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개정헌법에 ‘핵보유국’ 공식 명기

[일요서울|최은서 기자] 북한이 개정헌법 전문에 ‘핵보유국’을 공식 명기한 사실이 확인되면서 한반도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이에 북한이 헌법에 핵보유국을 명기한 의도를 둘러싸고 국제 외교가와 정치권에 파장이 일고 있다.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할지에 대한 해묵은 논란이 다시 부상하며 정부의 대북정책이 강경해질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또한 통합진보당의 이석기ㆍ김재연 의원을 둘러싼 ‘종북 좌파’ 논란이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이명박 대통령도 취임 후 처음으로 ‘종북세력’이라는 용어까지 쓰며 종북·친북 세력을 비판했다. 이 같은 대통령의 발언은 남북관계 개선을 이유로 대북정책이 무분별하게 쏟아지고 있는 것에 대한 경계라라는 분석이 나왔다. 이런 가운데 터져 나온 북한의 핵보유국 주장에 정부와 정치권의 대응 향방이 주목되고 있다.

▲ <뉴시스> 북, 핵실험 성공 자축 군중대회 개최

“무력유지인 선군정치의 극대화된 완성이 핵보유국가”
고개 드는 ‘6자회담 회의론 “목표설정 물 건너갔다”

북한이 지난 4월 헌법을 개정해 ‘핵보유국’임을 명시한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30일 북한의 대외선전용 웹사이트 ‘내나라’가 ‘개정된 사회주의헌법’ 전문을 공개한 것이다. 북한은 기존 헌법 서문에 지난해 말 사망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업적을 기술하면서 “우리 조국의 불패의 정치사상강국, 핵보유국, 무적의 군사강국으로 전변시켰다”라는 표현을 추가로 넣었다.

“북 내부사정으로 인한 것”

북한은 앞서 2009년 5월 2차 핵실험 이후 스스로를 ‘핵보유국’이라 주장하면서 각종 성명과 담화, 발표 등에서 ‘핵보유국’이라는 표현을 수시로 사용해왔다. 2010년 9월에 개정한 당 규약에는 “제국주의에 맞서 핵 억지력을 갖추고 있다”고 핵 보유 사실을 간접적으로 표했으나 이번에 북한이 핵보유국임을 헌법서문에 명기하며 핵보유국임을 내세운 것이다. 이에 대해 김정은 체제 안정 확보를 위해 ‘핵보유국’이라는 상징성을 내세운 것과 동시에 요긴한 대미 협상카드로 활용하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이지수 명지대학교 북한학과 교수는 “북한은 애초부터 핵보유국을 지양했고 핵보유국으로 갈 수밖에 없는 내부사정이 있다”고 전제하며 “(핵보유국임을 헌법서문에 명기한 것은)예정된 결과”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이어 “북한의 권력이 유지되고 강화되려면 통제가 전제되야 하는데 이는 정신·물질적 부분의 통제와 무력을 유지하는 것을 말한다”며 “무력의 유지가 선군정치로 선군정치의 극대화된 완성이 핵보유국가”라고 지적했다.

이번 북한의 ‘핵보유국’ 명시로 ‘6자회담 회의론’도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북한이 한반도비핵화선언, 9·19 공동성명 등 기존 합의 원칙을 깨트리고 있는 북한에 6자회담을 통해 북한의 비핵화를 이룰 수 없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는 것.
이 교수는 “6자회담은 북한의 비핵화가 목표였는데 이미 목표설정이 물 건너가 버렸다. 북핵 사태 진전을 막지 못한 것으로 그런 의미에서는 6자회담이 실패한 것이란 판단이 있을 수 있다”면서도 “그 반대로 이럴 때일수록 6자회담이라는 틀을 포기하지 말고 지금이라도 북한의 핵보유국이라는 상태를 이전으로 되돌려놓자는 쪽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진보진영 대북정책 변화 가능성”

야당이나 일부 전문가들의 대북 정책 전환요구에도 ‘그랜드 바겐’ 즉 일괄타결 방안 기조를 유지해왔던 MB정부의 대북정책이 더 강경해지는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정부는 북한의 핵보유국 주장을 수용할 수 없다는 공식입장을 분명히 했다. 외교통상부는 정례브리핑에서 “핵보유국 지위라는 것이 핵무기 확산금지조약(NPT)상의 규정에 따르는 것인데 북한은 스스로 NPT회원국이 아니라고 부인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국제사회와의 약속을 무시하고 국제법 위반을 계속한다는 것은 결국 북한의 국제적 고립을 심화시킬 것”이라면서 “민생향상 등의 문제 해결을 더욱 어렵게 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이와 관련해 “대북정책은 공개할 수 있는 것과 공개할 수 없는 부분이 존재하기 때문에 한 부분만 보고 섣불리 판단 할 수 없다”며 “이 대통령의 종북 발언, 북한에 대한 자극적 발언을 보고 일각에서는 남북관계를 악화시킨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지만 정치인들은 표심에 따라 정치를 한다는 사실을 염두에 둬야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 대통령의 지난 발언을 보면 우리는 알지 못하는 정보를 갖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며 “우리는 북한 통치체제가 자리잡아가고 있다고 알고 있는데 이 대통령은 이와는 다른 시그널(신호)을 받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19대 국회에서의 대북정책과 관련해 ‘종북문제’를 언급하며 진보진영의 변화 가능성을 전망했다. 이 교수는 “야당의 대북정책에 있어서도 기류가 달라질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며 “통합진보당에서 당권파가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대북정책이 달라질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권만학 경희대 국제학 교수는 탈북자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국회의원이 된 조명철 새누리당 의원을 언급하며 “탈북자 출신인 조 의원을 새누리당이 비례대표로 내세운 것을 미뤄볼 때 새누리당의 대북기조는 강경으로 갈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 <뉴시스> 연변핵시설 위성사진

여·야, 각기 다른 대북 해결책 내놔

한편 지난 4일 북한연구학회와 여야 4당 부설연구소가 공동주최한 남북관계 토론회에서도 여야의 대북관을 엿볼 수 있다. 이 토론회에서 길정우 새누리당 의원은 “다양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핵무기 역량을 강화했고, 현 상황은 북한을 핵무기 보유국으로 상정한 바탕 위에서 북핵 문제 해결을 모색 중”이라며 “핵무기 없는 한반도 건설을 위해 (재래식 무기)무력 동원하는 어리석음은 수용할 수 없다”고 말했다. 아울러 ▲남북문제는 ‘우리의 문제’라는 인식 공유▲정부와 정치권의 정보 공유 ▲통일외교의 정치권 참여 ▲국회주도의 전략 보고서 마련을 통한 초당적 노력을 강조했다. 이어 홍익표 민주통합당 의원은 이명박 정부의 5대 대북정책 실패요인으로 연평도 포격 등 군사적 충돌과 긴장의 시대로 회귀, 남북대화 실종, 안보상황에 무능 대처, 북한의 대중국 의존도 심화를 꼽았다. 그는 ▲남북기본합의서, 6·15공동선언 및 10·4선언의 이행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 ▲서해를 평화경제 협력지대로 전환 ▲24조치 철회, 금강산·개성 관광 재개 등을 골자로 하는 대북정책 10대 과제를 밝혔다.

박원석 통합진보당 의원은 “남북관계는 총체적 파탄에 이르렀다”며 국회평화사절단 파견, 5·24조치의 즉각 해제, 6·15공동선언 및 10·4선언 이행을 위한 특별법 제정, 남북경제협력공사 설립을 통한 남북경제협력사업 활성화 등을 방안으로 내놓았다. 문정림 선진통일당 의원은 “어느 경우에도 정부주도로 비핵화 원칙을 지켜나가야 한다”며 “대북지원은 남북관계가 어느 정도 궤도에 올랐을 때에나 가능”하다고 못박았다. 이어 “북핵문제와 관련해 외교적 노력으로 북한을 설득하고, 북한의 개혁개방을 유도하기 위해 주도적 역할을 해나가야 한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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