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 끊어줄 사람 있는데 얼마면 되나요?”

[일요서울 | 고동석 기자] 지난 몇 년 새 가족들 명의로 든 생명보험을 노리거나 재산을 노리고 청부살인까지 저지르는 사건들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그 이면에는 인륜을 저버린 살인·폭력을 대행해주는 청부 해결사들이 활개를 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외형은 심부름센터라는 간판을 내 걸었지만 청부살해만 전문으로 거래하는 업체가 있다는 소문도 관련 업계에서 나돌 정도다. 그렇다보니 영화 속에서만 등장하던 전업 킬러(Killer)들이 있다는 말도 허무맹랑하게 들리지 않는다. 살인 1억 5000만 원에서 2억 원, 반신불수는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5000만 원에서 1억 원까지, 스토킹 2000만 원…. 최근 월 2억 원을 버는 아내가 이혼을 요구해 자식도 빼앗기고 거지가 될 것 같아서 청부살해한 40대 남성이 검거된 충격적인 사건 뒤에 사람 목숨을 거래했던 심부름센터가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더 이상 영화 속 이야기만은 아닌 살인·폭력 청부 해결사들의 실태를 파헤쳐봤다.

포털 사이트에서 검색한 전국 심부름센터 10개 업체를 상대로 “손 좀 봐줄 사람이 있는데 가능하냐”고 물어봤다. 이중 3개 업체가 거절했고 6개 업체가 “충분히 가능하다”고 답했다. 의뢰 액수는 대략 전치 상해 기준으로 8주 이상 정도로 3000만 원. 폭행을 하다보면 대상자가 갑작스레 죽을 수도 있는데 이럴 경우 뒤처리 비용까지 감안해 8000만 원을 정도 더 얹어줘야 한다는 게 업계 관계자의 전언이다. 

“청부살해 한 달에 두 건 정도 문의”

연락이 닿은 업체 관계자들은  ‘살인도 해주느냐’고 문의하자 6개 중 2개 업체가 한 참 뒤 다시 걸어온 전화에서 “문제없다”고 밝혔다. 설득 끝에 한 업체 대표를 어렵사리 만날 수 있었다. ‘A심부름센터’ 대표인 P씨는 서울 강남 아파트 단지 주변에서 영업해온 지 8년째라고 했다. 심부름센터를 찾는 고객들은 주로 남편 또는 아내의 불륜을 체증해달라는 요구가 대부분이라고 했다. 그런데 가끔은 불륜 상대를 반신불수로 만들어달라며 재의뢰를 해오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심지어 범행 상대가 여자인 경우에는 강간까지 해달라고 요구하기도 한다는 게 P씨의 설명이다. 의뢰 결과가 만족스러우면 성공보수 사례금까지 받을 때도 있다고 전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의뢰인들이 다리나 팔을 부러뜨려 주는데 얼마냐고 묻지만 대체로 청부살인을 요구할 때에는 액수를 따지지 않는다고 전했다. P씨는 “불륜 현장을 체증하는 의뢰는 수십만 원에서 수백만 원에 불과하다”며 “매달 한 두 건씩 의뢰가 들어오는 대리 폭행과 살인청부는 억 단위 액수가 걸려 있다 보니 유혹을 뿌리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그간 대리 폭행과 청부살해를 몇 건 처리 했느냐는 질문에는 “밝힐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청부살인업자에 대해 캐묻자 한 참을 머뭇거리다가 “중국에서 올 때도 있고, 연결돼 있는 청부업자 4명 중 3명은 조선족”이라고 했다. 그는 “살인 의뢰는 액수가 적게는 1억 5000만 원부터 최대 10억까지 제시하는데 액수가 낮은 경우에는 조선족들을 불러오고, 고액이면 중국인을 직접가서 데려온다”고 밝혔다. 청부살인업자에도 급수가 정해져 있어 수준에 따라 ‘작업자’ 또는 ‘히트맨’이라고 불리고 있다. 또 이들 청부업자들과의 계약은 통상 5대5로 나눈다고 했다. 또 다른 업체 관계자는 “국내에서 작업(살인) 할 때도 있지만 중국이나 일본으로 여행을 보내 처리할 때도 있다”며 “의뢰인의 절반 이상이 가족들이어서 유인하기가 어렵지 않고 국내보다는 뒤처리가 깔끔하다”고 말했다.

알음알음 전화로 연결된 또 다른 심부름센터 업체 관계자는 “폭행은 경찰 수사로 적발 소지가 있어 징역까지 각오해야 하고, 변호사 선임 비용이 들기 때문에 액수가 세다”며 “스토킹은 최소한 수개월 이상 전담 마크맨이 필요해서 인건비가 적지 않게 들어간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의뢰를 받고 착수금을 받은 뒤에 떼어 먹는 심부름센터도 있다”며 “심각한 사건들은 대행업체와 의뢰인 간에 신뢰 없이는 해결하기 어렵고 폭행이나 살인청부는 작업자들이 중도에 포기할 때도 많다. 의뢰인들의 요구도 갈수록 다양해지고 폭력화되는 추세라서 사람 찾아달라는 고객은 요즘 별로 없다”고 설명했다.

청부살인의 두 얼굴

청부살해를 의뢰했다가 오히려 심부름센터로부터 협박을 받아 돈을 뜯기는 경우도 적지 않다. 취재과정에서 몇 년 전 심부름센터에 청부살해를 의뢰했다가 곤욕을 치른 적이 있다는 직장인 H씨를 만날 수 있었다. H씨는 장난 삼아 괴롭히는 직장 상사를 죽이는데 얼마가 필요하냐며 수원에 있는 한 심부름센터에 의뢰했다. 심부름센터 측은 사전 조사 착수금 500만 원과 신상정보를 갖고 오라고 했다. 그래서 호기심에 살해계획을 설명해주면 결정하겠다고 밝힌 뒤에 더 이상 연락하지 않았다.

그런데 심부름센터 측은 집요하게 H씨를 물고 늘어졌고, 청부살해에 대한 상담료를 지불하라고 독촉했다. 그는 스토킹에 가까운 괴롭힘을 견디지 못하고 150만 원을 뜯길 수밖에 없었다.

지난 2009년 2월 영국에서 유학 중이던 D(22)씨는 포털 사이트에서 ‘청부살인 카페’를 발견하고 운영자에게 J(28. 대구시)씨에게 아버지와 형을 살해해달라고 의뢰하는 메일을 보냈고 이어 115만 원을 송금하고 계약했다. 그러나 J씨는 청부살인업자가 아니라 의뢰인의 약점을 미끼로 돈을 뜯어내기 위해 카페를 개설했던 것. 그는 계약과 정반대로 D씨 아버지에게 “아들이 당신을 살해해달라고 부탁했다. 돈을 주지 않으면 경찰에 알리겠다”고 협박했다. 대기업 상사 임원으로 해외 근무 중이던 D씨의 아버지는 아들이 자신을 살해해달라고 의뢰했다는 계약서를 보고 큰 충격에 빠졌지만 아들을 보호하려고 J씨의 입을 막기 위해 885만 원을 건넸다. 결국 경찰에 덜미가 잡힌 J씨는 상습사기와 공갈 협박 혐의로 구속된 것은 물론, 카페는 폐쇄됐다. 아버지와 형을 죽여 달라고 청부한 D씨 역시 존속살인음모 혐의로 구속됐다.

3개월 전인 지난 8월 경기도 용인시 주택가에서 50대 사업가가 괴한에게 습격당한 사건이 있었다. 사업가는 피습 13일 만에 사망했는데 경찰은 현재 청부살인에 무게를 두고 수사하고 있다. 용인서부경찰서 수사팀에 따르면 사업가 Y(57)씨는 8월 21일 오후 9시20분께 용인시 수지구 자신의 집 앞에서 부인(54)과 함께 차에서 내리다가 갑자기 덮친 괴한 2명으로부터 곤봉과 전기충격기로 폭행을 당했다. Y씨는 이 과정에서 둔기에 맞아 의식을 잃었고 사건 발생 직후 병원으로 후송됐으나 끝내 목숨을 잃었다. 부인은 당시 충격으로 언어장애 증상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사건 현장 주변 폐쇄회로(CC)TV 녹화화면을 확보해 정밀 분석 중이지만 뚜렷한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경찰이 이 사건을 청부살해일 것으로 추정하는 이유는 괴한들이 Y씨 부부의 귀가 시간을 알고 집 주변에 숨어 기다리고 있었다는 점이다. 또 비가 오는 궂은 날씨에 사전 계획에 따라 움직이듯 행동 반경이 주도면밀했다는 것이다. 이밖에도 금품을 노리지 않고 폭행에 집중했다는 점 등을 미뤄 원한 관계 또는 청부살해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사건 발생 얼마 전 Y씨는 ‘이번 일이 안 되면 죽여버리겠다’거나 ‘나 혼자 죽진 않는다. 저승길에 동행하자’는 협박 전화에 시달렸던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 성동경찰서는 지난 22일 사업가 아내를 살해해 달라며 1억9000만 원을 건넨 정모 씨(40)와 정 씨의 부탁을 받고 직접 살인을 실행한 심부름센터 운영자 원모 씨(30)를 각각 살인교사와 살인 혐의로 구속했다고 밝혔다.

남편 정씨는 이혼을 요구해온 아내를 지난 5월 청부 살해하기로 계획하고 심부름센터 대표 원모씨(30)를 알게 됐다. 정씨는 지난달 14일 아내 박씨에게 “당신을 능력 있는 사업 파트너에게 데려다 줄 친구”라고 원씨를 소개했고, 원씨는 박씨를 차에 태워 성수동의 한 오피스텔 지하주차장으로 끌고가 폐쇄회로(CC)TV가 잡히지 않는 곳에서 목 졸라 죽였다.

이외에도 중국에 있는 아내의 명의로 보험 들고 청부살해한 남편, 4년여를 함께 생활한 70대 집주인의 재산을 가로채기 위해 청부살해한 40대 가사 도우미 사건 등 원한과 재산 갈취를 노린 청부살해가 꾸준히 적발되고 있다.

경찰의 땜질식 심부름센터 단속

경찰 추산으로 전국에서 영업 중인 심부름센터는 대략 2500~3000여개. 현행법상 심부름센터 대표 원씨처럼 전과 14범이라도 해도 관공서의 허가나 자격증 없이 사업자등록만 하면 운영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불법적인 개인 뒷조사부터 주도면밀한 사전 계획으로 폭행, 살인청부까지 의뢰 받는 수준인데도 심부름센터는 난립할 정도로 성업 중이다. 개인정보 뒷조사를 해주겠다는 사설업체의 영업행위는 모두 불법이다.
그러나 각종 온라인 사이트 회원가입과, 카드사들이 수집한 개인정보들이 거래되는 주요 수요처 중 하나가 심부름센터들이다. 심부름센터들이 돈이 되는 일이라면 가리지 않다보니 이동통신업체 직원이나 동사무소 공무원까지 매수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도로 가나 주택가에 ‘떼인 돈 회수 해드립다’라는 불법 추심을 약속하는 스티커나 현수막을 내걸어 놓기도 한다.

범죄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현재로서는 사업자등록증만 있으면 누구든지 사업체를 개설할 수 있지만 실상 이들의 업종 상 감시 감독이 필수인데 관리 주체도 명확하지 않다”며 “심부름센터의 불법행위를 막기 위해선 허가 시 절차와 규정을 까다롭게 만들어야 하고 관련 법규가 정비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경찰은 상황이 이런데도 심부름센터의 불법행위 단속은 차치하고 실태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경찰청 관계자는 “전국적으로 심부름센터의 개수가 몇 개 정도인지 파악해 놓은 자료가 전혀 없다”고 밝혔다. 지난 2005년 2월 보험금을 노린 30대 여성이 심부름센터에 의뢰해 남편을 살해한 사건을 일으켰던 사회적인 충격 여파로 경찰은 당시 집중 단속을 벌여 보름 만에 심부름센터의 불법영업 302건을 적발했던 적이 있다. 단속하면 언제든지 적발할 수 있음에도 평소에는 눈을 감고 있다는 얘기다.

이번에도 역시 경찰청은 “최근 발생한 심부름센터 청부살해 사건을 계기로 전반적인 조사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사회적 관심과 우려가 높아지면 그때만 반짝하는 땜질식 처방만 되풀이하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경찰이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심부름센터의 운영 실태가 아닌 전국의 이름 모를 야산, 바다 속, 공사장 시멘트에 묻히고, 가라앉아 실종된 숱한 청부살인 피해자들의 이름들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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