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적! 필로폰‘차치기’ 일당 검거

대량의 필로폰을 밀거래해온 마약사범들이 경찰에 무더기로 적발됐다.
부산지방경찰청 마약수사대에 따르면 이들은 경찰 단속을 피하기 위해 달리는 승용차 창문을 통해 마약과 돈을 맞바꾸는 속칭 ‘차치기’ 수법을 사용했다.
2, 3차선에서 각각 승용차로 주행하며 접선, 마약을 거래해왔던 것. 경찰 조사 결과 검거된 마약 밀매책 대부분은 폭력조직의 조직원으로, 조직의 활동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이 같은 일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이 밀거래한 마약은 대략 100g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수천 명이 동시 투약할 수 있는 분량이다.
특히 공급책으로부터 마약을 공급받고 투약한 이들 중에는 임산부와 택시 운전사 등 일반인도 있는 것으로 알려져 더욱 충격을 주고 있다. 한 편의 첩보영화를 방불케 하는 이들의 마약밀매 수법을 들여다봤다.


지난 3월 초. 부산지방경찰청 마약수사대에 한 건의 첩보가 입수됐다. 부산의 한 신흥 폭력조직이 새로운 수법으로 마약을 밀거래하고 있다는
것.
보통 보따리상을 통해 마약을 전달하는 고전 수법에서 벗어나 차량으로 이동하며 접선, 마약을 유통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마약수사대에는 즉각 ‘비상령’이 떨어졌고, 경찰은 마약 밀매조직을 소탕하기 위한 ’작전‘ 수립에 돌입했다. 백색가루와의 한 판 전쟁이 선포되는 순간이었다.

백색 가루와의 전쟁

경찰은 부산 지역 신흥 폭력조직에 대한 파악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평소 ‘관리대상자’에 올라있던 추모(29)씨를 경찰은 주목했다.
추씨는 지난 2004년 9월경 부산 연산동 모 나이트클럽의 개업일에 분뇨 투척 소동을 일으켰던 옛 ‘연산로터리파’ 행동대원. 새로운 조직을 결성
하고, 세력확장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한 경찰은 추씨를 용의선상에 올렸다.

경찰의 직감은 정확하게 맞아 떨어졌다. 수일에 걸친 미행 끝에 마약 밀거래 혐의가 포착된 것. 하지만 섣불리 움직일 순 없었다. 추씨 한 명만 검거해서 끝날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보통 마약 밀매는 수많은 점 조직으로 이뤄져 움직이기 때문에 경찰의 레이더에 포착된 몇 몇 판매책은 몸통이 아니라 가지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 자칫하면 ‘피라미’를 잡는데 그칠 수도 있다는 의미. ‘대어(大魚)’를 낚으려면 치밀한 계획은 물론, 끈기와 인내심이 필요했다.

추씨에 대한 경찰의 미행은 일주일 가까이 진행됐다. 이 과정에서 일반 투약자에게 마약을 전달하는 현장이 여러 건 목격됐다.

중간판매책과의 접선은 미행이 시작된 지 보름이 지나서야 이뤄졌다.

지난 3월 30일 오후 5시, 추씨는 급하게 승용차에 오른 뒤 어디론가 이동하기 시작했고, 경찰은 그 뒤를 바짝 따라붙었다. 여러 번 차선을 바꿔가며 지그재그 운전을 하던 추씨는 부산 사하구 장림동 무지개공단 입구 도로에 들어서자 서행을 하기 시작했다. 접선 움직임을 직감한 경찰의 눈빛엔 긴장감이 흘렀다.

6차선 도로에서 2차선으로 주행하고 있던 추씨의 승용차 옆으로 한 대의 차량이 접근했다. 두 대의 차량은 나란히 달리기 시작했다.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 속도를 줄인 두 대의 차량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창문을 열었다. 그리고 이어진 기이한 풍경. 2개의 가방이 서로의 창문을 향해 날아간 것이다. 상황은 눈 깜짝할 사이에 종료됐다.

추씨의 차안에서 던져진 것은 묵직한 스포츠 가방, 또 다른 차량에서 추씨의 차량으로 넘겨진 것은 검은색 007가방이었다. 달리는 차안에서 마약과 돈 가방이 바꿔치기 된 사실을 확인한 경찰은 즉각 인근 경찰서에 도움을 요청했다. 이들의 예상 도주로는 완전히 차단됐고, 이 사실을 파악한 마약수사대 소속 경찰은 곧바로 추격전에 돌입했다.

조직자금 확보 목적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벌어진 지 약 1시간 뒤. 궁지에 몰린 마약 밀매 용의자들은 결국 두 손을 들고 말았다. ‘차치기 마약 밀매범 검거 작전’이 벌어진 지 한 달만의 쾌거였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이날 달리는 차창을 통해 필로폰 15g을 300만원에 거래했다. 경찰은 이외에도 이들 일당에게서 시가 1억2,000만원 상당의 필로폰 전자저울, 주사기, 흉기 등을 압수했다.

사건을 담당했던 마약수사대 심형준 경사에 따르면 이들에게서 압수한 필로폰 35g은 1,200명이 동시에 투약할 수 있는 엄청난 양이다. ‘굵직한’ 마약 공급책이 없는 한 이처럼 대량의 필로폰을 소지하고 있기란 불가능한 일. 경찰은 추씨 등 검거된 용의자들을 상대로 끈질지게 추궁한 끝에 결국 마약 공급책의 존재를 밝혀냈다.

심형준 경사는 “용의자들을 추궁한 끝에 마약 공급책이 따로 있는 것으로 밝혀냈다”면서 “마약 공급책은 지난 3월 말 마약 밀거래 혐의로 구속 수감된 배모(40)씨인 것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심 경사는 이어 “배씨는 지난 3월14일 오후 8시 경, 비슷한 방법으로 필로폰을 공급하다 적발, 이미 구속 수감된 상태”라며 “추씨와 접선했던 마약 공급책 박씨는 이미 구속돼 수감 중인 배씨로부터 필로폰 100g을 구입한 뒤 여러 단계의 거래 과정을 거쳐 시중에 유통시킨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은 필로폰 판매 수익금을 조직 재건 및 세력확장 자금으로 사용하려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고 덧붙였다.

이들이 경찰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사용한 수법은 일명 ‘차치기‘. 운행 중인 차량과 차량 간에 마약과 돈을 주고받는 형식의 밀거래 수법이다. 행인을 가장한 구매자에게 차량에서 마약을 건네거나, 달리는 차안에 함께 탑승해 거래를 하는 식으로 이뤄진다. 마약 판매책이 항상 차량에 탑승하고 있다보니 경찰 추적을 피해 도주하는데 편리하다는 게 경찰들의 전언이다.


임산부 투약자도

부산경찰청 마약수사대는 4일 달리는 승용차로 접선해 마약을 사고 판 혐의(마약류관리법 위반)로 배모(40)씨 등 12명을 구속했다. 경찰은 또 투약자 11명을 적발해 정모(31·여)씨 등 7명을 구속하고 4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이 과정에서 달아난 마약상 박모(35)씨를 수배하고 또 다른 마약 공급선에 대해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한편 경찰 조사 결과 단순 투약자 가운데는 택시운전사를 비롯해 임신 10주 안팎의 임신부도 2명이나 포함돼 있어 충격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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