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역대 장관 수명은 유난히 짧다. 이명박 정부도 그렇다. 이 대통령과 함께 5년을 채울 국무위원은 정종환 건설교통부장관, 이만의 환경부장관, 원세훈 국가정보원장 셋 정도다. 그나마 3년을 채울 장관은 맹형규 행정안전부 장관 하나 뿐이고, 나머지 4명은 2년 미만, 3명은 10개월, 1명은 9개월, 1명은 8개월, 3명은 6개월로 끝났다. ‘하루살이 장관’이란 말이 어울린다. 다른 나라 대통령 중심제의 각료 수명은 길다.

미국의 버락 오바마 행정부 경우 각료 임기는 거의 대통령의 임기 4년과 함께 간다. 오바마 1기 각료 15명 중 단지 2명을 제외한 13명은 4년 내내 자리를 지켜 내년 2월 오바마 1기 임기 종료에 맞춰 떠난다. 미국의 장관 임기는 길고 긴데 반해 한국 장관의 수명이 짧디짧은 데는 필시 까닭이 있다. 다음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미국 대통령은 장관을 관련 분야의 최고 전문가이거나 경험이 풍부한 원로로 선발한다. 오바마 대통령은 국무장관에 4년 전 자신의 민주당 당내 대선 라이벌 이었던 힐러리 클린턴을 임명해 지금까지 함께 가고 있다. 또한 오바마는 차기 국무장관 자리에도 2004년 민주당 대선 후보 였던 원로 존 케리 상원 외교위원장을 임명할 것으로 보도되었다.

하지만 우리나라 대통령은 전문지식과는 관련 없이 자기 말을 고분고분 잘 듣는 복종형 사람을 간택하는 경우가 많다. 장관으로서 소신을 지녔거나 국민적 신망을 받아 함부로 다루기 어려운 굴직한 인물은 기피한다. 아무리 적임자라도 머리 큰 인물은 멀리하고 관련분야 문외한이라도 자신에게 맹종할 사람을 장관으로 앉힌다.

그런 장관은 장관이 아니라 대통령의 하수인으로 전락되게 마련이다. 몇 년 전 어느 막말하기 좋아하는 야당 국회의원은 장관을 “대통령의 졸개”라고 했다. “졸개” 장관은 국정을 망치게 돼 오래 못가 쫓겨나게 된다. 그래서 한국에는 “하루살이 장관”이 양산된다. 

둘째. 미국은 대통령이 행정권한을 장관에게 전적으로 위임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대통령은 권한을 독점하기 위해 행정권한을 위임하지 않고 본인이 직접 챙기려 한다. 고질적 “제왕적 대통령” 의식 탓이다. “제왕적 대통령”은 장관을 국정운영의 동반자로 보지 않고 자기의 추종자 또는 머슴 정도로 가볍게 다룬다.

장관을 추종자나 머슴으로 여기는 “제왕적 대통령”은 장관을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지 않을 땐 머슴을 갈아대듯 간단히 바꿔치운다. ‘하루살이 장관’의 운명은 그렇게 “제왕적 대통령”의 희생물이 되고 만다.

셋째, 미국 대통령은 장관을 국정을 함께 책임질 동반자로 존중한다. 하지만 우리나라 대통령은 장관 자리를 자기 충성자에게 보은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거나 자신에 대한 충성심 경쟁을 유발하기 위한 미끼로 쓰려 한다. 예컨대 김대중 대통령은 코드가 맞고 집권에 기여한 노무현 씨를 해양수산부장관에 임명하였다. 노 장관은 해양수산 업무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인권변호사였고 학교도 상업학교를 나왔다. 그런데도 김 대통령은 그를 해양수산부장관에 임명하였다. 전형적 보은인사였고 충성심 경쟁 유발을 위한 것이었으며 종북좌익 세력에게 기(氣)를 불어넣어주기 위한 방책이었다.

요즘 대통령 후보들은 제각기 “책임 총리제” “권력 분산” 등의 구호를 외친다. 국무위원들에게 권력을 위임하겠다는 말이다. 그러나 그런 구호들은 수십 년째 대선 때면 들리던 흘러간 노래에 지나지 않는다. 차기 행정부에서는 “졸개” 아닌 소신 장관들을 얼마나 기대할 수 있을지 지켜보고자 한다. 진정한 “권력 분산”이 이뤄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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