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전 대선후보가 출정선언 66일 만에 대권 여정을 마감했다. 그의 퇴진에 대해서 ‘현실의 벽’에 막혔다는 분석과 ‘작전상 후퇴’라는 두 가지 분석이 공존한다. 안철수 본인은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를 꺾을 수 있는 유일한 후보는 자신이라고 믿었다. 따라서 야권 단일후보는 당연히 자신의 몫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상황이 꼬이기 시작했다. 문재인 후보의 추월을 허용하기에 이르러 나중에는 문 후보에게 10%포인트까지 뒤지는 결과가 나왔다. 상대적으로 실망하는 지지층 숫자가 늘어갔다. 선택의 여지가 없게 된 안철수가 차라리 명예퇴진을 통해 후일을 도모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판단을 했을 법하다.

한마디로 그는 준비가 덜 된 것이다. 그가 내세운 새 정치는 단순히 새롭다는 것을 넘어서는 어떠한 내용과 준비가 있어야 했다. 이를 위한 첫 번째 일은 역설적으로 때 묻은 정치를 철저하게 이해하는 것이었다. 알아야 극복할 수 있고 알아야 쇄신할 수 있는 것이다. 준비 없이 나섰다면 아주 무책임한 행보였다. 만약 ‘작전상 후퇴’라면 정치적 묘수에 가깝다. 극히 어려운 상황을 최상의 명분으로 돌파했기 때문이다.

어떻든 안철수를 빼놓고는 2013년 이후 대한민국 정치판을 얘기하기 어렵게 됐다. 박근혜가 집권하든, 문재인이 집권하든 간에 안철수에게 중요한 정치적 역할이 주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안철수의 전면은 대선 무대에서 내려왔지만 그의 그림자는 대선 승부를 가를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안철수 지지층이 어디로 얼마만큼 이동하느냐에 따라 양대 후보의 희비가 극명하게 갈릴 태세다. 안철수가 어떤 선택을 할지는 아직 확실치가 않아 보이나 그의 이번 선택만큼은 준비가 철저해야 될 것이다. 무거운 역사의 책임을 벗어 던질 수가 없다.

안철수 백의종군론은 민주당 문재인 후보 당선을 위해 부담 없이 힘을 보태겠다는 뜻이다. 여야 정치권은 이런 안철수의 백의종군론에 대하여 해석이 분분하다. 민주당은 확실하게 안철수를 묶기 위해 그의 흰옷을 벗기고 연두색 옷으로 갈아입힐 궁리에 차있으나 특별한 묘안이 없는 가운데 여론 압박을 기대하고 있다.

문재인 지지자들은 안철수를 지지했던 유권자 20%이상이 박근혜 지지로 넘어가고 또 20%이상이 부동층으로 변한 사실에 초조해진 문재인이 안철수와 모종의 ‘딜'을 할 것이란 기대로 그의 입만 쳐다보는 형편이다. 민주당이 더욱 ‘코너’에 몰린 것은 안철수의 사퇴로 대의에 대한 희생도, 통 큰 양보도 모두 안철수의 것이 돼버렸기 때문이다. 문재인과 민주당은 안철수를 벼랑 끝으로 내몰아 마침내 떨어뜨린 전리품 없는 승자가 됐을 뿐이다.

안철수 현상은 대선 사상 처음으로 정치쇄신 문제를 주요의제로 떠올렸고 여야 정치권의 가시적 변화를 끌어냈다. 민주당과 새누리당이 각각 새정치위원회와 정치쇄신특별위원회를 설치해 경쟁적으로 쇄신안을 내놓았다. 민주당은 이번 대선에서 지면 친노세력의 몰락이 확실해진다. 그 후폭풍은 안철수 사람들로 야권이 재편되는 상황을 충분히 만들어 낼 것이란 점에서 민주당의 안철수 그림자 쫓기는 더욱 절박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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