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의 선택, 쇄신 통해 단일화 주도권 선점?

▲ 민주통합당 문재인 대선후보 <사진=정대웅 기자>

[일요서울ㅣ정찬대 기자]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의 대선 캠프 산하 새정치위원회(새정치위)가 지도부 총사퇴 카드를 꺼내들었다. 문 후보의 정체된 지지율을 끌어올리고 무소속 안철수 후보와의 단일화를 염두에 둔 극약처방을 제시한 것이다.

당장 비주류 좌장격인 김한길 최고위원은 최고위원직을 사퇴하며 지도부 용퇴론을 압박했다. 지도부 사퇴론의 정점에 있는 이해찬 대표와 박지원 원내대표는 사실상 사퇴 거부 의사를 밝혔고, 문 후보는 “내게 맡기고 시간을 좀 달라”며 유보적인 입장을 내비쳤다.

민주통합당은 지도부 사퇴를 놓고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이-박 투톱 체제에 대한 경질이 단일화의 물꼬를 틀 것이라는 의견과 대선을 목전에 두고 있는 상황에서 별 효과가 없다는 의견이 맞서고 있는 것. 특히 지도부 교체가 권력투쟁 양상으로 번질 수 있다는 점에서 인적쇄신에 대한 논란은 더욱 가열되고 있다.

새정치 ‘지도부 총사퇴’ 요구

민주통합당이 대선을 40여일 앞두고 ‘지도부 총사퇴’라는 인적쇄신 공방에 빠져들었다. 문재인 캠프 내 새정치위가 지난달 31일 저녁 전체회의를 열고 이 대표와 박 원내대표 퇴진을 포함한 당의 전면적인 쇄신을 요구하기로 의견을 모은 것으로 알려진 뒤 민주통합당은 격랑에 휩싸인 채 종일 어수선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새정치위의 지도부 총사퇴 요구는 문 후보의 정체된 지지율을 타개함과 동시에 단일화의 촉매재로 사용하겠다는 다목적 카드의 성격이 강하다. 앞서 단행된 친노계 핵심인사 9인 사퇴에 이어 이해찬-박지원 투톱 퇴진에 대한 인적쇄신이 이뤄져야 문 후보가 처한 여러 국면을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 새정치위의 판단이다.

새정치위는 당초 이 대표와 박 원내대표의 퇴진만 요구하는 것을 검토했지만 민주당의 쇄신 부족을 두 사람 책임으로만 돌리긴 어렵다고 판단해 지도부 총사퇴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새정치위 한 관계자는 “당내에서 제기되는 이-박 사퇴론은 권력투쟁 성격도 전혀 없지 않아 보인다”며 “그러나 우리가 지도부 사퇴를 요구하는 것은 권력투쟁이 아니라 진정한 쇄신을 위한 첫 걸음을 떼자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새정치위 멤버인 김민영 공동선대위원장은 지난 1일 라디오인터뷰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위원회가 지도부 총사퇴 요구 내용을 공개할 것이며, 자연스럽게 문 후보 측으로 전달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지도부 총사퇴나 인적쇄신 문제는 민주당이 새롭게 출발한다는 차원에서 고민해봐야 할 문제”라고 설명했다.

새정치위는 지도부 총사퇴 이후 비상대책위 구성 방안에 대해서도 논의했지만 이미 최고위의 전권이 선대위로 이전된 상태여서 당무에 큰 영향을 끼치지 않을 것으로 판단, 대선이 끝날 때까지 별도의 비대위는 꾸리지 않기로 결정했다. 다만, 박 원내대표가 사퇴할 경우 후임 원내대표를 뽑을 것인지, 아니면 선대위에서 적임자를 인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추가 검토를 거치기로 했다.

새정치위는 당초 이날 오후 지도부 총사퇴에 대한 기자회견을 진행할 예정이었으나 이 문제를 둘러싼 당내 갈등이 격화되면서 시기 조정에 들어간 것으로 전해졌다.

김한길 자진사퇴 李-朴은 ‘부정적’

김한길 최고위원은 지난 1일 성명을 통해 “문 후보가 민주당의 쇄신을 거리낌 없이 이끌 수 있도록 현 지도부가 모든 기득권을 내려놓고 용퇴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나부터 내려놓겠다. 정권교체의 밀알이 되겠다”며 사퇴의 뜻을 밝혔다.

그는 전날 열린 당내 비주류 의원 모임 초청토론회에서도 “더 이상 머뭇거려선 안 된다. 대선 승리에 보탬이 되는 일이라면 뭐든지 망설임 없이 행하고 해가 되는 일이라면 뭐든지 버릴 각오가 돼야 한다”며 강한 인적쇄신을 주장한 바 있다.

쇄신파 모임의 좌장격인 이종걸 최고위원도 조만간 사퇴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 최고위원과 친분이 두터운 안민석 의원은 지난 2일 한 라디오인터뷰에서 “쇄신파 의원들이 사퇴할 것을 제안해 놓은 상태”라며 “조만간 사퇴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추미애 최고위원은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민주당과 대선승리를 위해서라면 문 후보와 새정치위의 지도부 총사퇴 결정을 존중한다”고 입장을 전했다. 그는 “모든 기득권을 버리고 오직 국민만을 위해 변화하는 모습을 보일 때 진정 국민은 갈채를 보낼 것”이라며 사퇴의사가 있음을 간접적으로 내비쳤다.

지도부 2선 후퇴 압박에 밀려 ‘자진 하방(下放·지방 현장으로 내려가는 것)’을 선택한 이해찬 대표와 박지원 원내대표는 거부 의사를 분명히 했다. 이 대표는 “지금은 누구를 탓할 상황이 아니다”고 일축한 뒤 “견해의 차이가 있고 시각의 차이가 있지만 우리가 힘을 합쳐야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박 원내대표도 지난 1일 성명을 내고 “문 후보가 결정할 문제”라며 사실상 사퇴를 거부했다. 그는 “대선 승리에 전념할 때이고 내분의 모습을 보일 때가 아니다. 나는 이미 후보의 당선을 위해 내일부터 지방 순회 일정을 마련하고 지원활동에 나설 계획”이라고 말했다.

文, 인적쇄신 칼 빼드나

문 후보는 새정치위가 ‘지도부 총사퇴’ 등 인적쇄신을 촉구한데 대해 “정치혁신이나 당 쇄신이라는 것이 지도부의 퇴진만으로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며 부정적 입장을 내비쳤다.

그는 지난 1일 강원 고성 동해선 남북출입사무소에서 기자들과 만나 “이 대표와 박 원내대표는 사실상 2선으로 퇴진 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현실적으로 고려할 문제도 많기 때문에 나한테 맡겨주고 시간을 좀 줬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문 후보는 현재 지도부 총사퇴에 찬성하는 당내 쇄신파와 이를 거부한 이-박 사이에 샌드위치처럼 껴있는 상황이다. “일단 시간을 좀 달라”고 했지만 쇄신파 의원들의 압박은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당장 쇄신파인 안민석 의원은 지난 2일 한 라디오인터뷰에서 “이 대표와 박 원내대표가 사퇴 결단을 보여주지 않으면 쇄신파가 결연한 행동을 보이는 수밖에 없다”며 “쇄신파 의원들의 행동이 결행으로 이어지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쇄신파의 추가 행동에 대해서는 “상상하는 것보다 높은 수위와 강도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문 후보 측은 인적 쇄신 문제와 관련, 대선과 단일화 정국에서 자칫 당내 분란을 촉발하는 자충수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고민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특히 ‘지도부 총사퇴’ 요구가 외부가 아닌 선대위 내 새정치위에서 거론됐다는 점에서 더욱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정치권 안팎에선 문 후보가 조만간 인적쇄신의 칼을 빼들 것으로 점치고 있다. 김한길 최고위원에 이어 이종걸 최고위원까지 사퇴할 경우 쇄신에 대한 압박이 높아지면서 결국 이를 따를 것이라는 관측이다.

더욱이 쇄신파 의원들이 한 목소리로 이-박 퇴진론을 요구하는 상황에서 문 후보도 이를 마냥 두고 볼 수 없다는 현실론이 작용, 당내 갈등을 조기에 봉합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지도부 총사퇴 카드’를 수용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게 정치권의 공통된 견해이다.

현재 샌드위치 신세가 된 문 후보지만 지도부 총사퇴가 이뤄질 경우 정치쇄신 및 인적쇄신에 대한 물꼬가 터지면서 야권 단일화의 주도권을 선점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특히 안 후보 측에 대한 단일화 압박도 더욱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안 후보는 그간 정치쇄신과 정책홍보를 우선시하며 단일화에 한 발 물러나 있었다.

박 원내대표는 “분명한 것은 최고위원회의 모든 권한은 이미 후보에게 위임돼 있다는 것”이라며 “모든 것은 후보께서 결정할 문제”라고 강조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문 후보의 결단에 따라 언제든 원내대표직을 던질 수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안철수 측 ‘예의주시’

민주통합당의 인적쇄신 논란을 바라보는 안철수 후보 측의 속내는 복잡하다. 민감한 사안인 만큼 입단속을 시키고 있지만 내부적으로는 다양한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안 후보 측은 그간 민주통합당의 정치혁신과 인적쇄신을 요구해 왔다는 점에서 지도부 사퇴론에 대해 환영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자칫 인적쇄신과 맞물려 단일화의 주도권이 문 후보에게 넘어갈 수 있는 점에서 예의주시하는 분위기다.

문 후보의 인적쇄신에 따라 지지율 변동은 물론 단일화에 대한 압박도 거세질 수 있다. 양측의 신경전이 팽팽한 상황에서 주도권의 향배에 적잖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판단에서 안 후보 측은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안철수 캠프의 김성식 공동선대본부장은 지난 1일 서울 공평동 선거캠프에서 민주당 김한길 최고위원의 최고위원직 사퇴와 관련, “국민이 판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민주당 내에서도 우리가 먼저 정치쇄신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며 “이런 점에 대해 함께 잘 살펴봤으면 한다”고 전했다. 주도권 경쟁에서 밀리지 않기 위한 미묘한 신경전이 감지되는 부분이다.

문 후보 측은 지도부 총사퇴 문제와는 별개로 단일화 압박을 지속하고 있다. 문 캠프 측 진성준 대변인은 “단일화 논의에 착수하자는 문 후보의 제안에 대해 안 후보 측은 ‘정책논의가 더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는데, 왜 정치혁신과 정책논의를 위한 우리의 제안은 다 거부했느냐”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이어 “단일화의 방식과 경로를 논의하기에 시간이 부족하다는 게 우리의 판단”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안 후보 측 김성식 본부장은 “각 후보가 나름 고유의 정책과 비전을 갖고 국민 앞에서 소통하는 자체가 정책을 함께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을 단축시키고 단일화의 전제조건도 마련하게 될 것”이라며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

<정찬대 기자> mincho@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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