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숙한 강도 풀스토리


인천남부경찰서는 지난 18일 명모(31)씨를 강도·강간 혐의로 체포했다. 명씨는 지난 11월부터 경기도 일대를 돌아다니며 다섯 건의 강도행위를 저질렀으며 여기에는 두건의 강간 미수도 포함돼 있었다.
특히 다섯 건의 범행 모두 TV프로그램에서 재연된 지능적 범죄를 모방한 동일한 형태의 범죄였으나 명 씨의 실력만큼은 TV프로의 범인을 따라가지 못했다. 명씨는 부동산 중개업소를 찾아가 “셋방을 구하려고 한다”고 말한 후 중개업자와 함께 방을 세놓겠다며 광고를 낸 집주인을 찾았갔다. 여자가 혼자 있는 집을 확인한 뒤 범행대상으로 삼았다. 이 후 명씨는 중개업자를 보내고, 여자가 혼자 있는 시간을 노려 강도행각을 벌였고 강간까지 시도했다.


명씨는 고등학교 2학년 때 부모님이 이혼하고 어머니의 재가에 상처를 받고 집을 나왔다. 아버지 역시 연락이 끊긴 상태. 명씨는 그 이후 생계를 위해 단순절도 행각을 벌이게 된다. 여관과 찜질방을 숙소로 삼아 식당 등지에서 일을 하다가 주인이 자리를 비운 사이에 돈을 털어 달아나는 것이 명씨의 절도 수법이었다.
단순절도로 생계를 유지하던 명씨는 결혼해서도 범행을 멈추지 않았고 결국 아내와 이혼을 하게 됐다. 이혼 후, 특별한 연고지 없이 찜질방 등지를 떠돌아다니는 명씨에게는 당장에 돈이 필요했고, 명씨는 우연히 TV에서 범인검거 재연 프로그램을 보고 모방범죄를 계획했다.

바늘 도둑이 소 도둑으로
명씨가 최초 범죄를 저지른 것은 지난 11월 21일 수원에서였다. 명씨는 세입자로 가장하고 수원의 A부동산 중개업소를 찾았다. 중개업자와 함께 집을 내놓은 집주인을 찾은 명씨는 집에 여자가 혼자 있다는 것을 확인한 후 중개업자를 보내고나서 다시 그 집을 찾아 범행을 저질렀다.
그러나 TV프로그램과 현실은 달랐다. 명씨의 범죄행위는 능숙하지 못했다. 첫 번째 범행에서 그가 한 실수(?)는 집주인의 팔을 몸 앞으로 포박했던 것. 덕분에 집주인은 전화를 이용해 손쉽게 신고할 수 있었고 명씨는 훔친 카드를 쓰다가 경찰에 신분이 노출됐다. 경찰의 수사가 시작될 것을 염려한 명씨는 11월 26일 성남으로 이동했다.
첫 범죄의 실수를 만회하려는 듯 명씨는 이후 범죄에서 포박을 등 뒤로 했으나 두 번째 범행에서는 다른 실수를 저질렀다. 성남에서 수원과 동일한 수법으로 B부동산 중개업소를 이용해 범행대상을 물색한 명씨는 여성이 혼자 있는 집을 골라 침입, 칼로 협박하고 금품을 털었다. 그러나 명씨는 집에서 벨이 울리자 당황해서 자신의 옷을 벗어놓은 채 달아났고, 범행에 이용한 청테이프도 흘리고 갔다.
이 사건을 조사한 형사는 “처음에는 치밀한 범인인 줄 알았는데 포박하는 것도 어설프고 여기저기 흔적을 남긴 것을 보고 어리숙한 강도임을 눈치챘다”며 그의 강도 행각이 오래가지 못한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돈만으론 부족해”
명씨의 이런 웃지못할 범죄행각은 다음 사건에서 극에 달했다. 성남에서 도망친 그날 저녁 명씨는 경기도 광주의 한 술집에서 40대 후반의 김모 여인을 만나게 되었다. 그녀를 유혹해 광주시내 모 여관을 찾은 명씨는 김씨를 겁탈한 후 돈을 뺏으려했다. 명씨는 김 여인이 씻으러 간 사이 여인의 지갑에서 돈을 훔치려고 했던 것. 그러나 김씨의 지갑에서 나온 것은 카드 한 장에 불과했다. 부족함을 느낀 명씨는 결국 김여인을 칼로 협박, 금품을 요구했으나 오히려 김 여인이 반항해 칼을 빼앗기고 말았다. 명씨의 칼을 빼앗은 김 여인은 곧바로 경찰에 명씨를 신고했다.
다시 도망친 명씨는 12월 4일 인천 주안의 C부동산을 찾았다. 주안에서 수원과 동일한 수법으로 방을 보러 왔다고 속여, 여주인이 혼자 있는 집을 찾아 강도행각을 벌였다. 범행에 성공한 명씨는 경찰의 추적이 눈앞에 다가 온지도 모르고 이후에도 범죄를 계속했다.

“욕정을 못 이겨… 하지만 실패”
명씨가 단순강도에서 강간범으로 돌변한 것은 지난 12월 7일 부평 사건을 통해서였다. 부동산업자의 소개로 찾게 된 부평의 한 다세대주택에서 명씨는 미모의 집주인의 얼굴에 호감을 느꼈다. 결국 명씨는 여자를 포박하고 강간을 하려했지만 주인의 반항에 미수에 그치게 되었다.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 명씨의 연쇄강도 행각은 결국 지난 12월 11일로 마무리됐다. 지문이나 소지품 등을 흘리고 다녔던 것 때문에 결국 꼬리를 밟혔다.
명씨는 인천 계양에 있는 D부동산 중개업소를 찾아가 동일한 수법으로 “셋방을 얻으려는데 집을 봤으면 좋겠다”며 중개업소를 찾았다. 명씨는 광고를 낸 집을 중개업자와 함께 방문한 후 피해자 박모(36)씨가 혼자 집에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명씨는 잠시 후에 중개업자를 먼저 보내고 혼자 박씨의 집을 찾았다.
“집을 한 번 더 보겠다”는 명씨의 말에 박씨는 아무런 의심 없이 문을 열어주었다. 명씨는, 박씨가 문을 열어주는 순간 칼을 들이대고 박씨의 옷을 벗겼다. 그러나 박씨가 “아들이 올 시간이 되었다”고 하자 당황한 명씨는 현금 25만원과 신용카드 및 귀금속 등 230만원 상당을 빼앗아 달아났다. 명씨가 지난 달 21일부터 주택 등지에서 여성들을 상대로 동일 수법으로 빼앗은 돈은 모두 1,200만원 상당.
명씨는 지난 18일 결국 제물포역 인근 한 포장마차에서 친구들과 술을 마시다 수배전단을 본 제보자의 제보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붙잡혔다.
명씨를 붙잡은 경찰은 “범인이 사람을 헤치려는 마음은 없었던 것 같다”며 “그러나 피해자 입장에서는 칼을 들이댄 것만으로도 정신적인 큰 충격을 입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번 사건은 TV나 영화를 보고 저지른 어설픈 모방범죄가 결국 돌이킬 수 없는 화로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을 깨우쳐준 웃지못할 사건으로 마무리됐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