼바람’을 예고하고 있다. 특히 당 공심위 일각에선 ‘호남 3선급 공천 배제론’과 함께 도덕성에 ‘흠집’이 있는 인물은 공천을 불가해야 한다는 공천기준이 흘러나오면서 구민주계 수장격인 박지원 최고위원의 향후 행보에도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호남 최고참 의원 박상천 불출마 선언

구민주계의 상징이자 호남의 대표적 정치인으로 꼽히는 박상천 의원이 4월 총선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박 의원의 총선 불출마는 그간 당 안팎에서 용퇴 압박을 받아왔던 호남 현역 중진의원들에게 상당한 충격을 가져다 준 것은 물론, 민주통합당의 ‘뜨거운 감자’인 호남 인적 쇄신의 기폭제가 될 것이라는 관측까지 낳고 있다.

박 의원은 9일 국회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갖고 “나이가 많아져 가족들이 몇 달 전부터 불출마를 요청해왔다”며 “보다 젊은 후배에게 자리를 물려주기 위해 총선에 출마하지 않기로 결심했다”고 불출마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그러나 ‘호남 용퇴론’에 대해 “인위적 물갈이는 선거를 통한 국민의 심판을 무시하는 것”이라며 “몇 사람이 앉아서 물갈이를 하겠다는 것은 오만하고 비민주적이며 한심스러운 발상”이라고 지적했다. 자신의 불출마가 ‘호남 물갈이’의 기폭제로 작용하는 것을 극도로 경계한 것이다.

호남 물갈이에 대한 강한 비판은 그만큼 당내 호남 중진의원들에 대한 압박이 크다는 것을 반증한다. 당 지도부는 국민경선 및 실사조사 등을 통해 자연스런 물갈이를 강조하며 인위적 물갈이를 부인하고 있지만 4.11총선에서 민주당 공천의 최대 관심지역인 호남에서 먼저 기득권을 버려야 한다는데 초점이 맞춰진 상태다. 그리고 호남 의원들의 수도권 출마 러시도 당내 이 같은 분위기와 결코 무관치 않다는 게 중론이다.

현재 호남에서 출마를 준비 중인 3선급 이상 중진의원으로는 김영진(5선, 광주 서구을), 김성곤(3선, 전남 여수갑), 이낙연(3선, 전남 함평·영광·장성), 강봉균(3선, 전북 군산), 이강래(3선, 전북 남원·순창), 조배숙(3선, 전북 익산을) 의원이 있으며 정세균(서울 종로), 김효석(서울 강서을), 유선호(서울 중구), 정동영(서울 강남을) 의원은 호남을 떠나 서울행을 선택했다.

당 안팎에서는 호남 의원들의 불출마 선언이 잇따라 이어질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으며, 호남 물갈이는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는 점에서 스스로 용퇴를 결정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는 말까지 나돌고 있다.

민주통합당 한 의원은 지난 8일 [일요서울]과 전화통화에서 “당에서 3선 이상의 호남 중진의원들은 나가달라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다”고 전한 뒤 “공천개혁으로 정치문화도 이제 바뀌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호남 물갈이론’에 동의했다.

“호남 물갈이는 4·11총선의 가장 큰 숙제”

민주통합당 임종석 사무총장은 지난 3일 기자들과의 오찬 간담회에서 “당의 중진 및 원로들이 이제 용단을 내려줬으면 좋겠다”며 ‘호남 물갈이’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임 사무총장은 “민주통합당의 인적쇄신은 현역 의원들이 많은 호남지역에서 어떻게 할 것이냐의 문제”라며 “공천 심사 작업을 시작하면 호남 물갈이가 민주당의 첫 숙제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민심은 호남의 인적쇄신을 호남 홀대나 불이익이 아니라 새로운 호남을 위한 것으로 평가할 것”이라며 “호남민심은 새로운 호남을 원한다. 정세균, 정동영 의원 등도 그런 민심을 읽어 수도권으로 간 것 아니겠냐”고 부연했다.

신경민 대변인 역시 호남지역 현역의원들에 대한 4월 총선 공천과 관련해 “공심위원들의 이해를 보아서는 단단히 벼르고 달려들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며 호남 물갈이 폭이 생각보다 커질 수 있음을 내비쳤다.

신 대변인은 이전에도 “당 외부 공심위원들 회의에 배석해 말씀을 들어본 결과 상당히 매서운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예상된다”며 “호남 쪽의 말뚝은 사라졌다고 얘기를 많이들 하시는데, 그 대목에 대해선 공심위원들도 다들 그렇게 얘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의 호남 물갈이는 올해 치러지는 총·대선의 야권연대와도 관련이 있다. 민주통합당 출범 전부터 구민주계는 ‘혁신과 통합’과의 통합에 반대하며 이른바 ‘독자전대파’를 구성했다. 진보정당과의 선거연합도 원칙과 기준이 있어야 한다며 제동을 걸어온 구민주계 세력들은 향후 진보통합당과 후보단일화 그리고 대권에서 야권연대에 걸림돌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한명숙 지도부의 호남 용퇴론은 더욱 힘을 받고 있다.

19대 총선 민주통합당 공천 기준은

민주통합당 공천심사위원회는 지난 8일 4·11총선 공천심사 기준으로 당선가능성의 배점을 줄이는 반면, 당 정체성관련 배점은 늘리기로 확정했다.

백원우 공심위 간사는 “이전의 도덕성과 당선 가능성 중심에서 정체성 중심으로 보기로 하고 이에 대한 세부적 구현 방안을 논의했다”고 밝혔다. 강철규 공천심사위원장은 공천심사 과정에서 “현역 의원들의 기득권과 당선가능성의 심사 비중을 줄이는 것이 공심위의 생각”이라며 “현역 의원들의 기득권은 고려하지 않겠다”고 일침 했다.

현재 공천 심사 기준과 관련 당 내부에서는 호남 3선 이상 현역의원에 대해서는 공천을 하지 않거나 여권 강세지역으로 출마를 권유하는 방안이 제시되고 있다.

또한 가산점 부과에 있어서도 정치신인은 20%, 비례대표 출신 및 前의원의 경우 10%, 또 다시 자신의 지역구에 출마하는 현역의원은 0%의 가산점을 부여하겠다는 것이 내부방침으로 정리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공심위원으로 활동 중인 민주통합당 모 의원은 9일 [일요서울]과 전화통화에서 “공천 기준은 원칙을 갖고 임하는 것”이라며 “비록 호남물갈이네 뭐다해서 당내 분위기가 뒤숭숭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쇄신작업은 필요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럴 경우 호남 중진의원들은 지역구 실사조사, 여론조사, 경선과정을 통해 자연스럽게 물갈이 될 공산이 높아진다.

한편 공심위는 지난 9일부터 11일까지 후보자를 공모한데 이어 13일부터 본격적인 후보자 심사에 착수했다. 민주통합당은 총선을 앞두고 국민적 여론이 우호적이란 점을 감안해 당선 가능성 이외에도 정체성과 도덕성, 당 기여도, 의정활동 등을 꼼꼼히 따지겠다고 벼르고 있다.

공심위에서 지역구별로 경선에 참여할 후보군을 3명 안팎으로 압축하면 오는 20일부터 이들 예비후보들의 본격적인 경선이 시작되게 된다. 경선은 국민참여경선을 원칙으로 하며 모바일 투표를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아울러 지도부가 전체 선거구의 30% 범위 내에서 후보를 결정할 수 있는 전략공천 카드도 어떻게 활용할지 변수다.

민주통합당의 지역구 공천은 다음달 16일까지 마무리하기로 했으며, 이와는 별개로 비례대표 공천을 위한 비례대표후보자 추천심사위원회를 구성하기로 했다. 지난 18대 총선에서는 공심위가 비례대표 추천권한까지 행사했지만 이번에는 내외부 인사 10여명을 선임해 별도의 심사위를 구성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엄지 투표, ‘호남 물갈이’ 수단으로 활용?

민주통합당은 4월 총선 후보자 공천을 위한 국민경선에 모바일 투표를 전면 도입하기로 했다. 국민경선은 전화와 인터넷 등으로 사전에 모집한 선거인단의 현장투표와 모바일 투표 결과를 합산하는 방식으로 치러진다.

모바일 투표방식은 지난 1.15 전당대회 당시 80만 명의 선거인단이 몰리면서 그 위력을 발휘한 바 있다. 민주통합당은 돈 봉투 사건과 같은 구태 정치를 청산하기 위해서도 모바일 투표는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을 피력하고 있다.

그러나 일부 호남지역 의원들 중심으로 모바일 투표에 비판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농어촌 지역이 많은 호남에서 자칫 모바일 투표가 ‘호남 물갈이’를 위한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박지원 최고위원은 이와 관련해 “농어촌 지역은 노인 인구가 40% 이상을 점유하고 있고, 특히 정보격차가 심한 50대 이상은 70% 이상에 육박한다”며 모바일 투표 도입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아울러 “정개특위에서 이러한 점을 잘 감안해 정보격차 해소방법과 투표소 증설을 강력하게 요구한다”며 선거인단의 직접 투표를 강조했다.

박 최고위원의 반발은 곧 한명숙 지도부를 ‘딜레마’에 처하도록 만들고 있다. 박 최고위원은 민주통합당 출범 전부터 ‘독자전대파’를 진두지휘하며 통합에 걸림돌이 되어왔다. 지난 1.15전대에서 비록 4위로 지도부에 입성하며 기세가 한풀 꺾였지만 호남지역 원외위원장과 현역 지역의원들은 여전히 그를 구민주계 수장격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한명숙 지도부가 ‘호남 물갈이’를 단행하는데 있어 박지원 최고위원은 언제든지 불협화음을 일으킬 수 있는 소지를 갖고 있다. 이에 당 주류측에선 한명숙 지도부가 공천과정을 통해 박 최고위원에 대한 거취를 두고 ‘보이지 않는 압박’과 그에 따른 구민주계의 반발로 당이 한바탕 홍역을 치를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는 시각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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