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조기성 기자]  총선 참패 위기감 속에서 서서히 고개를 들고 있는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 교체론은 1997년 15대 대선 당시 신한국당 이회창 후보와 2002년 새천년민주당 노무현 후보에 이어 세 번째다.

이전 두 번의 후보 교체론은 당내 경선에서 승리한 이후 불거져 나왔다는 점에서 ‘박근혜 후보 교체론’과는 차이가 있다.

하지만, 박근혜 비대위원장에 맞설 여권 내 뚜렷한 경쟁자가 없어 ‘새누리당 대선후보=박근혜’라는 공식이 성립해왔다는 점에서 비교 대상으로 회자되고 있다. 또한 120석 미만을 여당이 가져갈 경우 반박 진영에선 “지금의 후보로는 대선에서 이길 수 없으니 대안을 찾아야 한다”는 문제 제기가 일 공산이 높다.

1997년 대선 당시 이회창 후보는 당시 후보 확정 직후만 해도 50%를 웃돌았던 지지율이 민주당이 제기한 두 아들의 병역 면제 의혹이 확산되면서 급격히 떨어지기 시작했고 이를 빌미로 당내 후보 교체론자들의 ‘이회창 불가론’까지 불거지면서 지지율이 10%대로 곤두박질쳤다.

결국 ‘후보 교체론’이 무산되고 이인제 의원이 “정권 재창출 가망이 없다”며 신한국당에서 나가 독자 출마를 강행, 대선 패배의 결정적 계기가 됐다.

노무현 후보는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되자마자 승부수로 띄웠던 ‘민주세력 대연합’ 카드가 물거품 된데 이어 6ㆍ13 지방선거와 8.8 재보선에서 연속적 참패, 그로 인한 지지율 하락이 ‘후보 교체론’의 직접적 요인이었다.

노 후보는 결국 국민통합21의 대통령 후보인 정몽준과 후보 단일화 합의에 이른다. 국민 여론조사를 거쳐 단일 후보에 오른 노 후보는 대선 하루 전날 정 후보의 일방적 단일화 파기선언에도 불구하고 극적으로 당선됐다.

역대 대선에서 두 번의 후보 교체론은 창과 노의 운명을 갈리게 만들었다. 박근혜 위원장이 총선 참패가 현실화될 경우 ‘후보 교체론’ 압박을 어떻게 헤쳐 나갈지 벌써부터 정치권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kscho@ilyoseoul.co.kr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