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임동안 선비들을 떼죽음 시킨 무오(戊午), 갑자사화(甲子士禍)를 일으키고 중종반정으로 쫓겨난 조선왕조의 연산조 설화를 모르는 사람이 별반 없을 것이다. 아무리 역사공부를 안한 사람도 TV사극의 단골메뉴인 인수대비에 얽힌, 또 반정공신 등쌀에 몸서리친 중종왕 이야기쯤은 다 접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폭군의 대명사가 된 연산왕은 주위 충언을 막기 위해 내시들 목에 희한한 표찰을 걸도록 했다. 표찰에 쓰인 글이 참으로 가관이었다. 口是禍之門(구시화지문), 舌是斬身刀(설시참신도)라는 글 뜻은 ‘입은 재앙을 불러들이는 문이요’, ‘혀는 몸을 짜르는 칼이로다.’ 閉口深藏舌(폐구심장설), 安身處處牢(안신처처뢰)는 ‘입을 닫고 혀를 깊이 감추면 가는 곳마다 몸이 편하리라’는 뜻이다.

동서고금을 통해 이만한 왕권을 휘두른 군주가 또 있었겠는가, 말 한마디 잘못한 탓에 산사람은 생으로 도륙 나고 죽은 사람은 무덤 속 관을 꺼내 목을 자르는 부관참시(副棺斬屍)의 극형을 당했다. 말 한마디에 천하 대역죄인으로 전락하고 나면 한 집안 뿐 아니라 삼족이 멸족 될 수 있었다. 겨우 살아남은 후손들은 연좌 당해 사람같이 살지를 못했다.

지금 나는 왕조시대 때의 역사 이야기를 하자는 게 아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정치가 말로 시작해 말로 끝나는 정치가 돼버렸다. 저질 막말 퍼레이드가 줄을 잇고 있다. 야권인사의 집권자에 대한 시정잡배가 낯 뜨거워 할 욕설이 SNS를 휘젓고 민주당 문재인 후보 공동선대위원장이란 사람이 이명박 대통령을 향해 ‘도둑놈’으로 표현한 지경이다.

박근혜 후보를 ‘그년’이라고 칭했다가 ‘그녀는’의 줄임말이라고 변명했던 민주당 이종걸 최고의원은 나중엔 “표현이 약했다”고 속내를 드러냈다. 막말 정치가 저질 코미디 수준이다. 국민정신까지 갉아먹고 있다. 거침없이 막말을 쏟아냈다가 사태가 악화되면 사과 몇 마디로 끝난다. 궁금한 건 반대편 지도자나 당 지도부를 겨냥해 막말을 퍼붓는 게 당 차원의 선거전략인가 싶은 점이다.

민주통합당은 문제의 발언들이 역사와 남북관계, 사회에 얼마만큼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지 인식 자체가 없다. 지난 6월에는 임수경 의원이 탈북자들을 겨냥해 폭언을 서슴지 않았다. 새누리당을 향해 ‘기생충’이라고 표현한 민주당이 정당정치의 기본 개념이나 가졌을지 모르겠다. 이런 정치판의 막말 홍수에 사법부까지 물이 들어 재판과정에 60대 증인이 불명확한 진술을 거듭하자 “늙으면 죽어야 해요”라는 막말을 자연스레 내뱉었다.

얼마 전엔 이혼소송 당사자에게 “20년간 맞고 살았으니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라”고 윽박지른 판사도 있다. 한 판사는 70대 여성이 합의안 수용을 거절하자 “딸이 아픈가 본데 구치소 있다 죽어 나오는 꼴 보고 싶으냐”고 폭언했다가 국가인권위의 지적을 받기도 했다. 상황이 이래도 법정 막말한 판사가 징계 받은 사례는 찾기 어렵다.

대법원은 이명박 대통령을 조롱하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린 서기호 당시 서울북부지법 판사를 재임용 심사에서 탈락 시키는 데는 즉각 반응했다. 언어폭력은 자신의 도덕성과 인격에 대한 자해행위로 되돌아온다. 날로 격화되는 12월 대선 공간에서 정치권 인사들의 무분별한 언어사용은 정치 생명을 끊어놓는 독배일 수 있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