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시스>

‘하우스푸어’ 등 새 빈곤층 양산… 중산층 무너져
소득불균형이 범죄율, 이혼률 등 사회적 갈등 지표로 심화

 [일요서울 | 최은서 기자]  ‘부동산 불패신화’가 추락하고 있다. 그 속도가 너무 빨라 국민 모두가 당황하고 있다. 특히 집값이 정점을 찍었던 2006~2007년에 집을 마련한 이들의 한숨은 날로 깊어지고 있다. 몇 년 사이 부동산은 ‘빛과 그림자’를 명확하게 드러내면서 서울과 수도권을 중심으로 ‘하우스푸어’를 양산했다.

특히 베이비부머 세대들은 전체 자산의 평균 80% 이상을 부동산에 다 걸어 집값 폭락으로 전전긍긍하고 있다. 베이비부머 세대 자녀들은 취직과 결혼이 늦어지는 캥거루세대로 부모와 동거하며 경제적으로 기대고 있는 경우가 많아 부동산 폭락의 그림자는 20~30대에도 짙게 드리워져 있다. 이처럼 계속되는 불황으로 ‘하우스푸어’ 등 새로운 빈곤층이 양산되면서 중산층이 무너지고 있다. 가정이 해체되고 생계형 범죄가 늘고 계층 간 갈등이 심화되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영화 ‘커플즈’에서 남자주인공 김주혁은 은행에서 무리하게 대출을 받아 여자 친구와 함께 살 신혼집을 장만한다. 신혼집 마련 욕심에 대출을 받았지만 밀려드는 이자 부담에 대출 금리를 깎으러 은행을 찾아 가기도 한다. 김주혁은 빚까지 떠안고 보금자리를 마련하나 현실은 기대를 배반한다. 여자 친구는 이제 돈 한 푼 없이 집만 있는 김주혁에게서 도망가 버린 것. 결국 그에게 남은 건 달콤한 신혼생활이 아닌 부담스럽기만 한 대출이자와 집뿐이다. 이는 ‘집’을 가졌으나 그 집에 짓눌려 가난할 수밖에 없는 ‘하우스푸어’의 단면을 잘 보여주고 있다.
 
비싼 집에 사는 가난한 사람들
 
‘하우스푸어’는 ‘비싼 집에 사는 가난한 사람들’이란 뜻이다. 최근 서울과 수도권을 중심으로 무리한 대출을 받아 집을 샀다가 빚에 짓눌려 빈곤하게 살고 있는 사람들을 말한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우리나라 하우스푸어는 500만 명을 넘어섰다. 적게는 108만4000가구에서 많게는 156만9000가구로 추정된다. 가구원 수만 549만1000명에 이른다. 하우스푸어는 수도권에 거주하면서 아파트를 가진 30~40대의 중산층 가구가 대부분이라 할 수 있다.
 
과거 재산을 늘리는 대표적인 수단은 집, 특히 아파트였다. 이른바 ‘부동산 불패신화’라는 신조어까지 나오는 등 집값이 계속 올라 무리를 해서라도 집을 사놓으려는 사람이 많았다. 2006년~2007년에는 부동산 가격이 정점을 찍었으나 2008년 전 세계 금융위기가 닥치면서 서울·수도권 집값이 눈에 띄게 하락하기 시작했다.
 
특히 부동산 투자시장의 바로미터인 강남 재건축 아파트가 큰 폭으로 하락했다. 2008년 ‘리먼 브러더스 사태’ 직후 수준까지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부동산 114 조사에 따르면 지난 4년 6개월 동안 투자성이 강한 강남권 재건축 아파트들은 보통 30~40% 내렸다.
 
개포동 D중개업소에 따르면 강남구 개포동 개포주공 4단지 전용 50㎡의 경우 2007년 12억 원에서 현재는 급매물로 6억8000만 원대로 5억2000만 원이나 떨어졌다. 강남구 개포동 시영아파트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시영아파트 56㎡의 급매물은 6억4000만 원으로 2008년 1월 매매가평균 8억5000만 원선에서 2억 원이 빠졌다.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7억7500만 원 선을 유지했으나 폭락했다.
 
지난 17일 D중개업소 관계자는 “어제 하루 사이에만 개포주공단지 가격이 1000~2000만 원 떨어졌다. 2006년 이전 시세로 돌아가는 것 같다”며 “아파트 가격이 폭락하고 있으며 개포주공 3~4단지에서도 깡통아파트가 벌써 2개 나왔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큰 평수는 아예 거래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고 한 달 사이 한 건의 거래도 성사하지 못한 공인중개업소가 수두룩하다”며 “은행 경매에 나오는 집도 많고, 깡통 아파트가 됐다고 우는 사람도 많다. 한마디로 부동산 시장이 몰락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때 13억 원을 훌쩍 넘었던 송파구 잠실 주공5단지 112㎡도 9억2000만 원으로 떨어져 9억 원선 붕괴를 목전에 두고 있다. 잠실의 O공인중개소 관계자는 “대형일수록 아파트 가격이 큰 낙폭으로 떨어졌다”며 “잠실 부동산의 경우 2~3년부터 171m²등 평수가 큰 아파트들은 3~4억 정도 떨어졌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97년도는 기업들이 부채가 많아 파산했고 지금은 개인들이 부채가 많아서 파산하고 있다”며 “경매에 나가는 아파트 등 깡통 아파트도 나오는 등 시장이 붕괴되고 있다”고 전했다.
 
번져가는 강남발 부동산 악재
 
하우스푸어 문제는 강남권에 국한된 이야기만은 아니다. 강남발로 시작된 부동산 악재는 수도권에서 지방으로까지 번져가고 있다. 당장 서울과 수도권에서 대출 이자를 감당하지 못해 경매에 부쳐지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부동산 경매전문업체 지지옥션이 수도권 아파트 최초 경매 진행 사건을 조사한 결과 지난 3월 금융권의 청구 금액이 사상 최고치인 2025억 원을 기록했다. 이어 4월에도 최고 수준인 1972억 원이 청구됐다.
 
서울에서 살다 지난해 6월에 인천 청라지구로 보금자리를 옮긴 심모(38)씨는 자신이 하우스푸어가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심씨가 이사 온 후 아파트 가격은 계속 내리막이었다. 무리하게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집을 장만했지만 현재 심씨의 아파트는 5000만 원 이상 떨어진데다 오를 기미조차 보이지 않아 고민만 깊어져 가고 있다. 심씨의 한 달 월급은 300만 원 선. 이 중 50%에 가까운 돈이 대출 원금 및 이자로 매달 통장에서 빠져나간다.
 
심씨의 가족은 심씨, 아내, 아이 셋으로 5인 가정이다. 5인 가족이 약 150만 원으로 생활비, 교육비 등을 충당해야 해 매달마다 허리띠를 졸라맬 수밖에 없다. 특히 노후대책을 위한 연금이나 보험은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심씨는 “하우스푸어는 남의 이야기라고 생각했지만 결코 남 이야기가 아님을 절실히 실감하고 있다. 아이들을 위해 써야하는 돈 조차 아껴야하는 상황이 절망스럽다”며 “차라리 이럴 바에는 집을 사지 말고 전세로 살아가는 편이 훨씬 더 나았을 것이란 후회가 든다”고 말했다.
 
그의 고민은 이것뿐 아니다. 그는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 계속해서 대출 원금과 이자 갚는 것에 시달릴 것을 생각하니 암담하다”며 “대출금을 다 갚을 때까지 직장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인가도 걱정된다. 만약 중간에 피치 못할 사정으로 회사를 그만두게 되면 곧바로 무주택자로 전락하거나 심하면 길거리에 나앉을 수 있다는 공포에 사로잡히곤 한다”고 토로했다.
 
부동산 시장이 하락에 하락을 거듭하는 가운데 전세는 치솟고 있다. 최근 발표된 자료들에 따르면 전국 아파트 전세금은 40개월 째 오름세다. 하우스푸어에서 담보대출 이자를 감당하지 못해 전세로 옮겨 ‘렌트푸어’로 주저앉는 이들도 많다.
 
렌트푸어란 집이 없어 전세나 월세로 사는데 전ㆍ월세가 너무 올라 소득 대부분을 전ㆍ월세로 지출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한 중개사업소 관계자는 “부동산 매매는 하락하고 있는 반면 전세는 고평가되어 있다”며 “부동산 대책의 유연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특히 퇴직으로 정기적 수입원이 없거나 은퇴를 앞둔 베이비부머 세대가 더욱 심각하다. 자녀들을 결혼 시킨 후 주택 규모를 줄여 생긴 돈으로 생활비를 충당하려고 한 노후 설계가 집값하락으로 어긋났기 때문이다. 특히 베이비부머 세대 자녀들은 부모에게 경제적 의존도가 높아 베이비부머의 어깨를 더욱 무겁게 하고 있다. 하우스푸어로 전락한 이들이 금융 부담을 견디다 못해 주택이 경매에 부쳐지는 등 부동산 시장이 얼어붙어 금융기관의 부실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깊어가는 사회적 갈등
 
하우스푸어를 시작으로 렌트푸어, 워킹푸어 등등 각종 푸어(poor)들이 난무하는 신용불량의 한국 사회는 사회갈등 역시 깊어져가고 있어 우려를 사고 있다.
 
‘한국 경제 성장과 사회지표 변화’라는 논문에 따르면 소득불균형이 자살율, 범죄율, 이혼률 등 사회적 갈등 지표로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산층(중위소득 50~150%) 비중은 1995년 75.3%에서 2010년 67.5%로 줄었고 하위층(중위소득 50% 미만)은 7.7%에서 12.5%로 증가해 양극화가 갈수록 커지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월평균 임금 격차는 2004년 1.54배에서 2010년 1.8배로 확대됐다. 범죄 발생건수는 2009년 10만명 당 4356건으로 1990년 2741건에 비해 1.6배 많아졌으며 같은 기간 살인건수는 1.8배 늘었다.
 
특히 우리 경제의 주축인 40·50대의 중장년층이 오랜 경기침체로 인한 가족해체 추세 속에서 범죄율도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과거 20~30대의 전유물처럼 여겨지던 살인·강도 등 강력범죄는 물론이고 단순 폭력범죄의 주 연령층이 40·50대로 옮겨 붙고 있다.

특히 산업화의 주역으로 베이비부머 세대인 50대의 강력범죄율이 2001년 7.0%에서 2010년 15.6%로 배 이상 늘어나는 등 가파른 상승곡선을 긋고 있는 점도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 이는 경제위기와 무관치 않다.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금융위기를 더하면서 고용불안이 커지고 가계경제가 무너진 것이 주요 원인으로 직장과 가정 내 갈등이 복합적으로 맞물려 일어난 사회현상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경제적 불안감이 중장년층을 사회 중심부에서 주변부로 내 몰면서 중장년층의 범죄양상도 폭력성을 더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충동적이고 표출적인 범죄를 저지르는 중·장년층이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우려를 사고 있다. 2010년 전체 강력범죄 동기 중 50.8%가 우발적 동기로 나타났는데 이는 중장년층도 다르지 않다. 폭력이나 방화 같은 표출적 자신의 감정을 범죄를 통해 표출하는 것으로 자신의 감정을 해소하지 않으면 못 참기 때문에 범행을 저지르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하우스푸어 급증하는 등 경제적 위기로 생존에 대한 스트레스가 커졌지만 이를 해결할만한 사회적 장치나 방법이 없다보니 가정 불안을 야기하는 이혼이 급증하고 사회적 불안을 야기하는 범죄나 자살로 이어지고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처럼 경제 위기로 사회의 중심축인 중장년층이 흔들리고 있어 대책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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