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8억 원을 받은 알선수재 혐의로 구속된데 이어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도 구속을 면치 못하게 됐다.

둘은 이명박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최 위원장은 ‘방통대군’, 박 차관은 ‘왕차관’으로 통할 만큼 세도가 당당했다. 그들에게 검은 돈을 건넨 로비스트 이동율 씨는 최 위원장의 포항시 구룡포 동향(同鄕) 출신이다. 

최·박 두 사람의 수재 혐의는 역대 대통령 측근의 권력 비리 반복이라는 데서 실망을 더 한다. 김영삼 통령의 차남 김현철 씨는 ‘소통령’으로 설치며 불법자금을 걷어 들였다가 쇠고랑을 찼다. 김대중 대통령의 세 아들들은 모두 형무소를 들락거렸다. 김씨 가문의 수치다.

노무현 대통령의 형 노건평 씨는 ‘봉화대군’으로 불리며 돈을 챙기다가 오랏줄에 묶였다. 노 대통령 자신은 청와대에서 수억 원의 돈을 받은 혐의로 퇴임 후 검찰의 조사를 받던 중 구속이 두려워서였는지 목숨을 스스로 끊었다.

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으로 이어진 대통령 친인척·최측근의 뇌물수수와 그들에 대한 가차없는 단죄(斷罪)는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

하나는 한국이 경제적 선진국임을 자부하면서도 아직도 후진국적 권력형 비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정치적 민주화로 법을 어기면 대통령 아들과 최측근은 물론 대통령 자신도 감옥에 간다는 법치확립을 입증해 준 사례이다.

전두환과 노태우 전 대통령도 퇴임 후 죄수로 복역했다. 민주화된 대만이나 필리핀 에서도 전직 대통령들이 법을 어겼다가 줄줄이 형무소로 갔다.

첸수이볜(陳水扁) 전 대만 총통은 뇌물수수죄로 17년6개월, 그의 아내 우수전(吳淑珍)은 19년7개월의 징역형을 각각 받고 복역중이다. 아들 첸즈중(陳致中)은 부모의 검은 돈 세탁을 도와준 죄로 징역 1년2월의 형을 받았다. 첸수이볜 가문은 폐족(廢族)이 되고 말았다.

필리핀의 글로리아 마카파갈 아로요 대통령은 조세프 에스트라다 전임 대통령을 뇌물죄로 감옥에 보냈다. 그러나 아로요 자신도 똑 같은 죄로 후임 대통령에 의해 남편과 함께 체포되어 재판중이다.

저 같은 대통령과 최측근의 수감은 법치가 확립된 국가에선 법을 어기면 직위 고하를 막론하고 쇠고랑을 찬다는 사실을 입증해 준 것이다. 그러나 최·박 두 사람은 시대의 흐름을 외면한 채 겁 없이 검은 돈을 삼켰다. 고향 후배로부터 은밀히 돈을 받으면 탈이 없으리라 오판한 탓이다. 하지만 죄는 지은대로 가게 마련이어서 결국 오랏줄에 묶였다.

최 위원장은 이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전 국회 부의장과 포항 동향인 데다가 서울대 동기생이다. 최 위원장은 이 대통령 고향 출신 ‘영포라인(영일·포항)’의 핵심이었고 2002년 이명박 씨가 서울 시장에 출마했을 때부터 이 부의장과 외곽에서 적극 지원했다. 대선 때는 이명박 선거 캠프의 최고 의사결정 조직이었던 ‘6인회의’ 핵심 멤버였고 그 인맥의 끈으로 방통위원장에 올랐다. 구룡포 고향 후배이며 브로커인 이동율씨가 최 위원장의 권력을 이용하기 위해 그에게 돈을 건넸고, 최 위원장은 75세 노구로 감옥으로 끌려갔다.

이 나라에 ‘소통령’ ‘봉화대군’ ‘최측근’ ‘왕차관’ ‘방통대군’ 따위의 기생(寄生)권력이 박멸되지 않는 한 비리와 감옥행의 악순환은 되풀이 될 수 밖에 없다.

대통령이 이 악습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구룡포’ ‘고소영(고려대·소망교회·영남) ‘영포라인’ 같은 인맥에 매달려선 안 된다. 모든 인사는 인맥 아닌 인물 본위로 단행되어야 한다.

하지만 건국 이후 어느 한 대통령도 지연과 인맥에 의존하는 습성을 버리지 못했다. 그래서 앞으로도 이 악습의 고리가 끊길 수 있을지 기대하기 어렵다. 최고 통수권자의 현명한 결단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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