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 오판 노동계 ‘비상등’

[일요서울|최은서 기자] 노동계가 4·11 총선에서 야당이 패배하자 향후 노동계에 미칠 파장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번 총선 결과에 재계의 ‘안도’와 노동계의 ‘우려’가 엇갈렸다. 그동안 양대 노총은 ‘여소야대’ 국면을 전제로 밑그림을 그려와 노동관계법 개정투쟁 차질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산적한 노동현안 해결에도 먹구름이 드리워졌다. 새누리당 압승이라는 결과에 노동계는 “총선 결과로 달라지는 것은 없다”며 대선을 통한 ‘노동권 회복’을 역설하고 나섰다.

▲ 총선 전인 지난 3일 양대노총의 공공부문 대표들이 민주통합당을 방문해 정책협약식을 가진 후 2번을 그려보이며 공식 지지를 선언하고 있다. <정대웅 기자> photo@ilyoseoul.co.kr

전문가들은 ‘여대야소’ 정국이 됨에 따라 앞으로 노동시장에 큰 기조 변화가 없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여야 모두 비정규직 차별 철폐와 청년 실업문제, 일자리 창출을 핵심 공약으로 내세워 향후 관련 정책의 변화가 점쳐지고 있는 가운데 민주통합당이 내세운 노조법 재개정 문제는 무산 위기에 처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국노총의 정당 개입을 통한 입법투쟁이나 민주노총의 8월 총파업 투쟁이 상당부분 동력을 잃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도 제기되고 있다.

‘여대야소’ 노동 현안 관철 먹구름

양대 노총은 19대 총선에서 본격적 정치행보를 보였다. 한국노총은 민주통합당에 합류해 제도권 정치에 전면 등장하는 등 정치활동이 강화됐다.

민주노총은 통합진보당에 ‘공식적 지지’를 표명하는 한편 산별조직 임단협과 법적 요구안 쟁취, 언론노조 요구 해결, KTX 민영화 저지, 쌍용차 문제 해결, 최저임금 문제 해결을 위한 8월 총파업투쟁을 예고했다.

이 같은 양대 노총의 행보에 재계는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이희범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이 기자간담회에서 “최근 노조의 정치화, 정치의 노조화가 이뤄지면서 여야 공약이 지나치게 노조편향적으로 흘러 걱정스럽다”고 밝힌 바 있다.

당초 정치권에서는 노동계 출신 인사 44명이 대거 국회의원 후보로 나서 노동계에 큰 바람을 일으킬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결과는 노동계 출신 후보가운데 15명만이 ‘여의도 입성’에 성공했다. 이 중 90%가 야당 소속인 까닭에 여대야소 정국으로 노조법 재개정 등 각종 노동 현안을 관철시키기 녹록치 않을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또 민주노총이 예고한 8월 총파업도 난항이 예상되고 있으나, 민주노총은 8월 총파업을 당초 계획대로 강행한다는 입장이다.

이처럼 노동계는 복수노조 시행 이후 소수 노조의 교섭권 박탈 문제와 유급 노조전임자 수를 제한하는 타임오프제를 반드시 개정하겠다는 입장으로 현 정부와 계속해서 마찰을 빚을 가능성이 높다. 양대 노총의 정치적 행보는 당초 예상했던 ‘여소야대’ 정국과는 정 반대인 ‘여대야소’ 정국이란 결과가 나오면서 정치권에서 노동계의 영향력은 한계가 있을 것이란 분석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관계자는 “다수당은 실패했지만 대선이 남아있기 때문에 노동개혁이 실패할 것이란 분석은 섣부르다”라며 “과반의석 확보는 실패했으나 18대보다 의석수가 늘어나고 노동계가 많이 진출했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또 노동계의 정치행보에 대해 “외국의 경우 노동자 정당도 많다. 우리 역시 정치 발전 단계에서 그만큼 노동자들의 역량이 커졌다는 것을 의미한다”면서 “한국노총이 민주통합당에 합류했고, 민주노총도 통합진보당에 깊숙이 참여하고 있다. 18대 국회보다 노동자 출신 국회의원 수가 늘어나 치열한 의정활동을 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노조법 개정에 대해서는 “여대야소 국면으로 인해 노조법 전면 개정 등의 부분은 어려운 점이 있을 것으로 본다”면서도 “하지만 (노동계 출신 국회의원들이) 강도 높게 추진할 가능성이 높다”고 노동현안에 대한 정치권 풍향이 간단치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대선에 주목하는 노동계

양대 노총의 정치참여에 대해 ‘노동계의 현실정치 참여는 불가피한 선택’이란 입장과 ‘노조의 정치세력화는 노동운동이 정치에 매몰되게 한다’란 시각이 엇갈렸다. 한국노총의 경우 1997년 국민회의와 정책연대를 시도했고, 17대 총선에서는 녹색사회민주당을 창당해 직접 정치권에 뛰어들었다. 18대 총선에서는 새누리당과의 정책연대를 시도한 바 있다. 환노위 관계자는 이에 대해 “어떤 시민사회운동이나 노동운동이든 간에 불합리한 법이나 제도를 개선하려면 정치권에서 움직여 줘야 하고, 정치권에서 그에 상응하는 움직임이 없을 때는 직접 참여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이라며 “이를 두고 득과 실을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노동계가 정치에 직접 참여해 자신들의 의견을 관철해 내는데 더 열심히 할 가능성이 있다”며 “다만 일반 국민들이 얼마나 지지하는가의 문제가 앞으로의 과제다. 국민적 동의를 얻고 사회적 합의를 거치면서 노동자들의 이기주의가 아닌 사회적 합의나 정치권 내의 동의를 얻어내는 능력이 필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노동계는 총선 이후 대선에 주목하고 있다. 여권이 경제 민주화와 복지국가를 내세웠지만 대선마저 승리한다면 경영계와 첨예하게 대립하는 노동계의 핵심 의제들인 비정규직 차별 철폐, 정리해고 요건 강화, 노조법 재개정 등은 ‘찻잔 속 태풍’에 그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노동계는 야권의 과반의석확보는 실패했지만, 대선 승리를 통해 노동계 측 입장에 힘을 싣겠다는 모양새다. 이에 노동계가 19대 국회와 12월 대선 정국에 미칠 영향이 어느 정도일지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환노위 관계자는 “중요한 것은 한국노총이 민주통합당의 한 축이라는 점이다”라며 “예전처럼 한국노총의 일부 인사들이 참여한 것이 아니라, 조직적으로 참여했기 때문에 대선에서 반드시 승리해서 한국노총에서 요구하고 민주통합당이 공약과 정책으로 내건 부분들이 실현될 수 있는 가능성을 높여야 할 것이다. 그것은 바로 대선 승리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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