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은 ‘필수’ 아닌 ‘선택’

[일요서울|최은서 기자] 독신시대라고 할 만큼 혼자 사는 가구가 빠르게 늘고 있다. 흔히 30대 현상으로 지칭했던 ‘골드 미스’, ‘싱글족’이 40대로 넘어가고 있다. 독신자가 늘어나는 것은 사회적 성취가 높아지고 소득이 증가하면서 능력 있는 결혼 적령기 남녀들이 결혼 생활보다는 혼자 사는 삶이 더 편하다고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여성들은 혼인·출산에 따른 사회적 불이익을 감수하기보다는 사회적 성공을 추구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결혼은 꼭 해야 하나” 반문하는 사람 늘어
이혼과 성 개방 풍조와 맞물린 독신가족 증가

40대 독신남 조재희는 자신의 영역 안에 누구도 들여놓지 않으려 한다. 건축사무소 대표로 고급 아파트에 살며 잘생긴 외모에 적당한 키, 중산층 가정까지 여성들이 끌릴만한 조건들을 두루 갖췄지만 연애나 결혼에는 도통 관심이 없다. 일에 대한 성취 욕구가 높은 자타공인 ‘워커홀릭’으로 결혼 생각이 없어 맞선도 부모의 성화에 못 이겨 나온다. 그는 단 한 끼를 먹더라도 스테이크를 굽는 등 요리하는 것을 즐긴다. 싱글족의 최고 경지로 꼽히는 ‘고깃집에 혼자 가기’도 타인의 눈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홀로 가서 부위별로 고기를 시켜 구워먹는다. 여가시간에는 교향곡이나 DVD ·영화·다큐멘터리를 감상하고 프라모델 조립을 하느라 바빠 이성과 교제할 시간이 없다. 2009년 방영돼 인기를 끌었던 KBS 드라마 ‘결혼 못하는 남자’는 독신남녀의 일상을 그렸다. 이 드라마는 독신의 일상 속에서 독신 남녀들이 결혼을 못하는 이유와 안하는 이유들을 세밀하게 교차시켜 보여주며 공감대를 형성했다.

‘혼자 사는 즐거움’

‘독신’은 이제 드라마 속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2012년 현재, 한국사회는 남녀가 만나 결혼을 하고 자녀를 낳아 가족을 이루는 정상가족 모델은 설득력을 상실하고 있다. 1인 가구·자녀 없는 부부·한 부모와 미혼 자녀 등 1~2인 가족으로 빠르게 전환되고 있는 가운데 ‘결혼은 필수가 아닌 선택’이라는 사회 분위기와 맞물려 독신가구가 급증하고 있다.

30대 회사원인 최지원(가명·34·여)씨는 스무살 때부터 지방에 살고 있는 부모님과 떨어져 결혼하지 않은 채 홀로 살아왔다. 그는 결혼에 대한 로망이 전혀 없다. 미래에 대한 불안이나 외로움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혼자 사는 즐거움’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는 퇴근 후 필라테스와 골프를 번갈아 가면서 배우고 주말에는 데이트를 하거나 등산동호회 회원들과 함께 전국의 명산들을 등반한다.

최씨는 3년째 사귀는 이성이 있지만 결혼할 생각은 없다고 딱 잘라 이야기했다. 그는 “내가 중심인 인생을 살고 있는 지금이 만족스럽다”며 “남자친구가 있지만 결혼할 생각은 없다. 사회생활에서는 혼인·출산을 하면 불이익을 따르는 것이 현실이다. 이를 감수하고 하는 결혼에서 이에 상응할 만한 메리트나 행복을 찾을 자신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1년에 한번 휴가철이나 명절 때 ‘자신에게 주는 선물’로 해외여행을 떠난다. 그는 독신생활에서 오는 외로움은 취미생활과 친목모임, 연인으로도 충분히 ‘커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취미생활을 할 수 있는 시간적 경제적 여유가 있는 지금이 행복하다고도 덧붙였다. 그는 “싱글로 살다보니 내가 벌어들이는 ‘수입’을 오롯이 나에게 투자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라며 “결혼한 친구들을 보면 부모님과 시부모님 모두 다 챙기다 보면 싱글일 때보다 친부모님과 자기 자신에게 소홀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독신인 지금이 나 자신에게 투자하기에도, 부모님에게 효도하기에도 맘의 여유나 금전적 폭이 넓다”고 이야기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최씨와 같은 1인가구는 네 가구 중 한 가구 꼴이다. 1인 가구는 다른 가구유형에 비해 빠른 증가속도를 보이고 있어 올해 450만여 가구에서 2035년에는 762만 가구를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같은 추세와 맞물려 문화예술계도 30~40대 싱글 주목도가 높아졌다. 싱글은 기혼자보다 시간적 경제적 여유가 많고 문화 예술 향유 욕구가 크기 때문이다. 이 같은 흐름은 기업마케팅에도 적용되는 등 ‘싱글 마케팅’이 소비트렌드의 주요 테마로 자리 잡고 있다. 미니 가전제품·소형가구·1인용 식당 등 싱글 마케팅을 겨냥한 아이템이 소비시장을 선점하고 있는 것. 한국마케팅연구원은 지난해 12월 ‘싱글족의 소비 특성’에서 독신남녀를 “선택에서 주관이 가장 크게 작용하는 집단”이라며 “이들은 시장의 변화에 민감하고 높은 가격이라도 마음에 들면 지불할 용의가 있다”고 분석했다.

40대로 퍼지는 싱글족

금융권에서 일하는 김승훈(가명·40)씨는 밤낮으로 일에만 몰두하다 결혼시기를 놓쳤다. 혼자 사는 삶에 익숙해졌다는 그는 “단지 외롭다는 이유로 누군가를 만나 결혼하고 싶지는 않다. 이혼으로 돌싱이 된 친구들을 보면 차라리 독신이 낫다는 생각도 한다”면서도 “언제까지나 혼자 즐기면서 살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좋은 사람이 나타나고 관계에 대한 확신이 생기면 결혼도 하고 싶다”고 결혼 가능성은 열어두고 있다고 운을 뗐다.

그는 또 “30대 중후반 미혼 여성들은 사회적 성취 욕구가 높아 결혼을 뒤로 제쳐두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며 “소개를 받으려고 해도 또래 여성들은 결혼을 했거나 결혼생각이 없거나 둘 중 하나인 경우가 대다수고 사회적 성취가 높아 결혼상대자를 고르는 기준도 까다롭다”고 이성과의 만남에 대한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그는 혼자 사는 남성을 바라보는 타인들의 시선이 때로 부담스럽다고 이야기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독신에 대해 희화화하는 경우가 많은 것도 불만이다. 김씨는 “결혼은 필수가 아닌 선택이라지만, 결혼을 하지 않았다고 하면 ‘무슨 문제가 있나’, ‘결혼이 늦어진 데는 결정적 이유가 있을 것’ 이란 식으로 삐딱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있어 때론 독신인 것을 밝히는 것이 불편하다”며 “남성인 나도 이런 부분을 느끼는데 여성들은 더 할 것 같다. 드라마만 보더라도 독신의 삶은 긍정적 측면보다는 불완전할 것이란 부정적인 시선으로 그려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씨처럼 결혼하지 않은 40대도 급증하고 있다. 40대 중에 한번도 결혼하지 않은 사람의 비율은 2000년 2.8%(남자 3.3%, 여자 2.1%)에서 2010년 7.9%(남자 10.9%, 여자 4.8%)로 10년 사이 3배 가까이 늘었다. 2010년 조사에서 30대 후반(35~39세)의 미혼자는 19.7%였다.

동거는 ‘OK’ 결혼은 ‘글쎄’

개인 사업을 하고 있는 조송호(가명·35)씨는 이른바 ‘돌싱’이다. 그는 결혼할 생각은 없지만 정서적으로 외로움을 달래줄 수 있는 이성은 필요하다고 이야기했다. 그는 “결혼과 연애는 엄연히 다르다. 결혼은 생활이 연애에 개입되는 것으로 연애시절 가볍게 넘어갈 수 있는 문제도 결혼생활에서는 큰 걸림돌로 작용하곤 한다”며 “두 번 결혼하는 것도 부담스럽다. 아이들에게 정서적 안정을 주고 마음이 잘 통하는 상대가 나타나면 좋겠지만 오히려 아이들이 새로운 가정환경에 적응 하지 못하고 반대하는 등 새로운 갈등이 생길 가능성이 더 클 것 같아 재혼은 일찌감치 접었다”고 말했다.

IT 업계에서 일하고 있는 진설아(가명·36·여)씨도 4년 전 이혼을 했다. 지금 현재 동거하는 남자친구가 있지만 결혼은 ‘글쎄’다. 그는 “한번 결혼이라는 제도에 묶였다 나온 만큼 굳이 다시 묶이고 싶지 않다”며 “남자친구가 결혼을 원하고 있어 고민 중이지만, 결혼한다고 해서 고독이나 불안이 해소되는 건 아니다. 결혼을 하기보단 연애하는 기분으로 이 생활을 유지하고 싶은 생각이 더 크다”고 말했다.

독신을 이야기할 때 ‘성문제’가 거론되기도 한다. 독신의 성은 개방적이고 자유로울 것이라는 인식이 존재한다. 독신가족의 증가는 이혼과 성 개방 풍조와도 맞물려있는 것이 사실이다.

금융계에서 일하는 백준기(가명·32)씨는 “주변의 독신들을 보면 여성보다는 남성들이 본능에 충실한 경우가 많다”며 “30대에 들어서니 아직 싱글인 친구들이나 누나, 형들과 만나면 자연스레 ‘원나이트’ 경험담 이야기가 나와 적잖게 당황한 적이 많다. 요즘 성이 개방되어 있다 보니 클럽· 동호회 등에서 이성을 만나 마음에 맞으면 원나이트로 이어지는 경우도 잦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그렇다고 해서 독신의 성이 마냥 자유롭지만 않은 것 같다. 나이가 들수록 만날 수 있는 이성의 폭은 좁아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며 “이성과의 사랑을 통한 애정관계도 있지만 성욕구를 해소하기 위해 밤문화 업소 쪽으로 눈길을 돌리는 경우도 적지 않은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결혼 후 출산이라는 사고방식도 무너지고 있다. 딩크족(double income no kids)과 싱글맘·대디의 증가 등이 이를 증명한다. 성개방에 대한 미혼모·미혼부 증가 동거부부의 증가는 우리 사회 가족 형태가 변했음을 반증한다. 보수적인 한국 사회는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인정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돼 있지 않다. 따라서 다양한 가족의 형태가 결혼과 동등한 수준의 법적 보호를 받는 유럽처럼 변화하는 세태에 따른 사회적 분위기 형성과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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