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사채와의 전쟁’ 나선 까닭은

[일요서울 | 전수영 기자] 서민들이 급전을 빌리기가 더욱 어려워질 전망이다. 정부가 불법 사금융에 대한 집중적인 단속에 나서면서 일부 사금융업체가 시장에서 퇴출될 가망성이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서민대출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지 않은 상태에서 단속을 펼쳐 ‘전시행정’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제도권 내에서 대출을 받기 어려운 서민들에게 사금융은 그나마 숨통을 틔어주는 역할을 했다. 하지만 수백 퍼센트에 달하는 높은 이자율 때문에 고통을 주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었다. 이 때문에 정부는 5월말까지 금융감독원과 검찰·경찰·지방자치단체·법률구조공단에서 1만1500명의 인력을 동원해 불법 사금융 단속에 나섰다. 정부로서는 당연히 서민들의 피해를 막아야 하지만 단속이 지속될 경우 당장 급전이 필요한 서민들은 돈을 빌릴 곳이 없어 애만 태울 지경에 몰릴 상황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17일 청와대 트위터와 페이스북에 “어려운 형편을 악용해 자신들의 배를 채우는 파렴치범들이 더 이상 우리 사회에 발붙이지 못하도록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하겠다”며 “불법 사금융은 끝까지 추적해 반드시 뿌리 뽑겠다”고 불법 사금융 근절의 의지를 보였다.

청와대의 강력한 의지 표출로 인해 금융감독원 ‘불법 사금융 피해신고센터’ 개소 첫날인 지난 18일 일평균 120건에서 그쳤던 피해 신고가 약 12배가 증가한 1504건으로 늘었다.

형태별로는 상담 744건, 피해신고가 760건에 달했다. 피해금액은 12억2000만 원이었다.

가장 많았던 상담 및 신고는 312건(20.7%)의 고금리 문제였으며 뒤를 이어 대출사기 135건(9.0%), 채권추심 85건(5.7%) 순이었다.

금감원은 접수된 사례를 분석해 불법 고금리, 대출사기, 채권추심 등의 불법 사금융 피해신고에 대해서는 수사기관에 통보하는 한편 자산관리공사, 신용회복위원회 등 서민금융기관을 통해 정밀 상담을 실시토록 할 예정이다.

급전 필요한 서민들 ‘속만 타’

금감원에 따르면 사금융 관련 상담 건수는 2009년 6114건에서 2011년 2만5535건으로 2년 사이에 4배가 넘게 증가했다. 그만큼 제도권 금융 혜택을 받지 못하는 이들이 늘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서민들의 피해가 잇따르자 정부가 과감히 불법 사금융에 철퇴를 가하기로 마음먹었다. 당장 높은 이자와 대출사기 등으로 피해를 본 이들은 혜택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경찰 관계자는 “이번 단속을 통해 서민들에게 고통을 주고 있는 불법 사금융업체에 철퇴를 가하고, 건전한 대출 시스템을 만들 것”이라고 의지를 밝혔다.

정부의 단속이 강력해질수록 사금융업체들은 영업을 더욱 조심스럽게 하거나 아니면 잠시 영업을 중단하는 방법을 택할 수 있다. 일부는 아예 사업을 접으면서 제도권에서 금융 혜택을 받지 못하는 저신용 서민들은 돈을 빌릴 곳이 막막해진다는 것이 문제다.

실제로 지난 2002년부터 시중 대부업체의 이자율을 66%에서 39%까지 점차적으로 낮추면서 일부 대부업체가 문을 닫았다. 갑자기 돈 빌릴 곳이 줄어든 서민들은 어쩔 수 없이 대부업체보다 이자율이 훨씬 높은 사금융으로 몰릴 수밖에 없었다.

서민들이 높은 이자율로 입는 피해를 줄이고자 했던 조치였지만 결과적으로 더 큰 피해를 몰고 온 것이다.

정부의 이번 사금융 단속도 구체적인 대안이 없이 당장의 피해만 막고 보자는 식으로 진행되었기 때문에 이로 인해 서민들의 피해가 얼마나 커질지 가늠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전시행정’이란 지적 일어

서민금융에 대한 대책 없이 정부가 대대적인 단속 의지만 보이자 일각에서는 ‘속 빈 강정’, ‘전시행정’이라며 비판에 나섰다.

정부는 저신용자를 위해 미소금융 등을 통해 금융지원을 해주고 있지만 대출기준 또한 만만치 않아 이를 맞추지 못하는 이들도 상당하다. 미소금융 혜택을 받지 못하는 이들에게 돈을 빌려줄 곳은 사금융 외에는 없다. 따라서 제도권 금융업체들의 문턱을 대폭 낮추거나 아니면 서민금융 기준 폭을 넓혀야 한다는 지적이다.

직장인 박성국(44)씨는 “중소기업에 17년째 다니고 있으며 한 은행과 지속적으로 거래를 하고 있지만 얼마 전 목돈이 필요해 대출을 받으려 했으나 원하는 금액은 대출이 안 됐다. 순간 울컥했다”며 “은행은 서민들이 대출 받기 어려운 곳이라는 얘기를 주변에서 많이 들었지만 내가 당해보니 정말 그런 것 같더라”고 말했다.

그는 “높은 이자의 사금융을 없애는 것도 좋겠지만 은행을 서민들이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이런 기대와는 반대로 금융권에서는 대출을 위한 기준을 갈수록 엄격히 하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18일 신융카드 발급 기준, 결제 능력, 이용한도 등을 현재보다 엄격하게 적용하게 되는 7등급 신용카드 제한 내용을 담은 ‘여신전문금융업법 시행령, 시행규칙, 감독 규정 일부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이렇게 되면 약 400만 명에 달하는 7등급 이하 저신용자들은 신용카드 발급이 제한된다.

저신용자들로서는 돈을 빌리거나 심지어 할부 혜택을 받을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서민경제가 파탄에 이르렀다는 지적은 이명박 대통령 집권 초기부터 지적된 일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대통령은 ‘비즈니스 프랜들리’ 기조를 계속해서 유지해 기업의 이익은 커졌지만 서민경제는 더 이상 추락할 곳이 없다는 얘기를 들을 정도로 악화됐다.

일부에서는 정부의 이번 단속도 더 이상 서민들을 궁지에 내몰리는 상황에 이르게 되면 안 된다는 판단에서 진행된 것이 아니냐며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류혜진(여·21)씨는 “대학 때부터 이미 저신용자로 몰릴 판이다. 등록금을 대출 받다 보니 언제 어떻게 잘못될지 몰라 불안하다. 등록금 부담을 줄여줬으면 좋겠다”고 말했으며, 박성태(31)씨는 “정부가 근본적인 해결책은 마련하지 못한 채 계속해서 주변부만 손질하는 것 같다. 불법 사금융 단속도 일순간이지 않겠느냐. 보여주기식 행정 정말 지겹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대통령이 불법 사금융과의 전쟁을 선포했지만 이에 대한 반응은 여전히 좋지 않다. 따라서 보여주기식 선포가 아닌 서민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도 계속해서 힘을 얻고 있다.

jun6182@ilyoseo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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