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위안부 문제 툭하면 덮어 버리려다 미국 강경 방침에 ‘움찔’

‘표리부동’ 일본, 소심한 한국 정부…종군위안부(강요된 성노예) 해결 아직 ‘요원’
 

[일요서울 | 이창환 기자]  일본이 백악관에 ‘종군위안부 결의안 폐지’를 요구해오다 도리어 강력한 반대 세례를 맞았다. 일본 정부는 지금까지 미국 정부의 종군위안부 결의안(일본 정부는 위안부와 관련해 책임을 분명히 하고 사과를 해야 한다)에 강력 항의하면서 자신들의 치부를 감추려 애썼다.

최근에는 일본 외무성이 미국 뉴저지주의 ‘위안부 기림비’ 철거운동을 직접 주도했다는 비난까지 받고 있다. 대한민국이 정부보다 개개인의 자발적인 움직임으로 위안부의 아픔을 대변하는 것과 달리 일본 정부는 치밀하고 조직적으로 위안부 문제를 지우고 있는 것. 일본이 최근 가장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사안은 ‘종군위안부’ 명칭이 ‘강요된 성노예’로 불리게 되는 일이다.

‘강요된 성노예’ 개칭은 지난 3월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의 발언 이래로 부각되고 있다. 힐러리 클린턴은 한미 외교장관 회담 자리에서 ‘위안부’를 ‘강요된 성노예’로 표현, 여성 인권에 큰 관심을 보였던 기존의 입장을 그대로 유지했다. 힐러리 클린턴의 발언에 겐바 고이치로 일본 외무상은 “성노예라는 말은 틀린 표현이며 클린턴 장관이 위안부를 성노예라고 표현했다는 보도의 사실 여부를 확인하고 있다”는 입장을 드러냈다. 종군위안부를 둘러싼 일본의 ‘변함없는 횡포’와 최근의 소녀상 말뚝 테러, 대한민국 국민들의 대응 등을 알아봤다.

 

▲ <뉴시스>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미국 정부의 입장은 2007년 당시에도 이슈를 낳아 일본 정부와 대립각을 세웠다. 2007년 7월 당시 미국 하원의회에서 위안부 결의안이 만장일치로 채택되자 일본 정부가 촉각을 곤두세우면서 통과를 저지하기 위해 총력전을 펼쳤던 것. 당시 하원 외교위원장은 ‘위안부’대신 ‘성노예’라는 명칭을 사용하면서 “일본 정부가 젊은 여성들을 강제 동원한 것에 대한 책임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후 위안부의 ‘강요된 성노예’ 명칭 거론은 지난 3월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의 발언으로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다. 한국 정부가 변함없이 미온적 태도로 일관하고, 일본 정부가 오랫동안 노골적으로 축소, 은폐를 시도하던 와중에 빚어진 일이다.
미국 언론의 최근 보도에 따르면 힐러리 클린턴은 한일 과거사에 대한 최근 보고를 받던 중 일본군 위안부는 잘못된 표현이니 ‘강제된 성적 노예’(enforced sex slaves)로 고쳐 쓰도록 했다.
 
현지 언론은 힐러리 클린턴이 한국을 비롯한 필리핀, 호주, 뉴질랜드, 네덜란드 전쟁 여성 피해자들에 편에 서고 있다고 분석하면서 이번 지시를 관심 있게 보도했다.
미국 국무부 패트릭 벤트렐 부대변인도 지난 9일 브리핑에서 “2차 세계대전 당시 이 여성들에게 일어난 일은 비참했다. 이에 대한 미국 정부의 공식 입장은 심각한 인권위반이라는 것이다”라는 입장으로 힐러리 클린턴의 발언에 무게를 실었다.
 
일본 정부의 대응은 즉각적으로 튀어나왔다. 지난 10일 일본 정부의 겐바 고이치로 외무상은 “클린턴 국무장관이 일본군 위안부를 ‘성적 노예’라고 표현했다는 보도의 사실 여부를 확인하도록 지시했다. 만약 미 국무장관이 성적 노예라는 표현을 사용했다면 지금까지의 총리의 사죄 표명, 위안부 지원을 위한 아시아여성기금 창설 등의 조치를 설명해야 한다. 이는 틀린 표현이다”라고 밝혔다.
물론 일본이 가장 우려하고 있는 것은 미국 공문서에 ‘성적 노예’ 표현이 등장할 경우, 이 표현이 공식 표기로 자리 잡게 될 가능성 때문이다.
 
“일본 역사의 진실은 우리의 인생을 망가뜨린 것”-
 
반면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는 힐러리 클린턴의 발언을 적극 지지했다. 지난 11일 정대협 관계자는 “우리의 마음을 읽어준 것 같아 매우 힘이 된다”는 입장을 발표하면서 “힐러리 클린턴은 평소 여성인권 문제에 대한 의지를 보여 온 사람으로 이 같은 발언은 매우 의미 있고 진실하다”고 말했다. 또한 “유엔과 국제노동기구(ILO)의 보고서 등 국제사회에서는 이미 일본군 위안부 제도에 대해 성노예라고 규정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정대협 관계자는 지난 11일 [일요서울]과의 통화에서도 “힐러리가 이 부분의 심각성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것 같아 매우 고맙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힐러리의 경우 미정부 내에 여성인권대사를 둬서 여성인권대사가 활동할 수 있게끔 돕고 있다. 지금까지 한국사회의 상황, 할머니들의 상황을 고려해서 일본군 위안부라고 썼지만, 이번 발언이야말로 문제의 본질과 관계 깊다고 본다”고 말했다.
 
정대협은 지난 11일 서울 종로구 중학동 일본대사관 앞에서 1030회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 집회를 열었으며, 오는 8월 15일에는 ‘마침내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해방을’이라는 슬로건 아래 서울 청계천에서 굿과 평화행진을 펼칠 예정이다.
 
‘일본군 위안부’ 개칭 필요성 전면 대두-
 
명칭의 재정립으로 이슈화된 ‘위안부’ 문제를 보는 시민들의 눈은 정부를 향해있었다. 외교부를 비롯한 정부가 위안부의 아픔을 오랫동안 외면해 왔다는 인식도 한몫했다.
‘위안부’를 위한 집회나 시위가 국가의 도움 없이 일어나는 사례는 이 같은 시선을 증명한다. 최근 몇 년간 독도 문제, 위안부 문제에 분개한 시민들은 일본 정부를 향한 차량 돌진과 돌멩이 투척, 고소·고발 등을 시도했다. 이들 대부분은 “일본 정부와 외교적 마찰을 피하려는 정부의 미온적인 반응이 불만이다”라고 말했다.
 
특히 지난 9일에는 위안부 소녀상 ‘말뚝 테러’에 분노한 60대 남성이 1톤 화물차를 타고 주한 일본대사관 정문으로 돌진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남성은 경찰 조사에서 “일본 우익단체 회원이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에 말뚝을 박은 것에 너무도 화가 났다. 위안부 소녀의 정조를 짓밟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말뚝 테러’ 사건이 터진 직후 종군위안부 할머니들과 시민단체, 시민 1000여 명은 일본대사관 맞은편 소녀상과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에 ‘다케시마는 일본땅’이라고 적힌 말뚝을 세우고 ‘위안부상은 매춘부상’이라고 모욕한 일본 극우정치인 스즈키 노부유키(47)를 검찰에 고소했다.
 
현 정부와 달리 시민들의 위안부 지원은 다양하게 진행되고 있다. 지난 6일에는 성신여대 객원교수가 유학생 8명과 함께 미국 뉴욕 시내 한복판에서 ‘일본군 종군위안부’ 관련 전단지 2500장을 배포한 것과 재일교포 안세홍 사진작가가 일본 도쿄에서 ‘위안부 사진전’을 열어 5000여 명의 관객을 모은 일이 각각 언론에 보도됐다. 이들의 공통된 바람은 할머니들이 겪은 희생과 고통을 위로하고 전 세계에 위안부 여성들의 피해를 알리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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