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바뀐 安, 단일화 논의 역제안

▲ 지난 6일 용산구 백범기념관에서 단일화 관련 회동을 한 민주통합당 문재인 대선 후보와 무소속 안철수 후보가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정대웅 기자 photo@ilyoseoul.co.kr
[일요서울ㅣ박형남 기자] 무소속 안철수 후보가 단일화를 전격 제안한 것을 두고 뒷말이 무성하다. 10일 정책발표 후 단일화 가능성을 열어놨던 안 후보는 당초 계획보다 단일화 카드를 빨리 꺼내들었다.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는 즉각 화답했다. 문-안 회동 때도 상당한 진통이 따를 것이라는 일반의 예상을 깨고 70분 만에 합의문이 도출됐다. 그 내용 또한 파격적이다. 단일화 시점을 못 박았던 것이다. 안 후보가 단일화에 대한 불안감과 누적된 피로감을 해소하고, 호남 지지율을 끌어올리기 위한 것이란 해석도 적지 않았지만, 캠프 일각에선 안 후보가 단일화 카드를 꺼낸 배경과 관련,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했다’는 억측이 나돌고 있다.

“보이지 않는 손이 움직이는 것 같다.”
무소속 안철수 캠프 측 한 관계자가 던진 일성이다. 지난 5일 [일요서울]과 만난 이 관계자는 “시민세력과 정치인들이 융합하다 보니 전략과 대응면에서 서로 다르다”며 “일례로 투표시간 연장과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대선후보 중도사퇴 시 국고보조금 반납’ 법안을 이와 연계시키자는 새누리당 이정현 공보단장의 발언에 대응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그는 “정치인 그룹들은 적의 허점을 집요하게 파고들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비정치인 그룹에서는 대응하지 말아야 한다는 등의 얘기가 나오고 있다”고 부연했다.

보이지 않은 손 설왕설래…교수 그룹? 변호사 그룹?

‘보이지 않는 손’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안 캠프 관계자는 “의사소통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수평적 회의를 추구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회의를 주도하는 사람들은 몇 명에 불과하다”며 “이 과정에서 캠프 측에서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안 후보가 다른 워딩이 때로 나오다보니 보이지 않는 손이 움직이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고 답했다.

안 캠프 내뿐 아니라 정치권 안팎에서는 보이지 않는 손의 실체에 대한 억측이 제각각이다. 안 캠프 관계자들은 안 후보가 스스로 모든 것을 결정하는 만큼 보이지 않은 손의 실체는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에 반해 또 다른 진영에서는 ‘숨은 손’으로 변호사 그룹이나 교수출신들을 지목한다. 종교-정치인 그룹의 경우 정치적 판단을 하는 반면 김호기 연세대 교수나 한상진 서울대 교수 등 학자집단이 안 후보의 ‘멘토’ 역할에 충실하고 있다는 것이 주된 골자다. 설로만 있을 뿐 ‘보이지 않는 손’에 대한 실체가 드러나지 않고 있은 셈이다.

이 가운데 취재 과정에서 보이지 않는 손에 대한 실체를 파악할 수 있었다. 안 캠프 내부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지난 9일 [일요서울]과 전화통화에서 “안 캠프 내에선 1진이 변호사 그룹, 2진이 시민단체, 3진이 선대위원장으로 분류된 것으로 보면 된다”면서도 “캠프 내에서는 변호사 그룹이 실세지만 외곽조직에선 그렇지 않다. 영남지역 일간지 A회장과 박경철 안동신세계연합클리닉 원장이 안 후보의 실질적인 보이지 않는 손에 속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들은 서울 서초동 일대에서 정기적으로 모임을 가지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귀띔했다.

박 원장 등은 2009년부터 전국을 돌며 안 후보와 함께 ‘청춘 콘서트’를 진행한 인물로 안 후보의 의중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인사다. A씨는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가운데 안 후보를 측면에서 지원해주는 인물로 알려지고 있다. 

안철수 단일화 역제안, 서초동 정기모임 작품?

정치권 안팎에서는 안 후보가 단일화 논의를 역제안한 배경에 이들이 보이지 않는 손으로 작용했을 것이란 의혹이 끊이질 않고 있다. 사실 안 후보는 지난 10일 정책 발표 이후 단일화 논의를 진행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단일화는 캠프 내에서 금기시된 단어였을 정도다. 오로지 정책행보에 중점을 두고 단일화를 추후 논의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그러나 안 후보는 단일화 가능성에 대해 뜻밖의 뉘앙스를 풍겼다. 안 후보는 지난 4일 저녁 광주의 한 호프집에서 “대선 후보 등록일인 25일 이전에 후보 단일화를 기대해도 되느냐”는 한 시민의 질문에 “내일 (전남대) 강연 기회가 있으니 강연을 들으러 오시라”고 답했다. 금태섭 상황실장도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 “전남대 강연을 한 번 들어보라”고 말했다.

바로 다음날 안 후보는 단일화 카드를 꺼내들었다. 안 후보는 지난 5일 광주 전남대 초청강연에서 “우선 문 후보와 제가 먼저 만나서 서로의 가치와 철학을 공유하고 정치 혁신에 대해 합의하면 좋겠다. 각자의 공약도 완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단일화 방식과 형식만 따지면 진정성이 없을 뿐 아니라 단일화의 감동도 사라진다. 1 더하기 1이 2가 되기도 어렵다”며 단일화 카드를 먼저 꺼내들었다. 더욱이 문-안 회동 이후 후보등록일 전까지 단일화를 하는 것으로 시기까지 못 박았다.

일각에서는 안 후보가 단일화 카드를 꺼내기로 결심한 것은 영남지역 일간지 A회장과 박경철 원장의 영향력이 컸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이들이 보이지 않은 손으로 움직이면서 단일화 카드를 꺼내든 이유가 안 후보에 대한 피로감과 호남 지지율을 끌어올리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호남의 심장부인 광주에서 안 후보가 야권 후보 단일화를 약속하며 회동을 제안한 것은 야권 후보 지지층의 단일화에 대한 누적된 피로감을 해소하고, 호남 지역 지지율을 끌어올리기 위한 포석이라는 것이다.

70분만에 단일화 합의문 작성… 캠프 관계자 “뭔가 냄새 난다” 

단일화 카드를 꺼내는 과정에 영남지역 일간지 A회장과 박 원장이 영향을 미쳤다면, 단일화 물밑 협상에는 또 다른 ‘보이지 않는 손’이 존재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민주통합당 한 관계자는 지난 7일 [일요서울]과 만난 자리에서 “70분 만에 7가지 문항과 단일화 시점을 못 박은 것을 보면 뭔가 냄새가 난다.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돼 ‘보이지 않는 손’이 움직이고 있다는 정황이 느껴진다”면서 “다만, 그 실체는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이은영 여민리서치 대표도 지난 7일 [일요서울]과 전화통화에서 “너무나도 딱딱 맞아 떨어진다. 의구심이 생긴다”고 설명했다.

사실 안 캠프 관계자들과 문 캠프 관계자들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민주통합당을 탈당해 안 캠프로 합류하거나 문 캠프에 잔류하는 등 친분이 두터운 인사들이 많다. 이 때문에 이러한 양 캠프의 밝은 인사가 보이지 않는 손으로 작용했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실제 정치권 안팎에서는 문 캠프와 안 캠프가 모든 것을 공유하고 있다는 말을 쉽게 들을 수 있다. 또 손학규계 기존 멤버들은 안 캠프로 가 있고, 손학규 전 대표가 새누리당에서 민주통합당으로 당을 바꾼 뒤 함께 옮긴 세력들은 문 캠프에 발을 들여놓은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지난 3일 안 캠프 측 박선숙 선대위원장과 문 캠프 측 신계륜 특보단장-이목희 기획본부장이 회동을 했다는 얘기가 나돌고 있는 것도 그 맥을 같이한다. 회동 내용은 단일화에 대한 세부 의견을 논의했다는 것. 더 나아가 문-안 회동에서 만든 합의문을 일부 서로 조율했다는 얘기까지 흘러나오고 있다.

사실 확인 차원에서 기자는 신 단장과 이 본부장에게 확인을 요청했다. 하지만 이들은 극구 부인하거나 애매모호한 답변으로 일관했다. 이 본부장은 지난 9일 [일요서울]과 전화통화에서 “공식적이든 비공적이든 단일화 논의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접촉을 해보려고 해도 안 캠프 측에서 이를 거부하는 상황이었다”며 “어느 누가 낭설을 흘리는지 모르겠다”고 만남자체를 부인했다. 신 단장은 “연락도 하지 않고 만나지도 않았다”고 답했다.

일단 이들이 모두 부인함으로써 회동은 일단 ‘설’로만 남았지만 캠프 핵심 관계자들 뿐 아니라 정치권 안팎에서는 ‘짜고 치는 고스톱 같다’는 느낌을 쉽게 지울 수가 없다. 안 후보와 문 후보는 단일화를 두고 감정싸움이 극에 달했음에도 불구하고 회동한 지 70분 만에 7개 문항에 대한 합의문을 도출했다. 여기에다 단일화 시점까지 못 박았기 때문에 이러한 의혹은 더욱 증폭되고 있다.

어쨌든 안 후보의 단일화 역제안과 문재인-안철수 회동에서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되는 모습을 보면 ‘보이지 않은 손’이 작용했다는 의혹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문 캠프 핵심 관계자는 지난 9일 [일요서울]과 전화통화에서 “개인적인 친분이 있으면 얼마든지 의견 교환을 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발언한 것도 보이지 않은 손이 작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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