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고건발 정계개편이 시작됐다.”DJ(김대중 전대통령)와 고건 전총리가 회동한 이후 정가 주변에서 나돌고 있는 말이다. 고 전총리는 17일 병문안 형식으로 DJ의 동교동 자택을 방문했다. 고 전총리가 DJ를 면담한 것은 지난해 5월 총리직에서 퇴임한 이후 1년 6개월여 만이다. 양측은 단순한 ‘병문안’이라며 정치적 확대 해석을 경계하고 있지만 두 사람의 만남은 그 자체만으로도 상당한 정치적 파장을 예고하고 있다.

특히 DJ정부 시절 국정원장을 지낸 임동원·신건씨가 구속되자 DJ는 노무현 대통령과 여권에 불편한 심기를 표출하고 있다. 또 호남민심이 동요하자 여권내 동교동계와 호남지역 의원들은 검찰에 강한 불만을 토로하는 등 핵분열 기운마저 감지되고 있다. 따라서 정치권은 이러한 민감한 시점에 두 사람이 전격 회동한 만큼 정국현안 및 차기 대권구도와 맞물린 교감이 이뤄졌을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DJ와 고 전총리를 정점으로 한 정치권 ‘헤쳐모여’가 본격화 되는것 아니냐는 시각과 함께 향후 대권구도에도 지각변동이 불가피할 것이란 관측에 무게감이 실리고 있다.정치권 관계자들은 그동안 차기 대권과 관련해 DJ와 고 전총리가 물밑 교감을 이루고 있을 것으로 분석했다.

DJ와 고 전총리가 처해 있는 작금의 정치 상황과 오랜 인연, 성격, 스타일 등에 비춰볼 때 선택의 순간이 오면 두 사람이 뜻을 같이할 가능성이 높다는 판단 때문이다.정치권 주변에서 ‘DJ-고건 대권 밀약설’이 나돌았던 것도 이같은 분석과 그 맥을 같이하고 있다. 현정권에서 버림받은 DJ의 명예욕과 대망론을 펼치기 위해서는 DJ의 후광이 절실한 고 전총리의 이해관계가 맞물려 차기 대권에서 두 사람이 의기투합할 것이란 게 밀약설의 골자다.이러한 밀약설은 그동안 실체 없이 정가 호사가들 사이에서만 오가는 갖가지 대권 시나리오 중 하나로 치부돼 왔던게 사실이다. 하지만 두 사람의 회동이후 밀약설이 현실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특히 두 사람이 처한 작금의 어려운 정치환경은 밀약 가능성을 높여주고 있다.

절치부심 DJ 승부수 모색

DJ가 처해 있는 정치상황은 그야말로 최악이다. 대북송금 특검에 이어 자신의 재임기간 동안 광범위한 도감청이 이뤄졌다는 사실이 밝혀졌고, 이 과정에서 측근인 임동원·신건 두 전직 국정원장이 구속됐다. 대북특검이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 공적을 날려버렸다면 이번 도청사건은 DJ가 한 평생 쌓아온 인권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두 전직 국정원장 구속이후 DJ와 노 대통령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루비콘 강을 건넜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는 배경에는 DJ의 노기가 자리잡고 있다.

지난 16일 민주당 한화갑 대표와 회동때 “사실이 아닌 일을 억지로 만든 것이다. 진실은 밝혀질 것”이라는 DJ의 발언에는 비장함이 묻어 있다.한동안 정치적 행보를 자제했던 DJ가 건강상태가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여야를 넘나들며 ‘병문안 정치’를 활발히 전개하고 있는 것은 땅에 떨어진 명예를 회복코자하는 ‘해법찾기’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실제로 DJ는 6일 영원한 정치라이벌인 YS(김영삼 전대통령)에게 안부 전화를 받은 것을 시작으로 열린우리당 정세균 의장,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 민주당 한화갑 대표, 고건 전총리 등과 잇달아 면담을 가졌다.DJ의 정치적 영향력이 다시 복원되고 있다는 해석과 함께 DJ가 내년 지방선거와 2007년 대선을 앞두고 뭔가 큰 그림을 그리고 있는게 아니냐는 의구심도 증폭되고 있다.

특히 이번 도청사건으로 DJ정부의 도덕성이 곤두박질하고 있는 상황에서 DJ가 노 대통령과 결별을 준비하고 있을 것이란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정가 소식통들은 DJ가 살아있는 권력과 정면승부를 펼치기엔 분명 정치적 한계가 있는 만큼 정계개편이나 차기구도에 자신의 영향력을 극대화하는 방안을 모색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호남 출신(전북 군산)으로 자신과 정치적 인연이 깊은 고 전총리와 민감한 시점에 회동한 것도 DJ의 대권 복심과 무관치 않을 것으로 분석된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DJ가 차기대선에서 호남을 대변하고 자신의 명예와 자존심을 회복시킬 후보로 고 전총리를 마음에 두고 있을 것이란 섣부른 관측을 내놓고 있다.

고건 대권행보 본격화 움직임

고 전총리의 대권입지도 그리 녹녹지 못한게 현실이다. 부동의 1위를 질주하던 지지율은 30%대를 밑돌다 어느덧 20% 초반대로 떨어지면서 한나라당 ‘빅2(이명박 박근혜)’에 밀리는 형국이 됐기 때문이다. 정치권에서는 그동안 고 전총리의 높은 인기는 현실정치에 식상한 국민들의 기대심리에 편승한 ‘거품’에 불과했다는 평가가 제기되고 있을 정도다.자칫하다간 지지율 급락은 물론 대권레이스에서 탈락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증폭되고 있다. 어떻게든 돌파구를 마련해야 할 상황이다. 고 전총리가 17일 DJ를 전격 방문한 것도 이러한 작금의 어려운 상황을 돌파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을 것이란 분석에 힘이 실리고 있다.

실제로 대망론을 품고 있는 고 전총리가 대권레이스를 펼쳐나가기 위해서는 DJ만한 든든한 후원자도 드물다.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이 그에게 손길을 내밀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고 전총리가 양 당의 대권후보가 될 수는 없을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따라서 고 전총리는 자신을 중심으로 한 신당을 띄운 뒤 민주당과 중부권신당 세력을 끌어안고, 나아가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에서 이탈한 제 세력들을 포섭하는 이상적인 대권구도를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하지만 조직과 자금이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군소정당을 끌어 안는 것도 고 전총리에겐 버거운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DJ가 자신을 지원해 준다면 얽힌 실타레는 쉽게 풀어갈 수 있다. 무엇보다 DJ는 호남권과 민주화 세력에 여전히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DJ의 적자임을 자부하고 있는 민주당도 DJ가 고 전총리를 지원할 경우 고건호에 탑승할 가능성이 높다.

또 열린우리당내 동교동계 및 호남권 의원들도 DJ와 노 대통령이 끝내 결별을 할 경우 DJ의 복심을 지지할 가능성에 무게감이 실리고 있다. 이와관련 동교동계 출신인 열린우리당의 한 중진의원은 기자에게 “이번 도청사건으로 DJ와 노 대통령이 결별한다면 당내 동요가 심할 것”이라며 “선택의 순간이 오면 DJ의 뜻에 따를 의원들이 적지 않을 것”이라고 귀띔했다.고 전총리 입장에서는 DJ의 지원은 곧 민주당은 물론 여권내 이탈세력도 끌어안을 수 있는 이상적인 대권구도이기도 하다.절치부심 명예회복을 노리고 있는 DJ와 대권가도에 적신호가 켜진 고 전총리. 두 사람이 펼쳐나갈 대권그림이 어떤 식으로 전개될지 향후 대선정국의 또다른 핵뇌관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 노 대통령-정상명 밀월시대 개막임동원·신건 구속 사전교감설 솔솔

정상명 검찰총장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가 끝났다. 21일 국회 법사위의 경과보고서 채택이 남아 있지만 정 후보자가 총장에 임명되는 것은 별 무리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정상명호 출항을 앞두고 정치권 주변에서는 노무현 대통령과 정 후보자간의 ‘신 밀월시대’가 개막됐다는 평을 내리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노 대통령과 정 후보자는 사시 동기(17회)중에서도 두터운 친분을 유지해 온 ‘8인회’ 멤버이다. 정 후보자에 대한 국회 청문회에서 여야 의원들이 ‘코드인사’ 문제를 집중 추궁했던 것도 두 사람의 막역한 관계에서 기인한다.

특히 정치권 일각에서는 DJ정부 시절 국정원장을 지낸 임동원·신건씨를 전격 구속하는 과정에서 두 사람이 물밑 교감을 나눴을 것이란 의혹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도청사건 과 관련한 검찰의 수사 발표는 당초 11월 말쯤으로 예정돼 있었다. 하지만 검찰은 임·신 두 전직 국정원장에 대한 사전영장청구 및 도청사건 수사 발표를 정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 하루전인 15일 단행했다.이는 전·현직 정권간의 마찰로 비화될 수 있는 민감한 사안인 만큼 정 후보자가 임명되기 전에 서둘러 발표했을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리고 있다.

즉, 정 후보자가 지휘권을 잡은 상태에서 두 사람이 구속될 경우 “검찰이 청와대와의 교감속에 정치적 결정을 내렸다”는 비판이 더욱 거세질 것으로 판단했을 것이란 분석이다.실제로 임·신 두 전직 원장 구속이후 정치권은 형평성 문제 등을 비판하며 청와대와의 사전 교감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특히 민주당은 “여권이 정치적 곤경에서 벗어나기 위해 전임 대통령 흠집내기를 본격화하고 있다”며 청와대 개입설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민주당은 청와대 개입설 근거로 당초 검찰 수뇌부에서 불구속 의견이 제시됐지만 결국 정치적 파장을 예단하면서도 구속을 결정했다는 점을 들고 있다.

여기에 천정배 법무장관이 청와대에 사전보고했는데 여권은 아무 것도 몰랐던 것처럼 구속이후 “너무 지나치다”며 이중플레이를 하고 있다고 꼬집고 있다.검찰도 임·신 두 전직 국정원장 구속은 전·현직 정권이 정면충돌할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독자적으로 결정하지는 않았을 것이란 시각이 우세하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정 후보자가 노 대통령의 향후 정국구상 및 정계개편 플랜 의중을 읽고 두 사람의 구속 결정에 영향력을 행사했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바야흐로 노 대통령과 정 후보자간의 ‘신 밀월시대’를 여는 신호탄이었다는 분석에 힘이 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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