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식물정권 향해 “국책사업 차기정부로 넘겨라”

▲ 멕시코 G20 정상회의에 참석한 이명박 대통령이 18일(현지시간) 로스카보스 퍼시픽 리조트에서 열린 G-20 정상회담 개막식 환영행사에 도착하고 있다.<로이터/뉴시스>
[일요서울 | 전수영 기자] 식물정권의 길을 걷는 MB 정부에 여야의 맹공이 거세다. 여야 모두 남아있는 대형 국책사업을 차기 정부로 넘기라고 윽박하고 있다. ‘남은 임기 동안 국정을 저지레 하지 말라’는 의미로 풀이된다. 여당은 대선 정국에서의 빌미로, 야당은 주도권 장악이라는 속내를 품고 있지만 목소리는 똑같다.

하지만 정부는 차세대전투기 사업(FX 3차), 인천공항 지분 매각, 우리금융지주 매각, KTX 민영화 등 막대한 예산과 강한 반발이 예상됨에도 불구하고 현 정권이 끝날 때까지 사업을 완수하겠다며 끝까지 버티는 모양새다. 임기 4년 동안 처리하지 못했던 사업들을 남은 기간 안에 모두 완수하겠다는 정부의 발표에 가능성 여부를 떠나 비판의 목소리만 들리는 상황이다.

정권 말 불고 있는 레임덕 현상이 드러나면서 청와대의 목소리는 묻히고 있다. 때마침 '영일대군', '상왕'으로 불린 이상득 전 의원의 대선자금 수사가 본격화되면서 불똥이 대통령에까지 튈 가능성이 있어 정부의 국책사업 추진은 여야의 반대에 가로막힐 가능성이 높아졌다.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4일 위기관리대책회의에서 “국정은 릴레이와 같기 때문에 지금 주자가 전력 질주해서 다음 주자에게 넘겨주어야 한다”며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면 그만큼 우리 경제는 뒷걸음질 치는 셈이다”라고 말해 지금까지 추진했던 과제들을 임기 말까지 마무리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하지만 정부의 발표에 민주통합당은 물론 여당인 새누리당도 반발하고 나섰다. 여야가 반발하고 나섬에 따라 정부는 국회 차원은커녕 새누리당의 도움도 받기 어려워짐에 따라 당정 협의는 물 건너가고 레임덕은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심지어 다가오는 국정감사에서 매운맛을 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셈법은 다르지만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 모두 “국책사업을 차기 정부에 넘기”라며 사업 중단을 요구하고 있다.

여야 모두‘MB 식물정권 만들기’

정부가 국책사업 강행의 뜻을 밝히고 있지만 야당인 통합민주당은 현 정부가 아닌 차기 정부로 넘겨야 한다며 정부와 정면으로 맞섰다. 민주통합당은 4일 논평을 통해 “인천공항 지분 매각 등 공기업 매각에 반대한다”며 “중요 국책사업을 차기 정부로 이관하고 국회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정부와 대립각을 세웠다.

여당인 새누리당도 굵직한 국책사업을 차기 정부에 넘겨야 한다고 야당과 궤를 같이 했다.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는 2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인천공항 지분 매각은 18대 국회에서 일단 보류하는 것으로 논의를 마친 사안”이라며 “정부는 강행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한구 원내대표 또한 “인천공항 지분 매각, 차기전투기 사업, 우리금융지주 매각 등을 둘러싸고 잡음이 많다”며 “19대 국회에서 그것들을 다 문제 삼을 것”이라고 말해 당정 간 불협화음을 드러냈다.

19대 국회 개원을 하자마자 여야 모두 한목소리를 냈다는 점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지만 셈법은 다른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한목소리로 ‘반대’, 속내는 따로 있어

새누리당이 국책사업을 반대하는 이유는 쉽게 간파된다. 정부가 강행 의지를 밝힌 사업 중 하나라도 잘못되면 대선에 큰 영향을 미칠 것임은 자명하다. 따라서 현재까지 대선 정국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는 것으로 자체 분석 중인 새누리당으로서는 휘발성 강한 대형 악재를 사전에 막아야만 한다.

성능 검사마저도 마치지 못하고 무기중개 브로커 개입 의혹까지 일고 있는 차세대전투기 사업에 수조 원을 쏟아 부을 경우 자신들의 지지기반인 보수층마저 설득하기 쉽기 않게 된다.
 
게다가 18대 국회에서 처리가 보류된 인천공항 지분 매각을 추진할 경우 그나마 수익을 내고 있는 공공기관마저 일부 재벌의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시켰다는 책임론이 불거질 것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노동계의 집단적 반발 또한 불을 보듯 뻔히 예상된다.

대통령과 선긋기 통해 차별화를 꾀하고 있는 박근혜 전 비상대책위원장으로서는 이번 기회에 확실히 반대 목소리를 내며 대선 정국에서 상수의 입지를 공고히 할 가능성이 높다.

야당인 민주당 또한 막대한 국민의 혈세가 투입되는 대형 국책사업을 막아야 할 당위성이 충분하다. 많은 문제를 내포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는 사업을 정부가 추진하게 그대로 둔다면 야당도 책임론에서 벗어나기 힘들어진다.

여대야소 국면에서 민주당이 목소리를 높여 정부의 사업 추진을 막아낼 경우 그 공은 고스란히 자신들의 몫으로 챙길 수 있게 된다. 이렇게 되면 대선 국면에서도 유용하게 이용할 수 있게 된다. 대선주자들로서는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칠 리 없다. 국회 안에서든 밖에서든 반대 목소리는 계속해서 들려올 것으로 예상된다.

결국 여야는 현재 한목소리로 ‘반대’를 외치고 있지만 동상이몽(同床異夢)을 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여야 맹공 속 항복 선언할 가능성 커

박 장관의 발언이 있은 후 여야는 물론 곳곳에서 반대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당장 인천공항 지분 매각을 둘러싸고 경기도의회가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또한 인천공항을 움직이는 인천공항공사 노조와 비정규직으로 구성된 인천공항지역지부 모두 정부가 지분 매각과 함께 민영화를 추진할 경우 사활을 걸고 반대 투쟁에 나선다는 내부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자칫 연쇄폭발로 이어질 수 있는 도화선에 불이 붙고 있는 상황이다.

한 야당 관계자는 “이명박 정부 들어서 진행했던 대부분의 사업이 국민적 불신을 받았다. 심한 반발 속에서 강행했던 4대강사업도 공사가 끝나자마자 여기저기서 폐해가 드러나며 비난을 받고 있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이 얼마 남지 않은 기간 안에 대형 국책사업을 마무리하려다가는 상상하기 어려운 국민적 역풍을 맞을 것을 알 것이다. 게다가 당에서조차 도와주지 않는데 어떻게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겠는가”라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어차피 그동안 진행했던 사업을 갑자기 그만두기는 어렵다. 그만두기 위해서는 명분이 필요하다. 여야의 주장보다는 거세지는 반대 여론을 수용하는 모양새로 국책사업을 포기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는 명분일 뿐 여야의 맹공에 항복하는 것이다. 자존심이 강한 대통령이 여야의 목소리에 굴복하는 모습을 보이지는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19대 국회가 공식적인 개원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섰다. 국회가 개원한 이상 국책사업을 놓고 정부에 대한 여야의 공세는 계속해서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가 사업 완수를 강조했지만 실현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미 공직사회는 차기 정권을 누가 잡을 것이냐를 두고 눈치 보기에 돌입해 정부의 대형 사업에 끼지 않으려는 모습이다. 거기에 반대 여론도 불고 있고 협력관계인 새누리당도 선긋기를 명확히 하고 있다.

결국 정부가 어느 시기에 어떤 모양새로 차기 정부에 국책사업을 넘기겠다는 발표를 할 것인지만 남은 것이다. 대통령은 레임덕을 부정하지만 실제로 레임덕은 이미 최고조에 달했다고 볼 수 있다.

jun6182@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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