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육상단 선수 자살 미스터리
최근 여자 육상 중·장거리 유망 선수의 자살 동기를 둘러싸고 의문이 뒤따르고 있다. 의문의 장본인은 올해 10년 째 육상 선수로 활동하며, 한국여자육상의 차세대 주자로 기대를 모았던 A(19)양. 그는 올해 1월 1일 삼성전자육상단에 입단, 지난 3월 25일 오후 경기도 화성에 있는 팀 숙소에서 스스로 목을 매 숨졌다.
사건을 담당한 화성경찰서에 따르면, 자살 동기 및 이유를 설명해 줄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경찰은 “방문이 잠겨있고 외상이 없는 점 등으로 미뤄 보아, 신변문제를 비관한 자살로 보인다”고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A양의 죽음에는 석연치 않은 구석이 많다. 자살을 결심하면서 유서 한 장 남기지 않았다는 점도 그렇지만, 그가 최근 이성교제 문제로 심각하게 고민해 왔다는 측근들의 전언이 크게 설득력을 얻고 있기 때문이다.
대체 A양이 이런 극단적인 방법을 택하게 된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망자는 말이 없는 가운데 A양의 자살 원인을 둘러싼 의혹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최근 빙상의 김연아(17)와 수영의 박태환(18)이 국민적 관심을 모으면서 한국 스포츠계 전체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는 가운데, 육상 유망주이자 기대주인 A양이 자살한 것으로 알려져 충격을 주고 있다. 이에 육상계는 지난달 27일 세계육상선수권대회(2011년)가 대구에서 개최되는 영광을 안게 됐음에도 불구, 다소 침통한 분위기다.

A양은 고교 시절부터 ‘에이스’로 꼽히며, 향후 대성이 기대되는 선수였다. 실제로 A양은 여고 1년 때 전국체육대회 5,000m에서 우승한 데 이어, 지난해 전국체육대회 5,000m에서도 연거푸 금메달을 따면서 크게 주목을 받아 삼성전자에 스카웃된 것으로 알려졌다.

소속팀에 입단한지 3개월 째.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조만간 있을 대회(4월말~5월초 예정)를 위해 한창 훈련에 몰입해야 할 시기에 A양은 스스
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삼성전자육상단 오인환 장거리팀 감독은 “앞으로 여자 마라톤 국가대표 선수감으로 기대가 컸던 선수였는데 갑작스레 유명을 달리 해 가슴이 아프다”면서 “A양은 평소 명랑·쾌활한 성격이라 자살을 하리라곤 전혀 생각도 못했고, 얼마 전에 있었던 고지대 훈련도 무사히 잘 마쳐 바뀐 환경에 적응을 잘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러나 소속팀의 또 다른 관계자는 “A양이 밝은 성격이긴 했지만, 바뀐 환경에 쉽게 적응한 것은 아니었다”며 “작년 말부터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스포츠계의 잇단 평가에 슬럼프에 빠진 것 같았고, 이외 개인적인 문제도 많았던 걸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이에 근거해 유족과 수사관계자들은 A양이 자신의 신변문제를 비관해 자살한 것으로 보고 있다.


‘신변비관’ 우발적 자살 가능성

하지만 A양의 자살에는 미심쩍은 부분이 많다. 우선 그는 유서를 남기지 않았다.

“사망 현장에는 자살 전후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는 종이 한 장 없었다”는 게 수사를 담당한 경찰관계자의 설명.

이와 관련 A양을 6년 간 지도하면서 남다른 사제지간으로 지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J감독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일기나 편지 등 메모를 남기는 것을 싫어하고, 어떤 것에 한번 몰두하면 끝장을 보는 A양의 성격을 고려할 때, 만약 자살을 생각했다면 유서 같은 것은 남기지 않았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애초 경찰은 A양이 자살 직전 누군가와 전화를 한 이후 갑자기 자살을 결심했을 것으로 보고 전화기록 등을 확인했다.

경찰관계자는 “확인결과, 그가 사망한 당일 통화한 사람은 고교 후배 및 몇몇의 측근 등인 것으로 밝혀졌다”며 “특히 고교 후배에게 다소 무거운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확인됐는데, 당사자가 현재 전지훈련 등으로 연락이 닿지 않아 아직 소환조사는 하지 못한 상태다. 조만간 이들을 불러 정확한 경위를 조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A양의 자살 전 행적도 의문을 남기고 있다. 그는 죽기 열흘 전, J감독에게 “잘 지내고 있다. 훈련 끝나고 바로 찾아 뵙겠다”는 내용의 안부전화를 하며 미팅 약속을 했다. 또 사망 당일 고교 후배 및 측근들과 전화통화를 하며, 조만간 만나자는 계획도 잡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정황으로 미루어 유족들과 수사관계자들은 A양의 죽음이 사전에 계획된 것은 아니라고 보고 있다. “자신의 처지를 비관해 우발적으로 자살한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가 자살한 시점은 최근 김연아, 박태환 선수의 잇단 쾌거로 피겨 스케이팅과 수영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아져, 육상선수 입장에서 상대적으로 심적 부담이 큰 상황이기도 했다.


‘죽고 싶다’ 하소연

그러나 그가 오래전부터 자살을 계획했을지도 모른다는 정황도 드러나고 있어 관심을 모은다. A양이 최근 이성교제 문제로 심각하게 고민해 왔다는 측근들의 진술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 측근은 “A양은 최근 남자 친구의 이별 통보를 받고 매우 힘들어했다”며 “이에 ‘죽고 싶다’는 말을 자주 했으며, 술도 자주 마시는 편이었다”고 귀띔했다.

J감독 역시 “고교시절 삼각관계로 맘고생을 한 적이 있는데, 이때에도 ‘죽고 싶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며 “당시 그는 한 달 동안 훈련은 물론 운동도 안하고 우울증에 시달리기도 했다”고 말했다.

A양이 자살에 사용한 나일론 끈의 경위도 ‘계획된 자살’을 뒷받침하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A양은 자신이 묵고 있는 팀 숙소(1층)에 있는 침대 다리에 나일론 끈을 묶고, 다른 한 쪽 끈으로 목을 감고 창문으로 뛰어내려 자살했다. 그러나 이 끈은 평소 숙소에 없던 것이었다.

경찰은 “이 끈을 자살을 위해 구입한 것인지 여부는 알 수 없으나, 숙소에서는 이전에 이런 끈을 사용한 흔적을 발견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의 자살 장소도 의문을 남기고 있다. 사건 당일 소속팀 여자 장거리팀은 휴가를 받아 대부분의 선수가 숙소를 비운 상태였다. A양 역시 휴가를
받고 숙소를 비웠다가, 사건 당일 숙소에 들어와 방문을 잠그고 이 같은 일을 벌인 것이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휴가를 받고 외부에 있는 상태였다면, 여관이나 모텔 등 다른 곳에서 자살할 수도 있었다”며 “휴가기간 중 굳이 숙소에 들어와서 목숨을 끊었다는 것은 무언가를 말하려는 의도 아니었겠느냐”는 다소 황당한 의혹을 제기하고 있기도 하다.

이에 대해 삼성전자 육상단 관계자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펄쩍 뛰며 “물론 도의적인 책임은 느끼지만, A양이 숙소에 들어와 자살했다는 이유만으로 소속팀에서 무슨 문제가 있었던 것처럼 몰아붙이는 것은 억측”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A양은 평소 동료들과의 관계도 원만했고, 입단 후 아직 어떤 경기에도 출전한 적이 없어 슬럼프를 겪을 일도 없었다”고 덧붙였다.

결국 자살은 개인적인 원인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겠느냐는 게 이 관계자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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