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조폭 극비리 총집결한 현장 잠입취재
지난 4월 14일 오후 5시 부산 서면 롯데호텔 3층에서 부산 지역 최대 폭력조직 칠성파 두목 이강환(65)씨 아들(37)의 결혼식이 열렸다. 이날 하객으로 전국 조직원 500여명이 몰려들어 북새통을 이뤘다. 여기에 만일의 사태를 우려한 경찰이 대규모 경찰병력을 결혼식장에 배치, 식장인지 데모현장인지 분간할 수 없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이같은 상황이 서울 강남 한 복판에서도 발생해 ‘조폭과의 전쟁’을 벌이고 있는 경찰의 노력을 무색케 하고 있다. 지난 19일 저녁 5시 서울 강남에 위치한 르네상스 서울(구 라마다 르네상스 호텔)로비는 수많은 ‘형님과 아우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이들이 모여든 이유는 바로 이날 호텔 3층에서 구달웅씨의 고희연이 있었기 때문이다. 구씨는 신상현 정경식 등과 함께 ‘사보이호텔 사건’의 주인공 가운데 한명이다. 호텔 측에 따르면 이날 구씨의 고희연에 참석한 인원은 약 540여명. 이 정도면 앞서 이씨 아들의 결혼식과 거의 비슷한 규모다. 하지만 이날 행사규모는 부산과 거의 맞먹는 수준의 모임이었지만 호텔 주변에는 순찰차 한 대 나타나지 않았다. 경찰은 이같은 모임이 있었다는 것을 몰랐던 것일까.



지난달 중순경 이날 행사에 대한 정보를 입수하고 사실 확인에 나섰다. 그 결과 다양한 추가 정보들을 얻을 수 있었다. 그 중에서 주목을 끄는 것은 행사의 주체였다. ‘사보이 호텔 사건’이후 몰락한 것으로 알려졌던 신씨와 구씨 등이 행사를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범호남파 두목 오종철과 그의 행동대장 조양은, 노현구 등에 의해 역사의 뒤안길로 내몰렸던 이들이 다시 부활의 날갯짓을 하려는 것일까.

행사의 명칭은 ‘구달웅 고희연’이었다. 이 행사의 참석 예정자들을 파악해본 결과 하나같이 쟁쟁한 조폭계 거물들이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일본 야쿠자 3대 패밀리의 간부도 이 자리에 참석할 예정이라는 점이었다.

3대 패밀리는 이미 한국에서도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야마구치구미, 이나카와가이, 쓰미요시가이 이 세 개 파를 가리킨다.

특히 구씨는 오래전부터 야쿠자와 친분을 다져온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는 사보이 호텔을 기습한 오씨의 증언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기습 당시 명동 사보이호텔 725호에는 신씨, 정씨, 구씨를 비롯해 일본 야쿠자 등 5명 정도가 있었다. 이점을 감안할 때 이날 야쿠자 간부가 참석할 것이라는 정보는 신빙성이 높아 보였다.

이어 최종적으로 확인된 행사 장소는 르네상스 서울 호텔 3층 다이아몬드 볼룸이었다. 이 연회장은 5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공간으로 장소 선정만을 보더라도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었다. 행사 시작 시각은 공식적으로 오후 5시였으나 본격적인 시작은 6시로 계획돼 있었다.

마침내 당일, 행사 하객으로 가장하고 호텔을 찾았다. 예상대로 호텔 입구에는 검정색 고급 승용차들이 줄을 잇고 있었다. 차량에서 검정색 정장차림의 남성들이 내릴 때마다 호텔 입구에 미리 대기하고 있던 ‘동생들’이 허리를 90도로 숙여 깍듯이 인사를 했다.

큰형님의 고희연인 만큼 전국의 조직원들이 몰려들어 우의를 과시하는 듯했다. 하부 조직원들 사이에선 버스를 대절해 타고 왔다는 소리도 들렸다. 이는 이번 행사가 어떤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지 알 수 있게 하는 대목.

이어 호텔 안으로 들어서자 짧은 머리에 건장한 체격의 남성들이 발 디딜 틈도 없이 로비를 가득 매우고 있었다. 이들은 서로 인사를 나누며 환담하고 있었지만 경계심이 가득 찬 이들의 시선은 노상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이날 하객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대부분 대화 시에 목소리를 낮추어 조용히 말했고 타 행사
장과는 달리 웃음을 띤 이들이 거의 없었다는 점이다.

특히 ‘범죄와의 전쟁’ 이후 숨죽이며 지냈던 이른바 ‘원로’들이 한 사람씩 등장할 때는 마치 국가원수가 등장하는 것처럼 로비가 술렁였다. 이들은 칠성파의 이강환, 신상사파의 신상현, 영도파 천달남 등 유명 조직의 보스들이었다. 전설적인 보스들이 나타나자 시끄럽던 로비는 순식간에 잠잠해졌다. 이는 그들이 가진 권
력이 어느 정도인지 잘 드러나는 장면이었다.

수행원을 거느리고 나타난 이들은 안부를 물으며 서로 인사를 건넨 뒤 행사장 한쪽에 자리를 잡고 앉아 환담을 나눴다. 그들이 머무는 주변에는 항상 수행원들이 지키고 있어 접근이 힘들었다. 조직원들에 있어 원로들의 존재는 거의 절대 권력자에 가까운 듯 보였다.

또 엘리베이터를 타고 3층 다이아몬드 볼룸으로 올라가자 수많은 화환들이 벽을 따라 도열해 있었다. 화환을 보낸 이들은 이름만 대면 다 아는 사회 저명인사들이었다. 이는 조직의 세력이 사회 곳곳에 퍼져 있음을 잘 드러내는 대목이다.

행사는 비교적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치러졌다. 행사 중에 구씨를 비롯한 ‘원로들’은 한 가족임을 강조했다. 자리를 차지하지 못한 하부 조직원들은 바깥을 서성이거나 삼삼오오 커피숍이나 로비에서 ‘형님’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초대 손님 가운데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사진을 찍는 이들은 거의 없었다. 카메라를 든 사람도 ‘큰형님’들 근처에서 그들의 사진을 찍는 일은 없었다.
행사에 앞서 입수한 야쿠자 계보도에 드러난 인사가 행사에 참석했는지 여부를 확인했지만 찾아 볼 수 없었다. 이에 조직원으로 보이는 한 남성에게 접근해 대화를 시도해보았다. 하지만 그 역시 야쿠자의 참석여부는 정확히 알지 못하는 듯했다.

추가로 확인하지 못한 방명록이 있는지 안내데스크를 살펴보았지만 아쉽게도 추가 방명록을 찾아내지는 못했다.

그러나 눈에 띄는 것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은 주차권이었다. 일반적으로 행사하객들을 위해 호텔측이 제공하는 주차권은 3시간에서 5시간까지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이번 행사에 발행된 주차권은 무려 10시간 짜리였다. 행사 시간은 3시간에 불과함에도 왜 주최측은 주차권을 10시간 짜리로 준비한 것일까.

호텔측에 문의해 보니 일반적으로 5시간 짜리 주차권이 지급되지만 행사 주최측에서 요구할 경우 드물게 10시간 짜리 주차권을 지급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특별한 일이 아닌 이상 5시간 짜리 주차권으로 지급된다고 호텔측은 설명했다.

이와 함께 조폭소식에 정통한 한 소식통이 전하는 바에 따르면 사실 구씨는 올해 68세로 아직 고희연을 치를 나이가 아니다. 하지만 특별한 사유로 인해 고희연을 앞당기게 됐다는 것이다.

이 소식통은 “들리는 소문에 따르면 이번 고희연은 일종의 권력이양식에 가깝다”며 “그동안 명동파를 재건하고 이끌어온 신상현씨가 그의 오른팔인 구씨에게 전권을 넘겨주는 이양식이 이 고희연을 빌미로 치러지는 것 같다”고 전했다.

실제로 원로들이 조직원들 간의 결속을 다지기 위해 자주 이용하는 방법은 결혼, 회갑, 칠순 등 다양한 ‘이벤트’ 마련이다. 이렇게 한자리에 모인 각 지역의 조직원들은 친목을 도모하는가하면 이권을 놓고 얽힌 문제를 원로들의 중재로 풀기도 한다. 이렇듯 모임의 가장 큰 목적은 세력의 규합에 있는 것이다.

또 이 소식통은 “명동의 신상사는 그동안 완전히 힘을 잃은 것으로 알려졌으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며 “그는 일선에서 물러난 듯 보이지만 사실 조직을 배후에서 이끌고 있었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밖에 고희연이 마무리되자 하객들은 곧바로 호텔을 빠져나가지 않고 한동안 호텔 로비와 행사장 주변 등에 머물며 계속 환담을 나눴다. 호텔 문을 나서는 것도 서열순인 듯 보였다. 지방에서 올라온 보스들이 먼저 빠져나가자 뒤이어 간부들로 보이는 이들이 수행원들과 함께 문을 나섰다.


#국내 조폭과 연결된 야쿠자 3대 패밀리는 무엇?

일본 야쿠자가 국내에 진출해 구체적으로 어떤 활동을 벌이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밝혀진 바가 없다. 다만 폭력, 금품갈취 등 비교적 가벼운 범죄에 연루된 사례가 간간이 있었을 뿐이다.

하지만 조폭동향에 정통한 검·경 관계자들은 야쿠자가 국내 조폭들과 연계해 귀금속, 마약 밀매뿐만 아니라 국내 수산업, 무역업, 엔터테인먼트 사업 등의 이권에도 깊게 관여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현재 일본경시청의 발표 자료에 의하면 야쿠자의 조직원 숫자는 약 15만에서 20만명 정도로 추산되고 있다. 이 수치는 행동대원 이상의 조직원들을 추산한 것이고 실질적인 업무를 담당하는 하부 조직원들을 포함하면 100만명 정도가 될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일본에서 활동하고 있는 3대 야쿠자조직에는 야마구치구미(山口組), 스미요시가이(住吉會), 이나가와가이(稻川會)가 있다. 이 조직은 현재 국내 전국구 조직들과 연계해 국내 각종 사업 이권에 개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소식통에 따르면 부산지역의 조폭들이 야쿠자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데, 이는 칠성파 보스 이씨 아들의 결혼식에 야쿠자들도 하객으로 참석했다는 점에서 여실히 드러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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