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점점 드러나는 ‘우향우’ 본색

[일요서울|최은서 기자] 일본의 우경화가 심상치 않다. 일본 내 보수 세력들의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일본과 한국·중국 간 외교관계에 강한 냉기가 흐르고 있다. 국민 감정 싸움도 격화되고 있다. 이웃국가들과의 마찰을 발판 삼아 일본 내 보수파가 세력을 오히려 확장시키면서 국가 간 갈등을 키우는 쪽으로 흘러가고 있다. 또 이 같은 외교상황을 정치적으로 이용해 권력을 잡으려는 극우 포퓰리스트(대중선동가)들의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어 주변국들의 우려를 사고 있다. 일본의 영토·과거사 도발 등으로 빚어진 외교 갈등이 동북아시아 전체로 확대되고 있는 양상이다. 이에 일각에서는 한·중·일 3국 간 갈등국면이 동아시아 신(新)냉전으로 전개될 수 있다는 우려마저 제기되고 있다.

일본이 핵무장 의도한 원자력법을 개정한데 이어 군사대국화 움직임을 뚜렷이 보이는 등 우경화 발걸음에 속도를 내고있다. 일본은 또 과거 제국주의 침략의 과오를 제대로 반성하지도 않은 채 주변국과의 영토마찰을 빚는 등 외교적 도발도 서슴지 않고 있어 미래지향적인 관계개선이 점점 더 요원해지고 있다. 이 같은 일본의 행보는 경제·국방에 대한 위기의식이 커지고 원전사고 등의 악재로 지도력의 위기를 겪자 국민 여론을 환기시키려는 정치권의 의도로 풀이된다. 또 일본의 군사적 우경화 움직임을 부추겨 중국을 견제해 보려는 미국 전략도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제국주의 일본 되살아나나

일본은 지난 6월 원자력 기본법에 ‘원자력 이용의 안전 확보는 국민의 생명과 건강 및 재산의 보호, 환경보전’과 함께 ‘국가의 안전 보장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는 항목을 새롭게 추가했다. 극우파들이 부추겨서 정부원안에도 없었던 ‘안전보장’ 문구를 여야가 합의해 슬그머니 끼워 넣은 것이다. 이는 핵을 군사용으로 쓸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어 일본이 장기적으로 핵무장을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논란이 일었다. 지난달 초에는 ‘후쿠시마(福島) 제1원전 사고 후 에너지정책 수정 방안’이라는 보고서에는 핵무기용으로 전환 가능한 고순도 플루토늄을 생산하기 위한 고속증식로 ‘몬주’를 유지하자는 내용이 포함됐다. 이에 사실상 핵무장의 길을 터놓은 것이라는 비판이 국내외에서 쏟아졌다. 보고서의 원안에는 ‘우리나라의 안전 보장에 미치는 영향도 고려한다’ 표현이 포함돼 있었으나 원자력기본법의 추가 항목이 논란이 되면서 삭제된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외 비난을 의식한 일본 정부는 핵개발과는 무관하다며 진화에 나섰지만 핵개발을 줄기차게 요구해 온 이시하라 도쿄도 지사 등 극우파들의 목소리가 세를 얻어가는 일본의 흐름과 무관치 않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일본은 이뿐 아니라 군사적 전용의 길도 텄다. 일본 의회는 지난 6월 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JAXA)의 활동을 ‘평화 목적’으로 한정한 규정을 삭제한 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 설치법(이하 우주기구법) 개정안을 통과시킨 것. 지난 7월에는 총리 산하 위원회가 일본과 긴밀한 관계에 있는 다른 나라가 제3국의 무력공격을 당할 경우 일본이 군사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보고서를 작성했다. 일본에서 집단적 자위권 해석 변경은 우파들의 숙원이었다. 이에 일본이 본격적으로 집단적 자위권 보유의 길로 나서 결국 군국주의로 돌아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쏟아졌다.

한일 관계도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이후 정면충돌로 치닫고 있다. 이 대통령은 독도 방문 이후 “일왕이 한국을 방문하고 싶으면 진심으로 사과하면 좋겠다”는 등 연일 대일 강경메시지를 던졌다. 이에 일본은 통화스와프 중단 검토를 시사하는 한편 일본 내각의 마쓰바라진 국가공안위원장 겸 납치문제담당상과 하타 유이치로 국토교통상이 A급 전범의 위패를 모아놓고 제사를 지내는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 2009년 9월 민주당 정권이 출범한 이래 내각 각료의 야스쿠니 참배는 처음이었다. 남북한을 비롯해 중국 등 2차 대전 피해국 전체의 반발이 빗발쳤다. 뿐만 아니라 한·일 간에는 위안부 문제, 동해·일본해 병기 문제 등 평행선을 달리는 외교적 갈등 현안도 산적해있다.

영토를 둘러싼 중국과의 갈등도 심상찮다. 홍콩시위대가 댜오위다오(일본명 센카쿠 열도)에서 상륙을 시도하다 일본 당국에 체포된 사건과 관련 중국 정부는 “댜오위다오에 상륙한 중국인의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행위를 자제하라”고 촉구하는 등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일본의 대표적 극우파인 이시하라 신타로 도쿄 도지사가 댜오위다오 일부 섬을 사들여 국유화하겠다고 선언한데 이어 노다 총리도 일본 정부가 매입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혀 후진타오 주석이 중일 정상회담을 거부하는 등 갈등이 증폭된 바 있다. 일본이 먼저 분쟁을 조장하고 있는 형국이다. 올해로 국교정상화 40주년을 맞는 중일 양국은 다시 불거진 영토분쟁과 과거사 문제 등으로 감정의 골이 깊이 패여 있다. 이처럼 갈수록 노골화 되는 일본의 우경화 흐름에 제국주의 일본이 되살아나는 것은 아닌지 주변국의 우려가 깊어지고 있다. 또 한국과 일본이 대선을 앞두고 있고, 중국은 연말께 지도부 교체가 예정돼 있어 동북아 정세는 한동안 균형을 잡기 힘들 것으로 전망된다.

위기의식이 우경화 불 지펴

이처럼 일본이 노골적으로 우경화 흐름을 보이고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 우선 국방에 대한 위기의식이 안보정책 강성화에 불을 지피고 있는 것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2010년 댜오위다오를 둘러싼 중국과의 외교전에서의 참패, 북한의 핵개발 시도와 미사일 발사 등으로 안보 위기가 대두되면서 일본 사회가 보수 강경으로 몰려가고 있다. 정치권도 이를 안보정책 궤도수정의 호기로 받아들이고 관련 법안을 수정하는 등 적절히 활용하고 있다.

특히 동일본 대지진을 계기로 일본 사회가 전체적으로 자신감을 잃은 데다 앞서 버블경제의 붕괴로 시작된 심각한 불경기로 일본 대중의 불안이 팽배해 있는 것도 일본의 우경화를 부추기고 있다. 이 같은 불안 국면을 정치권이 갈등을 해결하려 들기보다는 정치적 반발을 피하기 위해 민족주의를 더 분출하는 계기로 이용하려는 인상이 다분하다.

또 이 같은 사회 분위기에 강력한 리더십을 갖춘 지도자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면서 오사카 시장인 하시모토 도루 등 극우 정치인의 인가가 높아지고 있으며 극우 지식인의 목소리도 일본 내에서 힘을 얻고 있다. 일본의 극우 정치인들은 이같은 분위기를 놓치지 않고 소셜 미디어를 통해 극우적인 게시물로 젊은 세대들의 내셔널리즘을 자극하고 있다. 오는 가을 일본에서 조기 총선이 치러진 다음에 현 노다 정권보다 보수색이 훨씬 더 짙은 정권이 들어설 것으로 확실시 되고 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경제가 안 좋아질수록 우경화 현상이 강해지고 극우세력이 힘을 얻게 된다”며 “경제가 나빠질수록 외국인에 대한 증오 등의 현상이 발생한다”고 분석했다. 신 교수는 이어 “우경화는 사실 전 세계적인 문제다. 경제 불황이 일본 뿐 아니라 각 국에서도 지속되고 있는 만큼 우경화 현상이 각 국의 추세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며 “이같은 흐름이 이어진다면 여러 가지 문제들이 복잡하게 얽히면서 외교적 분쟁이 빚어질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내다봤다.

이러한 일분의 우경화 뒤에는 미국이 배후로 자리 잡고 있다는 의혹도 팽배해다. 미국은 재정적자로 국방비 지출에 한계가 있는 만큼 중국의 아시아 패권을 막기 위해 일본의 강성 안보정책을 부추기고 있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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