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주부 사이버 ‘쩐의 전쟁’ 풀스토리
최근 사채를 소재로 한 SBS 드라마 ‘쩐의 전쟁’이 돈에 웃고 돈에 우는 서민들의 현실을 사실적으로 그려내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가운데, 지난 18일 한 20대 주부가 사채 빚 때문에 사이버 사기행각을 벌이다 경찰에 검거돼 눈길을 끌고 있다.
평범한 주부였다가 주식으로 재산을 탕진한 뒤 목숨 걸고 사채이자를 갚아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된 A(28)씨가 그 장본인. 사건을 담당한 시흥경찰서에 따르면 A씨는 자신이 진 빚을 갚기 위해 돌잔치 용품을 대여해 주는 인터넷 카페 ‘베이비하우스’를 개설, 불과 2주 만에 128명으로부터 무려 2100여만원의 예약금을 챙긴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A씨는 자신도 두 살배기 아이가 있는 ‘엄마’임에도 불구, 아기 돌잔치를 준비하는 엄마들을 상대로 이 같은 ‘파렴치한’ 범행을 저질렀다는 점에서 충격을 주고 있다.
일확천금을 꿈꾸며 주식에 발을 들였다가 결국 풍비박산이 나 사기극까지 벌이게 된 A씨. 대체 그는 어떤 식으로 사기행각을 벌였기에 단기간에 수천만원의 돈을 거머쥘 수 있었던 것일까.


경찰과 피해자들에 따르면 A씨는 타 사이트보다 훨씬 싼 가격에 돌잔치 이벤트를 해 준다는 컨셉트로 구매자들을 끌어 모은 뒤 돈을 받고 잠적하는 수법으로 사이버 사기극을 벌여왔다. 구매자가 판매자의 통장으로 직접 돈을 입금한 뒤 물품을 받는 온라인 직거래 장터의 특성을 악용, ‘베이비하우스’란 이름의 카페를 개설해 교묘하게 사기행각을 벌여왔던 것.

지난 5월 10일에 개설된 이 카페는 ‘오픈기념 한달 간의 기적 이벤트’라는 슬로건을 내걸어 단 20일 동안 전국에서 500여명이 넘는 회원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
다. 이 중 무려 128명의 회원이 최저 5만~26만원을 고스란히 뜯겼다.

다음은 A씨의 사기수법을 경찰과 피해자의 진술을 토대로 정리한 것이다.


대담하고 용의주도한 범행

첫 아이의 돌잔치를 어떻게 꾸밀까 설렘으로 가득 차 있던 주부 김모(29)씨.

유명 인터넷 포털사이트를 검색하던 김씨는 다른 사이트에 비해 훨씬 저렴하게 관련 상품을 파는 인터넷 카페를 우연히 발견했다.

<‘가족 커플의상+메이크업, 헤어 동시 주문시 할인 = 80,000원(아기드레스, 턱시도 무료 대여)’ ‘최고급 풍선장식(메인+입구+테이블)+돌상 동시 주문시 할인 = 170,000원(답례품 20개 공짜)’ ‘가족커플의상+메이크업, 헤어+돌상+풍선장식 풀세트 = 250,000원 (기절초풍 가격)’, 풀세트 3인 공동구매시 3단 케익 증정 등. 상담시간은 평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구요, 금요일은 오후 3시부터, 주말은 돌잔치 행사관계로 전화 상담이 어렵습니다. 해피콜에 남겨 주시면 연락 드릴게요.>

A씨는 위와 같은 상품 이벤트와 함께 직접 찍은 관련 상품 사진도 같이 올려놓았다.

김씨는 터무니없이 싼 값이 좀 의심스럽긴 했지만 선착순 예약에 폭주하는 주문 글들을 보고는 조바심이 났다. 이에 김씨는 A씨에게 제품에 대한 추가질문 등 메일을 보냈다. A씨는 ‘OO고객님’이란 호칭을 써가며 친절히 답변해 주었고, 김씨를 안심시키기 위해 전화상으로 아기 울음소리를 들려주며 ‘나도 아기엄마’라는 것을 강조했다. 김씨는 이 상냥하고 친근한 여성이 사기꾼일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김씨가 구매를 확정짓자 A씨는 통장계좌번호를 알려주며 입금을 부탁했다. 아기 돌잔치를 코앞에 두고 분주히 움직여야 하는 김씨는 ‘빠른 배송’을 부탁하며 즉
시 돈을 보냈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도 물품은 도착하지 않았다.

애간장이 탄 김씨는 A씨에게 전화를 했고 그때마다 A씨는 ‘조금만 더 기다리라’는 식의 답변만을 해왔다. 그러나 아무리 더 기다려도 물품은 오지 않았고 급기야 A씨와의 전화 연락마저 끊겼다. A씨는 아예 휴대폰을 끊고 잠적해버린 것이었다.

A씨의 사기행각은 이것뿐만이 아니다.

경찰에 따르면 A씨는 자신의 신분이 드러날 것을 우려, 일명 대포폰과 대포통장을 이용하는 등 더욱 대담하고 파렴치한 행위도 서슴지 않았다.

경찰은 “A씨는 거주지 인근에 홀로 사는 할머니(71)에게 ‘교회에서 매월 2만원씩 후원 해 준다’며 접근해 주민등록증과 의료보험증을 몰래 훔쳐 범행에 사용하기도 했다”며 “그러나 정작 잠적 이후에는 범행 시 사용했던 대포폰, 대포통장을 다 버리고, 심지어 옷, 신발, 머리스타일까지 바꿔 위장하고 다녔다”며 A씨의 용의주도함에 혀를 내둘렀다.

이어 경찰은 “끈질긴 IP 역추적과 통신수사 등을 통해 A씨를 지목하고 지문대조 등을 통해 현지에서 검거했다”며 “A씨 자신도 두 살배기 아이를 둔 주부이면서 어떻게 주부들을 상대로 이 같은 사기극을 벌였는지 어이가 없을 따름”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주식투자로 ‘풍비박산’

그렇다면 평범한 주부였던 A씨가 전문사기꾼으로 전락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경찰에 따르면 A씨는 올해 초 주식투자를 했다가 실패하고 사금융에서 사채 1700만원을 끌어다가 다시 주식에 투자했다고 한다. ‘사채를 쓰더라도 주식에 잘 투자해서 불리면 그만’이라는 생각이었던 것. 그러나 이마저도 모두 탕진하게 되자 이를 만회하기 위해 사이버 범행에 눈을 돌리게 됐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경찰은 “A씨는 빚을 내서 신용불량자가 되는 한이 있더라도 자기가 투자한 주식이 대박을 터뜨릴 때까진 버텨보겠다는 요량이었던 것 같다”며 “결국 주식에 웃고 주식에 울게 된 셈”이라고 말했다.

한편 A씨는 경찰조사에서 “주식투자에 실패해 그동안 모아둔 돈은 물론 사채 빚까지 모두 탕진하게 돼 이 같은 범행을 저질렀다”며 고개를 떨궜다.

단 2주 동안 수백 명의 아기엄마들을 상대로 한 간 큰 주부의 파렴치한 사기극이 막을 내리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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