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재륜 전고검장이 털어놓은 ‘조폭과 연예계’
‘권상우 협박 사건’으로 조폭과 연예계의 커넥션이 다시 한번 수면위로 부상한 가운데 그동안 침묵을 지키고 있던 심재륜 전고검장이 김태촌에 대해 말문을 열었다. 심 전고검장은 90년대 초 범죄와의 전쟁 당시 김태촌 구속, 한보비리, 항명파문 등으로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검찰특수부의 전설적인 인물.
특히 조승식, 함승희 검사와 함께 대한민국 조직폭력배 3대 패밀리를 소탕한 그는 국내 조직폭력배에 대해 누구보다 정확히 꿰뚫고 있다. 현재 검찰에서 참고하고 있는 조폭계보도가 바로 그의 작품이라는 점이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다.
그는 이번 김태촌 사건에 대해 이미 예견됐던 일이 아니냐는 반문과 함께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자신은 김태촌과 같은 조폭들의 말을 절대 믿지 않는다고 말한다. 과거 조폭들을 닥치는 대로 수사하고 체포하는 과정에서 그들의 ‘비열한 거리’를 직접 목격했기 때문이다.
그는 조폭들에 대해 정치, 경제, 검찰, 경찰 등 돈과 권력이 있는 모든 조직이 조폭과 매우 복잡하게 얽혀있고, 이들의 커넥션을 파헤치다 보면 그 비리가 끝도 없다고 한탄하고 있다.


심재륜 전고검장은 최근 세간을 떠들썩하게 하고 있는 ‘권상우 협박 사건’에 대해 “드러난 바가 없을 뿐이지 실상 연예계에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다”며 별로 놀랄 것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번 사건은 김태촌이라는 조폭계 거물과 권상우라는 스타가 얽혀 있기 때문에 사건이 증폭되고 있는 것일 뿐, 실제로 이런 일 때문에 괴로움을 하소연하는 연예인은 수도 없이 많다는 것이다.

심 전고검장은 김씨에 대해 “김태촌은 매우 위선적인 인물이다. 그는 회개한 듯 사람들에게 말하고 있지만 나는 그 말을 믿기 힘들다”며 “지금의 행태를 봐도 그렇다. 언론플레이를 하고 있다는 것이 확연히 드러나고 있지 않은가”하고 반문했다.

이어 그는 “상식적으로 과거를 모두 버린 사람이라면서 ‘나 김태촌인데’하고 권상우에게 직접 전화했다는 건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며 “일반인으로 돌아갔다는 사람이 자기 유명세를 이용해 연예인에게 전화하는 것은 앞뒤가 안맞는 행위”라고 말했다.

또 그는 김씨가 다른 사람을 통하지 않고 권씨에게 직접 전화를 건데 대해 “일부에서는 김태촌이 권상우에게 직접 전화한 것에 대해 보스답지 못하다며 세가 다한 것 아니냐고 말하지만 내 견해는 다르다”며 “김태촌이나 조양은 같은 사람들은 원래 행동파기 때문에 작은 일이라도 자기가 직접 나서는 일이 많다”고 말했다.


조폭과 연예계의 커넥션
심 전고검장에 따르면 행동파들은 그렇게 나섬으로써 자신의 세력을 확인함과 동시에 그것을 즐긴다는 것이다.

또 심 전고검장은 조폭과 연예계의 커넥션에 대해서도 입을 열었다.

그는 “지금 연예인들 가운데 조폭의 압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라며 “연예계에서 창출되는 수입 가운데
상당부분이 조폭들의 주머니로 들어간다”고 말했다.

사실 연예계와 조폭계는 오래전부터 공생관계를 유지해 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것을 드러내는 가장 대표적인 것이 자유당 시절 임화수의 연예인 폭행사건이다.

임화수는 자유당 말기 한국 영화계의 ‘대부’로 군림하면서 전국 극장 문화단체협회 부회장이라는 감투를 쓰고 연예계를 장악했다. 한국영화제작가협회 부회장, 반공예술인단 단장, 한국연예주식회사 사장, 평화극장 사장, 무대예술원 부원장, 전국극장연합회 부회장 등 그의 연예관련 직함은 하나 둘이 아니었다.

연예계가 언제부터 조폭들에게 ‘접수’됐는지 정확하게 알려진 바는 없으나 공론화된 것은 임화수가 처음이라고 알려져 있다. 말하자면 연예계는 이때부터 조폭들의 손에 의해 움직여졌다 해도 무방한 것이다.

이에 심 전고검장은 “연예계가 아무리 변했다고 해도 태생부터 그러했기 때문에 조폭과 연예인들의 커넥션은 쉽게 바뀔 수가 없는 문제”라며 “기획사 사장도 조폭이고 매니저도 조폭이고 방송관계자도 조폭의 손에 놀아나고 있는 판에 그들의 손을 벗어나 연예인 생활을 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이른바 ‘밤무대’의 경우 조폭들이 운영하는 업소에서 연예인들을 부르면 지목된 연예인들은 이를 거부하기 힘들다. 이를 거부할 경우 방송 출연은 물론이고 공연 등 각종 매니지먼트에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특히 가수들의 경우 인기 하락 등으로 방송출연이나 음반제작이 쉽지 않게 되면 밤무대를 통해 수입을 얻는데, 과거 비협조적이었던 가수들은 업소에서 아예 불러주지 않는다. 때문에 미래를 위해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불려 나갈 수밖에 없다.

또 공연도 마찬가지다. 조폭들이 공연 기획에 대한 각종 이권에도 개입하고 있어 밉보일 경우 공연하는 것도 쉽지 않다.

강남에 위치한 한 매니지먼트사의 관계자는 “수개월 전 모 가수 공연을 준비하고 있을 때, 조폭들이 개입된 적이 있었다”며 “이때 수입분배 문제로 마찰이 생겼는데, 조폭들이 음향설비업체를 협박해 공연 당일 음향설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공연이 지연되는 등 곤욕을 치른 적이 있다”고 전했다.

이때 가수측이 조폭들의 공연기획사에 돈을 더 주기로 하고 겨우 공연을 끝낼 수 있었다고 이 관계자는 설명했다.


영화 속의 이야기가 현실로
이와 함께 심 전고검장은 “연예인들 가운데 A씨나 B씨는 미사리 등지에서 깡패에게 맞아서 거의 죽다 살아났었다”며 “특히 A
씨의 경우 손발이 묶인 채 철봉에 달아 매였는데, 그 상태에서 조폭들이 마구 두들겨 패기도 했었다”고 전했다.

또 그는 “조폭들이 연예인들 협박하는 것 보면 정말 영화에서 나올 것 같은 수법을 쓴다”며 “서부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목만 나오도록 땅에 묻기도 한다. 말이 쉽지 직접 당하는 사람이 겪는 공포감은 얼마나 크겠는가”라고 혀를 찼다.

이외에도 조폭과 결탁해 함께 위법행위를 저지르는 연예인들도 있다.

심 전고검장은 그 예로 코미디언 D씨를 들었다. D씨는 조폭과 결탁해 각종 사업을 벌였으며 이 사업에서 얻어지는 수익의 평균 30%를 가져갔다고 설명했다. 당시 심 전고검장은 사회적 파장을 고려해 D씨를 구속하는 것 보다 조폭과의 사업에서 손을 뗄 것을 권유했다.


연예계와 조폭계는 공생관계
한편 심 전고검장은 자신이 수사했던 90년대 연예계 비리 사건을 떠올리며 “수사전까지만 해도 나는 방송가에 조폭이 그렇게까지 손을 뻗치고 있는 줄 몰랐다”며 “그렇다고 조폭이 가해자고 연예인이 피해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다 한통속인데 뜻이 안맞아 문제가 생기면 서로 자기들이 피해자라고 우긴다”고 말했다.

이는 심 전고검장만의 시각이 아니라 많은 연예 관계자들이 공통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부분이다.

한 언론사의 베테랑 연예부 기자는 “요즘에는 연예인들의 사회적 영향력이 매우 커졌기 때문에 조폭이라고 해서 인기스타에게까지 일방적으로 강요하지는 못한다”며 “이 경우는 분명 공생관계다. 하지만 그 외에는 상당수가 조폭에게 착취당하는 일을 겪는다. 때문에 데뷔 초 이런 연예계 구조와 타협하지 못하고 다른 길을 찾는 이들도 있다”고 설명했다.



김태촌 정보수집력 검찰보다 ‘한수위’

심재륜 전고검장은 김태촌 구속 당시를 떠올리면서 “그때 김태촌을 잡기 위해서는 보안유지가 관건이었다. 말 그대로 첩보전이었던 것이다”며 “검찰과 김태촌 쪽에서 서로 정보를 캐내느라 혈안이 돼 있었는데 번번이 패한 쪽은 우리였다”고 털어 놓았다.

그는 “김태촌의 정보력은 정말 우리가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며 “오늘 우리가 극비리에 회의한 내용을 내일이면 김태촌이 다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또 그는 “이런 말하기 민망하지만 검찰 내부에도 김태촌의 스파이가 있었고 경찰에도 있었다. 심지어 기자들 가운데에도 김태촌의 첩자가 있었다”며 “자꾸 정보가 새나가서 우리가 썼던 방법이 거짓 정보를 흘려 우리가 친 덫에 걸려들게 하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한편 심 전고검장은 김씨가 다시 구속된 것에 대해 “원래 우리는 김태촌에 형을 구형할 때 형량을 최대한 높게 하려했다. 그래야 조직이 완전 와해되기 때문이다”며 “하지만 사회보호법이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감안해 형을 구형했는데, 이제와 그게 폐지되는 바람에 우리 의도보다 그가 일찍 나온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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