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 현장 경험 전무한 현병철號 계속되나?

정권 편들기로 인권위 위상 눈에 띄게 추락…반인권적 발언 도마
 고구마 줄기 캐듯 나오는 각종 의혹…강행 고수하는 청와대 왜? 

[일요서울 | 최은서 기자]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11일 현병철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 위원장을 연임 내정했다고 발표한 이후 반대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현 위원장은 그동안 용산 참사 등 주요 인권 현안에 침묵해 ‘식물 인권위’라는 비판에 직면해왔다.

현 위원장은 의사진행을 거부하거나 지연시키는 등의 방법으로 인권위를 사실상 ‘식물인권위’로 만들었으며 일방적인 정권 편들기로 일관해왔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현 위원장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에서도 각종 의혹 제기와 비판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하지만 거센 반대 여론에도 불구, 청와대가 현 위원장의 연임을 강행하려는 움직임을 보여 인권 및 시민단체들의 반발도 거세지고 있다.

 

▲ 현병철 인권위원장 ⓒ 일요서울 정대웅 기자

현 위원장은 2009년 7월 임명 직후부터 인권 관련 연구경력이나 활동이 전혀 없다는 이유로 자격논란에 시달렸다. 실제로 그가 교수 시절 쓴 논문 21편 중 인권 관련 주제를 찾아보기 어렵다.

국가인권위원회법에는 인권위원(장)의 자격 요건을 “인권 문제에 관해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이 있고 인권 보장과 향상을 위한 업무를 공정하고 독립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고 인정되는 자”라고 명시하고 있다. 현 위원장 스스로도 “인권위 또는 인권 현장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차라리 모르는 게 장점으로 작용한 것 같다”고 말해 전문성 논란에 불을 붙이기도 했다.

‘식물 인권위’ 전락

현 위원장이 재임한 3년간 불거진 가장 큰 문제는 인권위가 ‘식물 인권위’로 전락했다는 점이다. 현 위원장은 용산참사, 미네르바 사건, PD수첩, 한진중공업 크레인 농성, 불법 민간인 사찰, 서울역 노숙인 강제퇴거 조치 등 주요 인권 침해 사건에 대해 침묵했다. 이처럼 인권위가 친정부적인 성향으로 바뀌어 현 정권의 심기를 건드릴 만한 인권 문제에 대해 의견 제출을 하지 않는 등 제 목소리를 내지 않아 인권위 위상도 눈에 띄게 추락했다. 이는 예전의 인권위가 국가보안법과 이라크 파병 등 주요하고 민감한 사안에 대해 과감히 의견을 내며 한국 인권 의식을 이끌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특히 현 위원장은 해당 인권 문제에 대한 의견 제출을 안건을 올리면 독단적 방식으로 막아 여론의 도마 위에 올랐다. 인권위원들이 용산참사 재판에 의견을 제출하자는 안건을 전원위원회에 올리려 하자 현 위원장은 담당 조사관에게 “어떻게든 상정을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인권위 전원회의에서 이 안건이 가결될 분위기를 보이자 현 위원장이 “독재라도 어쩔 수 없다”며 일방적으로 폐회선언 해 논란이 일었다.


문제가 됐던 현 위원장의 발언은 이뿐 아니다. 2010년 7월 사법연수원생과 만난 자리에서 현 위원장은 “우리 사회는 다문화 사회가 됐다. ‘깜둥이’도 같이 살고...”라고 인종차별적 발언을 했다. 이 같은 문제발언들은 이미 취임 직후부터 예견됐다. 현 위원장은 취임 직후 업무 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우리나라에 아직도 여성차별이 존재하느냐”고 말해 여성계의 비난을 샀다.
현 위원장의 재임 기간 동안 인권위가 인권위로서 제 기능을 상실하면서 인권이 퇴보했다는 비난도 거세다. 실제로 지난해 국제인권단체 프리덤하우스는 한국을 ‘언론자유국’에서 ‘부분적 언론 자유국’으로 강등했고 세계 30위권이던 한국 언론자유지수는 67위로 떨어졌다.

날카로운 대립각

현 위원장 재임 3년 내내 크고 작은 논란으로 자격 논란이 끊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청와대가 연임내정을 강행하면서 야권과 시민단체가 들끓고 있다. 새누리당 일각에서도 비판론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현 위원장을 둘러싼 각종 의혹들이 ‘고구마 줄기 캐듯’ 줄줄 나오면서 비판의 목소리도 거세지고 있다. 하지만 현 위원장은 논문 표절 사실을 일부 인정했을 뿐 나머지 의혹에 대해서는 전면 부인했다. 논문 표절, 업무추진비 과다 지출, 아들 병역 특혜, 부동산 투기 의혹 등이 제기되며 현 위원장을 코너로 몰고 있지만 청와대는 현 위원장의 연임을 강행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에 현 정부와 ‘코드 맞추기’에 주력한 현 위원장을 이 대통령이 높이 사 연임 후보자로 내정된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이 대통령 측근 및 친인척 비리 등이 잇따라 불거지며 레임덕을 가속화 시키고 있는 상황인 만큼 청와대가 정권 입맛에 맞고 청와대에 이미 한번 검증된 인사로 자리를 채우려고 한다는 것. 그동안 현 위원장이 정치적 민감 사안들에 대해 현 정부와 인권위가 마찰을 빚지 않도록 코드 맞추기에 적극 나선 것도 청와대가 현 위원장의 능력을 높이 평가하는 이유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이혜훈 새누리당 최고위원이 지난 19일 최고위원 회의에서 “인사청문회 때 제기된 여러 의혹들을 접어두더라도 과거 (인권위원장으로서의) 3년간 행적이 적절했는가에 선뜻 답하기 어렵다”며 청와대의 연임 강행 입장을 비판했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은 “여당마저 청문보고서 채택을 하지 않겠다고 할 정도로 무자격 부적격인 사람을 굳이 청와대에서 임명을 강행하는 것은 이명박 정권 출범 이후 MB가 일관되게 보여줬던 인권 무시, 인권 경시를 다시금 확인시켜주는 것으로 보인다”며 “현 위원장이 연임되면 인권위가 식물 인권위라는 오명을 듣고 있는데 그게 더 강화 될 것이고 인권위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 반복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는 최근 성명을 통해 "2009년 현 위원장 취임 이후 인권위가 용산참사나 MBC PD수첩 수사 등 주요 인권사안에 대해 침묵하거나 단호한 행동을 취하지 않았다"며 현 위원장 연임 움직임을 비판하고 나섰다. 민주통합당도 지난 19일 현 위원장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보고서 채택이 무산되자 독자적으로 ‘부적격’ 의견을 담은 보고서를 만들어 청와대에 전달했다.


인권위 내부에서도 현 위원장의 연임을 반대하는 기류가 거세다. 인권위 직원 10명 중 9명이 현 위원장 취임이후 “한국의 인권상황이 후퇴했다”고 평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준) 인권위지부는 지난 13일부터 5일간 위원장과 인권위원 등을 제외한 인권위 직원 86명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에서 직원의 직원의 90.7%는 “현 위원장 재임기간 동안 인권위가 사회의 각종 인권 현안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다”고 답했다. 또 직원의 84.8%가 “현 위원장이 연임한다면, 앞으로 인권위가 사회의 인권보호와 증진에 기여하지 못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현 위원장의 국회 인사청문회를 앞둔 가운데 인권위 직원들이 자발적 모금으로, 일간지에 현 위원장의 사퇴를 촉구하는 내용의 광고를 내 파장이 일었다. ‘현병철 위원장 연임을 반대하는 인권위 직원들’이라고 밝힌 이들은 16일 한 일간지 광고면에 ‘인권위를 진심으로 걱정한다면 현 위원장 스스로 떠나야 한다’는 제목으로 위원장의 어록을 공개하며 현 위원장의 자진 사퇴를 촉구했다. 


인권위 노조(준) 관계자는 “현 위원장의 연임 여부가 결정 나야 노조의 향후 대응을 결정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운을 뗀 뒤 “이 대통령이 현 위원장의 연임을 강행하려는 입장을 밝혔는데 현 위원장은 인권위원장으로서 부적격한 사람이므로 현 위원장 스스로 자진 사퇴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재임기간 꾸준히 불만이 제기되어왔다. 상임위원과 비상임위원 각각 2명이 사퇴했고 60여 명의 전문·자문·상담 위원들도 사퇴했다. 직원들도 5명이 사직했다. 이런 것들이 독단적 운영에 대한 불만 표출인 것”이라며 “현 위원장 연임에 반대하는 직원들도 80~90%로 압도적이라고 본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현 위원장의 연임을 둘러싸고 청와대와 야권, 시민단체, 인권위 내부가 대립각을 날카롭게 세우고 있어 현 위원장의 거취에 모두의 눈이 쏠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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