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개인 기업이 임직원들을 공개모집(公開募集)하기 시작한지는 오래다. 우리 역사에서 정부 관리를 공채하기위해 과거(科擧)제도를 채택한 것은 서기 788년 신라 원성왕 때 부터였다.

고려에서는 958년 광종 때 중국 당(唐) 나라 과거(科擧)제도를 도입하였고 조선조에서는 1392년 이태조 원년부터였다. 과거란 말은 과(科)목에 따라 선비를 기용(擧)한다는 데서 유래되었다. 우수한 인재를 선발하기 위한 제도이다.

공모(公募)제도가 시작된 지도 1200여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이 땅에 공모제는 정착되지 못한 채 끊임없이 잡음을 빚어낸다. 물론 초급 공무원과 대기업 신규채용 시험 등은 엄격히 관리되고 있다.

하지만 공공기관의 기관장이나 대학의 교수 공채 등에서는 인맥 편중의 네퍼티점(Nepotism:족벌정실등용)으로 전락된 경우가 적지 않다. 일부 공모제는 몇몇이 작당하여 함량미달 특정인을 대신 밀어붙이는 음습한 공모(共謀)제로 변질되었다.

동아일보 9월 3일자 보도에 의하면, 어느 공공기관의 기관장 공모에서 추천위원들은 서류심사와 면접을 거쳐 최고 득점자 3명을 후보로 추천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주무부처 담당자는 갑자기 후보 둘을 더 추가해 달라고 요구하였다.

추천위원들은 4, 5 순위자들을 끼워 넣어 주었다. 결국 5순위로 밀려났던 후보가 기관장으로 선임되었다. 분명히 권력의 간섭에 의해 성적 순위가 뒤바뀌어진 네퍼티점의 전형적 사례였다.

그 기관은 우수한 1순위 후보자가 밀려나고 함량 미달자가 기관장 자리를 꿰차고 앉았다는 데서 제대로 굴러갈리 없다. 다리가 하나밖에 없는 외다리 사람을 축구의 골 키퍼로 내세운 것과 다르지 않다. 게임을 망칠 수 밖에 없다.

공공기관 기관장 공모제는 1999년 김대중 정부 때 도입되었다. 인격과 실력을 갖춘 인재를 발굴한다며 ‘추천제’란 이름으로 시작되었다. 노무현 정부에 들어와서는 ‘공모제’로 명칭을 바꾸었고 이명박 정부에서도 공모 대상 기관을 더욱 확대했다.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측은 2003년 1월 각 정부부처 관련기관과 명망가들로부터 18개 부처 장관에 대한 추천을 받았다고 했다. 1870명이 추천되었다.

당시 나에게도 어느 부처의 관리에게서 내가 장관 후보로 추천되었다는 전화가 걸려왔다. 그는 나의 재산내역을 간단히 알려주며 추가 하거나 뺄게 없느냐고 물었다. 그 관리가 불러준 재산은 실제 나의 것과 비슷했다. 뒷 조사를 꽤 한 모양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 때 그 관리에게 “나는 노무현 정부와는 이념적 노선이 다른 사람이니 헛수고 말라”고 전한 바 있다.

예상했던 대로 노무현 정부의 장관들은 모두 ‘좌편향 코드’ 인사들로 이미 짜여져 있었다. 1870명은 들러리로 세워진 사람들이다, 노 당선자측은 ‘참여 정부’라는 기치를 내세우고 장관 선발도 국민 ‘참여’로 한다는 쇼를 부리기 위해 1870명을 띄웠던 것이다.

대학 교수 임용도 공모제로 한다. 어떤 대학에서는 객관적으로 논문실적과 경력 등을 기준으로 엄격히 선발한다. 그러나 어떤 대학에서는 앞으론 공모제를 내걸고 뒤로는 자기 대학 출신이나 제자를 뽑는다. 여기서도 1순위 지원자가 밀려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미국 대학들은 도리어 본교 출신을 멀리 하고 외부 출신을 선호한다. 학문의 창조적 발전과 신선함을 유지하기 위해서이다.

한국에서는 역사가 길고 학연에 얽매인 대학일수록 본교 출신에 얽매여 우물안 개구리가 되거나 근종(近種)교배한 동물 처럼 퇴영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우리 민족도 공모제를 실시한지 1200여년이 지났다. 음습한 공모(共謀)가 아니라 투명하고 공명한 공모(公募)제로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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