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와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의 정강정책들 중 주요 이슈들이 서로 엇비슷하다. 두 후보들은 각기 정강정책에 국민들이 원하는 것들을 모두 담아내 그게 그거 같다. 두 사람들의 주요 정책들에는 보수우익과 진보좌익의 차이가 크게 드러나지 않는다. 보수우편에 선 박 후보는 진보좌편 지지자들에게 영합할 수 있는 공약들을 내세웠다. 그런가 하면 진보좌편을 대표한 문 후보는 보수우편 지자들의 입맛에 짜 맞췄다.

문 후보는 전통적인 진보진영의 공약인 ‘경제민주화’와 ‘반값등록금’ 및 ‘무상보육’ 등 배분과 복지를 제시했다. 여기에 박 후보도 똑 같이 경제민주화·반값등록금·무상보육·복지 등을 들고 나섰다. 박 후보가 진보좌편향 정당이 전가지보(傳家之寶) 처럼 여겼던 정강들을 복창하고 나선 셈이다. 국가 재정이야 파탄나던 말던 우선 공평하게 나눠먹자는 진보좌익의 골수 정치 이데올로기를 받아들인 것이다. 박 후보의 “경제민주화” 주장은 보수우익의 정치신념을 일탈한 것으로서 진보좌익 표를 얻기 위한 표퓰리즘(대중영합주의)의 소산이다.

그런가 하면 문 후보는 병역의무 회피자들을 고위공직 임용에서 제외시키겠다고 공약하였다. 원래 보수우익은 병역의무를 강조하는데 반해, 진보좌익은 개인 권리를 더 앞세운다. 병역회피자들의 고위직 임용 배제 공약은 병역의무를 강조해야 할 보수측 박 후보의 몫이다. 그러나 진보측의 문 후보가 병역문제를 선점하고 나섬으로써 의외로 보수측 입장에 섰다. 보수측 유권자들의 표를 끌어내기 위한 공약 빌려가기이다. 

박 후보는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서라면 북한의 김정은 로동당 제1비서를 만날 수 있다고 했다. 박 후보의 남북정상회담 공약은 문 후보의 것과 똑 같다. 그동안 보수우익 유권자들은 금강산 관광객 사살, 천안함 격침, 연평도 포격 등에 대한 북한의 사과 거부에 분노, 북측과의 정상회담을 반대하며 북에 대한 지속적인 압박을 요구해 왔다. 그런데도 박 후보는 진보좌익 측의 정상회담 추진과 마찬가지로 자신도 정상회담을 약속했다. 박 후보의 정상회담 공약은 보수층의 기대를 저버린 처사이다. 대북 유화적인 유권자와 젊은 세대의 표를 의식한 것으로서 이 또한 포퓰리즘의 부작용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미국의 경우 올 11월 치러질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과 공화당의 정책 차이가 선을 긋듯 뚜렷하다. 미트 롬니 공화당 대통령 후보는 정부 권력을 축소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반해, 민주당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정부 권력을 증대시켜 보다 효율적인 봉사기구로 만들어야 한다고 맞선다. 오바마 대통령은 여성의 낙태 권리를 주장하지만, 롬니 후보는 반대한다. 오바마 대통령은 사회복지제도의 민영화를 반대하는데, 롬니 후보는 젊은 근로자들에게는 민영화의 혜택을 가질 수 있는 선택권을 주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미국의 대선 후보들은 표를 의식해 자기 정당의 기본 정치 이념을 내팽개치지 않고 뿌리를 지켜가며 국가 장래를 위해 큰 설계도를 내놓는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두 대선 후보들은 포퓰리즘에 흔들려 당의 정체성을 내동댕이 친 채 표가 될 만하면 무엇이든지 가리지 않고 주어 담는다. 두 후보자들의 정강정책들은 포퓰리즘에 찌들어 정체성을 상실했다.

그 이유는 분명하다. 국가의 장래를 위한 정강정책 제시가 아니라 눈앞의 이익에 아우성치는 유권자들의 표를 잔꾀로 긁어모아 당선만 되면 된다는데 연유한다. “대통령 병“에 걸린 나머지 국가 장래와 정치 신념을 헌 신짝 처럼 내던진 작태이다. 국가 최고 지도자로서 기본이 덜 된 탓이다. 그런 사람이 대통령으로 당선 되었을 때 포퓰리즘에 밀려 나라를 어떤 방향으로 몰고 갈지 두렵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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