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정권 내 신임 청장 없이 대행체제로…정치권 촉각

▲ <사진= 정대웅 기자> photo@ilyoseoul.co.kr
차기 총장으로 유력한 인물은 바로 이 사람

비리검사-스캔들검사-항명검사 잇따른 핵펀치에 한상대(53·사법연수원 13기) 검찰총장이 결국 백기를 들고 자진 사퇴했다. 한 총장은 검·경 수사권 조정 파문으로 중도 퇴임한 전임 김준규 총장의 뒤를 이어 검찰총장직에 취임한 지 477일 만에 자리에서 내려왔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11월 30일 한 총장의 사의를 수용해 즉시 사표를 수리했다.

한 총장은 이날 오전 10시 서울 서초동 대검청사 15층 회의실에서 사퇴발표 기자회견을 하고 약 1분간 짧은 사퇴의 변을 밝힌 후 곧바로 청사를 나왔다. 기자회견장에는 대검 대변인과 기획과장, 운영지원과장만 배석했으며 검사장급 대검 간부는 참석하지 않아 침울한 검찰 내부 분위기를 반영했다.

기자 회견에서 한 총장은 “최근 검찰에서 부장검사 억대 뇌물 사건과 피의자를 상대로 성행위를 한 차마 말씀드리기조차 부끄러운 사건으로 국민 여러분께 크나큰 충격과 실망 드린 것에 대하여 검찰총장으로서 고개 숙여 사죄를 드립니다”라고 말하고 단상에서 나와 허리를 숙였다.

한 총장이 물러나면서 포스트 한상대에 대한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그러나 총장 인선과 관련해 청와대 검찰 정치권 모두 여론의 눈치를 살펴야 하는 상황이다. 인선이 검찰 개혁의 부정론으로 이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 총장은 그동안 보인 자리에 대한 집착 없이 ‘조건 없는 사의’를 표명했다. 청와대에 신임을 묻겠다는 문구도 없었다. 한 총장은 애초 이날 오후 2시 검찰 개혁안과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고 ‘신임을 묻기 위해’ 사표를 제출할 예정이었다.

최근 잇따라 터진 사상 초유의 검사 비리에 대한 검찰 총수의 대국민 사과는 예정대로 포함됐다.

총장이 조건 없이 떠나는 배경에는 물러날 총장이 개혁안을 발표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내부 반발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 ‘조건부 사퇴’가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자 개혁안 발표를 취소하고 조건 없는 사퇴로 뜻을 바꾼 것으로 알려졌다.

한 총장은 역대 11번째로 중도 퇴진한 검찰 총수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검찰은 후임 총장이 임명될 때까지 채동욱 대검 차장의 직무대행체제로 돌입하게 된다. 청와대 주변에서는 차기 총장을 두고 여러 말이 돌고 있다. 하지만 연말 대선을 앞두고 이 대통령이 후임 총장을 임명할 가능성이 거의 없어 총장 직무대행제제는 새 정부가 후임 총장을 임명할 때까지 최소 4개월간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항명사태 개혁 신호탄되나

검찰이 초유의 항명사태로 총장까지 옷을 벗은 가운데 정치권은 차기 검찰총장이 누가 될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일단 검찰 안팎의 시선은 이명박 대통령의 선택에 쏠리고 있지만 청와대는 차기 총장 인선과 관련해 침묵을 지키고 있다. 당분간 총장 없이 대행체제로 갈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지만 청와대 주변에서는 “이미 총장에 적합한 인물을 고르고 있으며 몇몇 후보가 도출된 상태”라는 말도 나오고 있다.

검찰 내부에서는 대선정국을 총장 대행체제로 가는 것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일선 검사들의 사기저하 뿐 아니라 책임감 있는 윗선의 결단을 기대하기 어렵지 않겠느냐는 시각이 적지 않아서다.

또 검찰 개혁과 관련한 요구가 커지고 있는 상황에 이를 전적으로 견인할 수장이 없다는 것은 검찰에 대한 비판을 장기화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대로 검찰이 아무런 변화 없이 그대로 갈 경우 국민적 불신과 더불어 내부적 분열을 방치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시각이 일선 검사들의 시각이다.

대선을 코앞에 두고 검찰 수장자리가 공석이 되는 것을 두고도 여러 말들이 나오고 있다.
검찰 일각에서 “정권이 교체되는 시점에 수장이 없다는 것은 조직에 치명타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선거사범에 대한 수사뿐 아니라 정권교체 후 주요 정치비리 의혹 수사에 차질이 발생할 수도 있어서다.

차기 총장 막대한 부담 질것

이 대통령은 지난 11월 29일 권재진 법무부 장관으로부터 관련 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당분간 권 장관이 중심이 되어 사태를 조속히 수습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소식통에 따르면 청와대 핵심부는 후임 검찰총장의 인선에 대해 차기 정권으로 넘길 수밖에 없다는 판단을 내린 상태다. 현 시점에선 이 대통령의 측근으로 통하는 권 장관 외에 이번 사태를 조율할 적임자가 없어 청와대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검찰이 흔들릴 경우 얼마 남지 않은 임기 동안 국가 치안에 위기가 초래될 수 있어 청와대 내부에는 위기감이 감돌고 있다.

검찰이 대행체제에서 내홍을 앓고 있는 동안 여러 중요 수사와 재판에도 차질이 빚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최태원 SK회장 등에 대한 재판과 권혁 시도상선 회장의 재판이 진행되고 있다. 이외에도 이상득 전 의원이나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 등에 대한 재판도 남아 있다. 지금과 같은 내홍이 계속될 경우 검찰이 이 재판에서 얼마나 역량을 발휘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고 여론이 수사보다 내홍에 관심을 둘 경우 제대로 처벌이 이뤄질지도 미지수다.

검찰 주변에서는 차기 검찰 총장에 대한 후보가 구체적으로 거론되고 있다. 검찰총장 자리는 대부분 대검차장, 고검장 5명, 법무연수원장, 서울중앙지검장, 법무부차관 테두리 내에서 결정된다.

이중 광주지검장은 현재 공석으로 배제되고 나머지 8명이 검찰총장 후보군으로 꼽힌다. 이들 중 사법연수원 14기는 채동욱 대검차장(59년-서울), 김진태 서울고검장(52년-경남진주), 김학의 대전고검장(56년-서울), 노환균(57년-대구) 4명이다.

15기는 소병철 대구고검장(58년-전남 순천), 김홍일 부산지검장(56년-충남예산), 최교일 중앙지검장(62년-경북 영주), 길태기 법무부차관(58년-서울) 4명이다.

검찰 동향에 밝은 한 소식통에 따르면 노환균 연수원장은 총장이 되기에 쉽지 않다. 정치권에서 노 원장은 ‘MB정부의 나팔수’로 인식돼 있기 때문이다. 최교일 중앙지검장은 나이에서 밀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나머지 6명 중 여야당과 두루 관계가 좋고 내부 신망이 좋은 인물은 14기 채 차장이라는 게 검찰 소식통의 전언이다. 하지만 차기 정권 교체 또는 정권 재창출을 고려하면 다른 인물이 총장이 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한편, 민주당 문재인 캠프에서는 차기 법무부장관을 사법개혁을 주도할 당내 인물로 배치할 계획을 갖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문 후보는 검찰에 대해 뿌리 깊은 불신을 갖고 있으며 집권 시에는 연공서열 등 기존의 검찰체제를 대폭 바꾸겠다는 의지가 강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나일산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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