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경 갈등 새 뇌관 ‘수사사건’…“독립은커녕 꼼수로 더 간섭” 경찰 분통

[일요서울|최은서 기자] 검경수사권 갈등의 불씨가 다시 지펴지고 있다. 법무부가 최근 검찰 사건 사무규칙을 개정하면서 기존의 ‘내사’로 분류된 사건에 대해 ‘수사사건’이란 새 개념으로 규정한 내용을 포함했다. 법무부는 개정안을 입법예고를 거쳐 지난달 법제처에 제출, 심사에 통과하면 전국 검찰에 전달할 방침이다. 검경 수사권 조정에서 밀린 뒤 경찰의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법무부가 ‘검찰 사건 사무규칙 일부 개정령안(법무부령)’에 수사사건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삽입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경찰이 날선 목소리를 내고 있다. 검경수사권 갈등이 검찰과 경찰 간 힘겨루기 양상으로 변질되면서 ‘그들만의 전쟁’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는 와중에 또 다시 양 조직 간 갈등이 불거져 험난한 파고가 예상되고 있다.

경찰 “검찰이 경찰 내사에 관여하려는 것” 분통
법무부 “수사권 조정문제와는 전혀 상관없다” 일축

 

한상대 검찰총장/조현오 경찰청장 [일요서울|정대웅 기자]

검경수사권 갈등의 핵심은 ‘내사 사건 범위’ 규정이었다. 내사는 형식적으로 형사입건하지 않고 실질적으로 범죄혐의가 있다고 보고 조사를 벌이는 것으로 범죄 혐의가 있는지 확인하는 단계다. 수사권 조정 과정에서 검경은 암묵적으로 자행해오던 불법적 내사 관행이 드러났지만 자성 대신 치열한 밥그릇 다툼을 벌였다. 경찰은 검찰 지휘를 받지 않아도 되는 내사 범위를 넓게 보려고 했고, 검찰은 경찰의 내사 영역을 크게 줄이려고 했다.

논란의 불씨 여전

수사권 조정 갈등은 검경 간 팽팽한 입장차로 파국으로 치달았다. 결국 ‘경찰의 내사 권한을 보장하되 내사 종결 뒤에는 검찰 통제를 받도록 하는 내용’의 대통령령이 확정돼 올해부터 검경수사권 조정안이 본격적으로 시행됐다. 하지만 경찰은 경찰 측 입장이 반영되지 않은 수사권 조정안에 대해 “대통령령이 검찰 통제라는 형사소송법 개정 취지를 살리지 못했다”고 비판의 날을 세웠다.

경찰은 사후 통제라는 단서가 붙었어도 사실상 내사 사건에 검찰이 관여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 경찰의 내사 권한이 제한된 것이라며 강력 반발했다.

대통령령에는 경찰 자체 내사 사건이라도 검찰이 사후에 지휘할 수 있는 견제 장치가 촘촘히 마련됐다. 경찰 내사 과정에서 피의자 신문조서 작성, 긴급체포, 체포·구속영장 청구, 주거지 압수수색을 한 사건에 대해서는 내사 종결 뒤에도 검찰에 내사 기록과 증거물을 제출해야한다는 규정이 명문화됐다. 또 경찰이 주거지 이외의 압수수색, 피의자 출석조사, 현행범 체포가 이뤄졌으나 내사 종결된 사건에 대해서는 분기별로 해당 사건목록과 요지를 검찰에 제출하도록 했다. 이 가운데 사건 관계인 이의제기나 인권보호 필요가 있는 경우 검찰에서 관련 기록과 증거물을 요구할 수 있게 됐다.

이에 대해 경찰은 “사실상 경찰 내사를 부정하고 검찰 내사를 통제장치 없이 확대했다”고 반발했다. 경찰청은 수사권 조정 대통령령이 제정된 직후 일선 경찰에 내려 보낸 수사 실무지침에서 내사와 수사 등에서 경찰 수사 주체성을 강조하며 검찰의 내사·진정 사건은 내사로 간주해 아예 접수하지 않기로 방침을 정하는 등 불만을 드러냈다. 검경수사권 조정은 대통령령 발효로 일단락 됐지만 논란의 불씨는 여전했다.

내사 지휘 근거 마련

이런 가운데 법무부가 검찰 사건 사무규칙 개정령안에 수사사건이라는 별도의 용어를 만들어 경찰 내부가 또다시 들끓고 있다.

법제처에 제출된 이 개정안이 심사에서 통과되면 경찰이 내사로 분류했던 진정·탄원을 비롯해 금융감독원이나 공정거래위원회 등 기관의 수사의뢰 사건을 수사사건으로 처리하게 된다. 이는 기존 ‘내사’로 한정됐던 사건 일부를 ‘수사사건’으로 보고 처리하도록 규정한 것으로 사실상 검찰이 경찰의 내사사건을 지휘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게 되는 것이다.

수사사건으로 처리할 경우에도 사건 번호를 수사 단계에서 설정하는 ‘형제O호’가 아닌 ‘수제O호’라는 새로운 표현을 붙여 수사지휘를 할 수 있도록 했다. 검사는 수사사건 처리 후 입건이나 입건유예, 혐의없음 등의 결과를 내놓을 수 있도록 하는 내용도 담고 있다. 이는 검찰이 내사 단계에서 입건 여부까지 결정하는 것으로 사실상 내사 단계에서부터 깊숙이 개입하게 됐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앞서 법무부는 지난 1월 19일 검찰 사건 사무규칙 일부 개정령안에 대해 경찰청 의견 조회를 했으며 경찰청은 지난 1월 30일 수사사건 등 일부 조항을 삭제하거나 수정해야한다는 의견을 법무부에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수사사건은 내사영역에 속하는 것”이라며 “개정된 형사소송법과 대통령령 제정으로 경찰 내사 지휘가 어려워지고 경찰이 검찰 내사진정 지휘를 거부하자 새로운 용어를 신설하는 꼼수로 검찰이 경찰 내사에 관여하려는 것”이라고 분통을 터트리고 있다. 경찰 측은 내부망 등을 통해 반발 글을 올리는 등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경찰의 내사 권한을 정면 반박한 처사”라며 “검경 수사권 조정안에서도 검찰통제라는 기존 취지를 살리지 못하는 등 큰 틀 대신 세부적인 틀만 자꾸 건들면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경찰은 형사소송법에서 위임받지 않은 수사 개념과 범위를 법무부령으로 신설하면서까지 형사소송법 등으로 확정된 내사의 독립성에 개입하는 것은 위헌이자 위법이라는 입장이다. 경찰은 경찰 사건 사무규칙 개정령안은 검찰 내부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수사 지휘 시에도 적용할 것으로 보고 있다. 정보수집과 탐문으로 내사가 제한된데 반발해온 경찰은 법제처를 사이에 두고 검찰과 힘겨루기를 벌이고 있다.

이에 대해 법무부 관계자는 “사무규칙 개정안은 검찰이 내부적으로 사건을 처리하고 관리하기 위한 규칙일 뿐”이라며 “수사사건의 범위도 명확히 정해지지 않았고 유동적이다”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경찰 쪽 이의제기로 딜레이가 있었다”며 “기본적으로 개정된 형사소송법과 대통령령을 이 개정안이 구속할 수 없기 때문에 수사권 조정문제와는 전혀 상관없다”라고 경찰 측의 주장을 일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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