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청사 임대 논란

▲ 뉴시스

[일요서울Ⅰ최은서 기자]  서울시가 시 소유인 옛 중앙정보부(현 국가정보원) 청사를 시민단체에 임대해 주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유력한 임차인으로 민주화운동 기념사업회가 꼽히고 있다. 일부 보수 언론에서는 시민단체 출신인 박원순 시장이 민주화운동 기념사업회 등 시민단체에 청사 건물을 무상에 가까운 헐값에 빌려줄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박 시장이 청사를 진보성향 시민단체에 청사에 임대해주는 것은 정치적 기반 다지기를 위한 포석일 수 있다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런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진보적 시민단체가 입주하는 것을 막기 위한 사전 작업이라는 주장도 있어 앞으로의 진행 과정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보수언론 “서울시, 청사 건물 시민단체에 헐값 임대” 주장
서울시 “내부적 논의도 없었으며 윤곽조차 나오지 않았다”


박 시장은 지난해 말 남산 청사 유휴 공간 활용 방안 중 하나로 남산 청사에 민주화운동 기념사업회의 숙원사업인 민주화운동 기념관이 들어서는 것에 대해 긍정적 의사를 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일부 언론이 박 시장이 시민단체들에게도 청사를 임대해 줄 것이라고 예상했다.

정치적 해석 분분

서울시 관계자는 “‘남산 청사’는 과거 중앙정보부 대공수사국이 사용한 건물이다”라며 “민주화 운동이 억압된 공간으로 역사적 의미가 있는 곳이라 민주화운동 기념관 공간으로 활용하는 것에 대해 적극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시민단체에 임대해 주는 방안에 대해서는 아직 확정된 바 없다. 논의를 하는 단계에 불과하다”며 “시민단체의 요청이 있어 다각적인 방법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10월에 신청사로 이전할 계획이다. 신청사 활용방안이 수립되면서 남산 청사 활용방안도 결정될 것이다. 활용방안이 본격적으로 논의되면서 민주화운동 기념사업회 임대 혹은 전시공간 확보 등이 결정될 것”이라며 “박 시장이 시청 건물을 조금이라도 더 시민이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신청사에는 다목적 홀 등이 있는데 그런 공간 등이 어떻게 활용되느냐에 따라 모든 것이 결정될 것 같다”고 밝혔다.

남산 청사는 1995년 12월 서울시 소유가 됐다. 중앙정보부는 남산 본관을 1972년 준공한 이후 본거지로 삼아오다 서초구 내곡동으로 옮기게 되면서 건물을 서울시로 넘겼다. 이곳은 1973년 서울대 법대 최종길 교수가 간첩혐의로 연행돼 조사를 받다 의문사한 곳이다. 또 민주화운동을 한 재야인사와 대학생 등에 대해 광범위한 고문이 가해진 곳이기도 하다.

때문에 이곳을 민주화운동 기념사업회 등에 임대해주는 것은 역사적 의미가 크다. 일각에서는 중앙정보부의 민주화운동 탄압과 인권유린에 항거한 역사를 남기기 위한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또 시민단체 임대설에는 박 시장이 정치적 입지 강화를 위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뒤따른다. 시민사회를 등에 업고 서울시장에 오른 박 시장에게 시민단체는 주요 지지 세력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서울시 관계자는 “정치적 입지 강화 등과 같은 이야기가 나오는데 사실무근이다”라며 “박 시장 취임 이후 전임시장 사업 지우기 등의 정치적 해석이 계속 불거져 곤혹스럽다”고 전했다.

민주화운동 기념사업회 관계자는 “지난해 12월 초에 이사장이 박 시장을 만난 자리에서 신청사가 완공 후 생기는 남산 청사 유휴공간을 활용하게 해달라고 요청했다”며 “남산 청사는 옛 중앙정보부 건물이기 때문에 민주화운동 상징성이 있다. 하지만 구체적 이야기가 오간 바는 없으며 실무접촉도 현재로선 없다”고 밝혔다.

민주화운동 사업회는 참여정부시절이던 2002년부터 민주화운동 기념관 사업을 꾸준히 추진해왔지만 공간 확보에 어려움을 겪어왔다. 사업회는 민주화운동 관련 자료를 90만 건 가량 전시·보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남영동 대공분실, 서대문 독립공원 등에 공간을 마련하려 했지만 벽에 부딪쳤다. 사업회 관계자는 번번이 “민주화운동 기념관을 위한 공간을 마련을 위해 노력해왔으나 자금과 부지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밝혔다.

공간 부족한데 임대?

신청사 입주는 오는 10월께 시작된다. 신청사에는 박 시장을 비롯해 주요 민원 부서들이 입주할 예정이다. 신청사 공간은 모든 부서가 입주할 만큼 공간이 충분하지 않아 신청사 완공 후에도 서소문 청사와 을지로 청사 등을 계속 사용해야 한다. 서울시는 남산 청사를 이용하는 일부 부서를 서소문 청사로 옮길 계획이다. 남산청사에는 소방방재본부, 도시안전본부, 교통방송(TBS) 등이 입주해 있다. 현재 서울시가 청사를 임대해 사용하고 있는 곳은 프레스센터, 상공회의소 등 총 5개소에 이른다. 이를 두고 일부 언론에서는 서울시 청사가 공간이 부족한데도 시민단체에 청사를 임대해 주려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서울시 관계자는 “신청사에 전 부서가 다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서소문 청사와 을지로 청사 등도 계속 쓰게 된다”며 “하지만 신청사가 완공되면 공간이 충분히 확보돼 임대 청사는 신청사로 옮길 계획이다. 남산 청사 유휴공간을 임대해 줄 수 있을 정도의 여유는 충분하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시민단체 임대설에 대해 “활용계획은 확정된 것이 없으며 임대 대상도 검토 중이다”며 “시민단체뿐 아니라 서울시 산하 사업소 등도 유휴공간 임대를 요청하고 있다”고 전했다.

서울시가 민주화운동 기념사업회 등 시민단체에 청사 건물을 무상에 가까운 헐값에 빌려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이에 대해 서울시 관계자는 “행정 법적 절차에 따라 차근차근 임대료 등을 결정할 것”이라며 “현재로선 임대료도 전혀 결정된 바 없고 윤곽도 나오지 않았다. 내부적인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임대료 문제를 논하는 것은 시기상조다”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또 “남산청사 임대 문제는 10월께 신청사 입주 이전에 최종 결정될 것이지만 현재로선 정확한 시기를 가늠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한편 전임 오세훈 시장은 2009년 남산 르네상스 계획을 발표하면서 남산청사를 철거해 공원화를 추진해왔다. 독재 정권의 상징인 중앙정보부 건물을 허물고 남산의 옛 산새를 복원해 시민들에게 돌려줌과 동시에 관광명소로 만들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내구연한이 충분히 남아있는 건물을 굳이 철거하고 공원을 조성하는 것은 예산 낭비라는 지적에 부딪쳐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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