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APEC 최대 화두 남•북•러 가스관사업의 빛과 그림자

[일요서울|고동석 기자] 남--러 가스관 연결 사업은 이명박 대통령이 현대건설 사장으로 있을 때인 1989년 노태우 정부시절 구소련과 가스관 사업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것이 출발점이다. 당시 양해각서 내용을 대략 살펴보면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북한을 관통하는 육로 또는 해상으로 남한에 가스를 공급한다는 목표로 40억 달러(한화 43천억 원) 규모의 대규모 사업이었다.

가스관 사업의 첫 단추를 끼웠던 이 대통령은 지난 9일 블라디보스토크에 열린 아시아 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참석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만나 남--러시아 가스관 사업을 비롯한 극동 시베리아 개발이 남북관계 개선에도 도움이 된다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

이날 한-러 정상이 나눈 대담은 남--러 가스관과 철도, 송전관 사업이 북핵문제 해결 외에도 극동 시베리아 개발을 위한 양국 간 경제협력 강화에 필요하다는 것이 요지였다. 그러나 이 사업은 현재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이후 답보 상태에 빠져있다.

정부당국은 김정일 사망 이후에도 가스관 연결 사업을 예정대로 진행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사실상 중단된 상태나 다름없다. 이 정권 들어 꽁꽁 얼어붙은 남북관계는 북한 김정은 체제가 들어선 이후 좀처럼 해소될 기미가 없다. 이런 이유로 해답 없이 20여년을 제자리에서 맴돌고 있는 이 사업을 다시 꺼내든 이 대통령을 향해 야권 일각에서 겉치레 식자원외교의 결정판이라는 비난이 흘러나오고 있다.
 

▲ 제20차 APEC 정상회의에 참석하는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8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극동연방대학교 내 APEC특별회의장에 도착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악수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제공)<뉴시스>
 

가스관 사업 내부 결속 방해 요소로 인식 

북한은 가스관 연결 사업에 참여할 경우 구소련 채무 22억 소비에트 루블(미화 약 110달러)의 채무 탕감 혜택을 러시아로부터 이끌어 낼 가능성이 높다. 지난해 6월 북한은 대() 러시아 부채의 이자 유예는 물론 약 90%를 탕감 받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런데다 가스관 연결이 완료된 뒤에는 통과료로 매년 15000만 달러에서 25000만 달러의 수익을 올릴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 경우 현재 북한 김정은 체제가 직면한 경제 불안정을 해소시켜줄 수 있고 가스관 사업이 안정적으로 운영되면 남한과 러아의 대북 투자 규모도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현실적인 측면에서 보면 가스관의 북한 통과는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우선 실현 불가능성의 대표적인 문제가 바로 폐쇄적인 체제 유지에 있다. 북한은 대규모 프로젝트 사업이 될 가스관 연결공사부터 유지하는 과정에 이르기까지 주민을 통제할 수 없는 예측 불허의 돌출될 요소들이 산재돼 있다.

또 하나 주목해야할 대목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지난해 8월 러시아를 방문해 드리트리메드베데프 전 대통령(현 총리)과 정상회담을 갖고 가스관 연결 사업에 합의한 바 있다.

문제는 지난해 하반기까지 진전을 보이던 가스관 사업이 김정일 사망 이후 김정은 체제 들어 답보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체제 안정화 과정에서 군부 장악과 통치 리더십 구축이라는 당면 과제가 급한 탓에 가스관 연결사업이 중점 항목에 밀려난 측면도 없지 않다.

그렇다 해도 올해 들어 김정은은 줄곧 대남 강경 노선을 유지해오고 있고, 최근에는 전면전 경고까지 서슴지 않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유훈통치로 남긴 가스관 연결 사업은 당분간 관심권 밖으로 방치될 것이라는 관측도 새어나오고 있다.

결국 북한은 김정은의 유일적 영도체계를 강조하면서 변화를 거부하고 개혁개방 노선으로 수정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중론이다.

특히 3년의 유훈통치 기간에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다지기 위해 내부 결속을 유도하기 대남 강경일변도를 고수할 것으로 보여 가스관 연결 사업을 위한 남북 대화나 경협은 당분간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여기에다가스관 연결 사업으로 김정은 체제가 내부 결속에 방해요소가 될 수 있다는 인식에서 가스관 연결 사업에 속도를 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 “남북 모두 실리”vs 대북 투자 개념

여권은 가스관 연결 사업을 남북이 모두 정치, 경제적 실리를 챙길 수 있는 대규모 프로젝트라는 시각에서 정권을 재창출한다면 바통을 이어 받을 공산이 크다.

홍준표 전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대표는 지난해 8월말 한 특강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건설회사 CEO(최고경영자)를 할 때부터 꿈꾸던 사업이 이제 완성된다이 대통령이 집권초기부터 남북 가스관 사업을 은밀해 추진해 왔고, 이는 전적으로 대통령의 개인 업적이라고 한껏 분위기를 띄운 적이 있다.

그는 또“11월쯤 되면 러시아 연해주의 천연가스가 가스관을 통해 북한을 거쳐 동해 지역으로 내려온다. 대공사가 시작된다가스관 사업으로 남북관계에 새로운 지평이 열릴 수 있으며, 일단 북한이 문을 열면 김대중 정부 시절부터 10년 구상으로 추진해온 TSR(시베리아횡단철도) 사업도 구체화될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결국 남북관계는 쓰리 트랙으로 움직이는데 북핵을 6자회담에서 푸는 것이 원칙이고,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으로 닫힌 남북 간의 대화채널을 어떻게 풀 것인가 하는 문제의 종착지가 결국 인도적지원과 경협 문제로 얼어붙은 남북 관계를 해빙하는 게 정상적인 수순이라는 것이다.

일부 대북 전문가들 중에는 지금까지도 홍 전 대표의 이러한 지론이 전혀 틀린 말은 아 니라고 분석한다. 그러나 관점에서 야권 일각에선 북핵과 남북대화가 중단, 대북 지원과 경협 문제를 분리해서 접근할 대상이 아닌 하나의 트랙이라고 지적한다.
 
2010
5.24 대북 경제제재 조치 이후 이명박 정부가 인식의 변화 없이 가스관 연결 사업을 거론한다는 것 자체가 이벤트식 자원외교의 결정판이라고 비판한다.

야권의 한 중진 의원은 남북 관계는 주고받는 식의 상호 실리적 관계로 보고 접근하면 오히려 문제가 꼬인다북핵을 제외하고 경협과 대북 지원, 가스관 사업은 통일을 염두에 둔 장기적인 투자의 개념으로 보고 다가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 연장선상에서 민주당은 지난 3MB 정부의 5·24 조치를 철회하고 남북 자원협력 전담 기구인 남북자원협력진흥재단(가칭) 설립 방안을 제시했다. 이와 함께 제2, 3의 개성공단을 단계적으로 확대하고 대륙철도 연결, ··러 가스관 연결 사업을 추진하는 방안도 10대 과제를 총선 공약으로 내놓은 바 있다.

정부, 겉으로는 적극 속내는 신중

남북을 가로지르는 가스관 사업은 지난해 12월 중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사망 이후 중대 기로에 놓였다. 정부 당국은 가스관 연결 사업을 김정일 사망과는 별개로 예정대로 추진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사업의 키를 북한이 쥐고 있어 속도를 내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북한을 경유하는 남북러 가스관 프로젝트는 2년 전 가스 공사가 러시아 시베리아 천연가스를PNG(파이프라인천연가스) 방식으로 운송방식으로 적극 검토하면서 남북대화 창구가 열릴 것이라는 기대심리를 불어주었다. 그러나 북측이 가스관 공사와 통행료를 터무니없이 요구하는 바람에 경제성과 현실성에 막혀 사업을 포기하고 말았다. 그렇다고 아예 접은 것은 아니었다.

이후 정부와 가스공사는 내부 재논의를 거쳐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시베리아 천연가스를 액화시킨 뒤 LNG(액화천연가스) 형태로 끌고 오기 위해 동해상 해저 파이프라인 건설 방안을 모색하기도 했다. 역시 이마저도 쉽지 않은 문제여서 신중 모드로 돌아선 상태다. 그렇지만 본질적으로 가스관 연결사업이 남북한 모두 경제적으로 실리를 취할 수 있다는 점에서 언젠가 현실화될 것이라는 기대는 저버리지 않고 있다.

한 지식경제부 당국자는 [일요서울]과의 전화통화에서 가스관 연결 사업은 현재로선 실마리를 찾기 쉽지 않은 상황이지만 북한으로서도 손해볼 것이 없다는 점에서 김정은 체제가 집권 안정기에 접어들면 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고 있다그동안 러시아 측과 긴밀한 협조 체제를 유지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말했다.

kds@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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