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은 10월 18일 연평도를 방문한 자리에서 북한이 도발하면 가차 없이 응징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그는 북한이 “도발하면 반격을 여지없이 강하게 해야 한다. 과거에 웬만한 도발은 참았다. ‘확전’되면 안 된다는 생각을 가졌었는데 그것이 도발을 부른 요인이 됐다”고 자괴했다. 그는 또 북의 도발에 “백배 천배 보복을 한다면 북한이 도발하지 못한다”고도 했다. 뒤늦은 감이 없지 않으나 군통수권자로서 적절하고도 든든한 말이다.

그러나 이 대통령이 보복을 공언한 다음 날인 19일 북한 서부전선사령부는 “임진각과 그 주변에서 사소한 삐라(풍선에 의한 전단)살포 움직임이 포착되면 무자비한 군사적 타격이 시행될 것”이라고 포고했다. 서부전선사령부는 “그 지역의 남한 주민들은 대피하라”고 경고했다. 임진각 지역 남한 주민들의 삐라 살포 반대 시위를 선동하기 위한 것이었고, 남남갈등을 유발하기 위한 심리전이었다.

이 대통령은 북한군의 삐라 살포와 관련한 “무자비한 군사적 타격” 협박에 자신의 말 대로 “백배 천배 보복”하겠다고 맞섰어야 했다. 그렇지만 그는 북의 협박에 압도돼 22일 민간단체의 임진각 삐라 살포를 경찰력까지 동원, 원천 봉쇄했다. 삐라 살포 봉쇄는 북한의 “무자비한 타격”으로 “확전”될 것이 두려워서였다. “확전”을 두려워하지 않고 북의 도발에 “보복”하겠다던 이 대통령의 다짐은 4일만에 작심사일(作心四日)로 끝나고 말았다.

우리 군 정보당국에 의하면 지난 22일 오전 북한군 최전방 부대의 견인포와 자주포의 포구가 열렸고 방사포 탑재차량이 포착됐다고 한다. 우리 군과 대통령에게 겁주기 위한 무력시위이며 쇼일 수도 있었다. 우리 군도 예하 부대에 최고 수준의 대응태세를 하달했다. 김관진 국방장관은 북한이 삐라 살포 보복에 나선다면, “그 원점 지역을 완전히 격멸하겠다”고 맞대응 했다.

“도발하면 반격을 여지없이 강하게 해야 한다”며 “과거에 웬만한 도발은 참았지만” 이젠 그렇지 않다던 이 대통령의 의지가 시험대에 오르게 되었다. 그러나 이 대통령은 북한의 “무자비한 타격” 협박에 굴복하고 말았다. 대한민국 대통령이 일개 북한 서부전선사령부의 삐라 살포를 중지하라는 포고에 순순히 복종하고만 셈이 됐다.

이 대통령은 자신이 나흘 전 북한의 도발에 “확전” 두려움 없이 “보복”하겠다고 다짐한 터였으므로 민간단체의 임진각 삐라 살포를 묵과했어야 옳다. 그리고 북한이 “무자비하게 타격”하면 자신이 공언한 대로 “반격을 여지없이 강하게” 그리고 “백배 천배 보복했어야 했다. 하지만 그는 북의 군사적 타격과 “확전”이 두려워 물러섰다. 북한에 의해 또 만만하게 보일 수밖에 없는 굴종적 자세였으며 북의 도발과 협박의 기를 살려주고 말았다. 이 대통령의 말대로 앞으로 “도발을 부를 요인”을 스스로 제공해 준 것이다.

이 대통령은 2년 전 북한이 연평도를 무차별 포격했을 때도 “확전”되지 않도록 자제를 당부했다. 그러나 그는 지난 18일엔 “확전”이 두려워 보복을 하지 않으면 도발을 부르게 된다고 자괴했으면서도 나흘 만에 “확전”이 두려워 민간단체의 삐라 살포마저 봉쇄해 버렸다. 용기도 배짱도 전략도 없는 조치였다.

이 대통령의 임기는 앞으로 4개월 밖에 남지 않았다. 그는 20대의 철부지 김정은의 버릇을 잘 못 길들여 놓았다. 김정은이 이 대통령을 얕잡아 보고 또 무슨 협박과 도발을 자행할 지 두렵다. 이 대통령은 “확전”되면 안 된다는 생각에 웬만한 도발은 참았는데 “그것이 도발을 부른 요인이 됐다”는 자신의 말을 잊지 말고 되새겨 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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