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은 알려진 것처럼 양계장 분쇄기에 의해 죽지 않았다. 우리는 김 전 부장의 암살과 관련된 시사저널, MBC와 KBS PD수첩 등 일련의 보도를 모두 지켜봤다. ‘사실이다’ ‘아니다’ 각각의 주장이 다른데 간과하고 있는 사실이 하나 있다. 김형욱은 100kg이 넘는 거구다. 일반 양계 농가에서 사용하는 분쇄기에는 그런 거구를 집어넣을 수가 없다. 한 사람의 주장에 매달려 유력 방송사가 비싼 경비를 들여 프랑스 현지에까지 출장을 다 가고…참 어이가 없다. 재차 말하지만 김형욱은 양계장 따위에서 최후를 맞지 않았다.”<일요서울>은 최근 논란을 빚고 있는 일부 언론의 김형욱 암살보도와 관련, 새롭고도 충격적인 증언을 확보했다. 증언을 한 이는 김형욱 실종 당시 중앙정보부에 적을 둔 TK 출신인사 A씨다.

김형욱 전 부장이 파리에서 실종되고 정확히 19일 뒤 10· 26이 터졌다. 그리고 두 달이 채 못돼 중앙정보부는 국군보안사령부에 의해 접수 당한다. 이때 중정에 몸담았던 상당수의 간부급 인사가 조직에서 내몰렸고 인사상 불이익을 당했다. A씨는 그러나 당시 상황으로서는 매우 드물게 승진했다. 뿐만 아니라 A씨는 자신이 원하는 보직으로 소리없이 이동했다. A씨는 김 전 부장이 실종될 당시 중정 내에서 어떤 직책을 맡고 있었는지, 그 뒤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에 대해 밝히기를 거부했다. 게다가 자신의 이름 석자가 공개되는 것조차 완강히 거부했다. 그러나 <일요서울>의 끈질긴 설득 끝에 A씨는 자신의 신분을 공개하지 않는 것을 전제로 김 전 부장의 실종과 관련된 몇가지 중요한 사실을 증언했다.

다음은 A씨와 나눈 일문일답 내용이다.
-“최근 김형욱 전 중정부장의 암살을 다룬 시사저널의 보도가 나간 뒤 사실 여부를 놓고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시사저널을 통해 중앙정보부에서 양성한 특수 비선 공작원이라고 정체를 밝힌 이 아무개씨는 ‘김 전부장을 프랑스 파리 외곽 4km 지점의 외딴 양계장 분쇄기에 집어넣어 닭모이로 처리했다’고 주장해 파문을 일으켰다. 이 주장이 사실인가.”▲“그전에 내가 먼저 묻고싶다. 양계장 분쇄기에 대해 자세히 알아봤는가. 양계장에서 쓰는 분쇄기는 입구부터 아래로 내려갈수록 좁아진다. 게다가 김형욱은 1백kg이 넘는 거구다. 그런 거구를 토막내어 집어넣지 않고는 절대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런데 보도를 보면 김형욱을 머리부터 집어넣어 부숴버렸다고 했다. 한마디로 말해 가당치도 않은 소설같은 얘기다.”

-“그렇지만 프랑스로 통하는 침입 루트나, 납치 당시 상황 묘사를 보면 단순히 소설로만 봐 넘기기 어려운 상당히 구체적인 진술이 엿보인다. 이 때문에 김 전 부장을 그같은 방법으로 살해했다는 이씨의 주장에 신빙성이 있다고 보는 견해도 있는데.”▲“물론 그 사람 주장이 다 틀린 건 아니다. 자세히 다 밝힐 수는 없지만 주장한 것 가운데 20퍼센트 정도는 맞다. 하지만 나머지는 다 소설이다.”

-“구체적으로 밝혀달라. 맞다는 대목은 어떤 것이고, 나머지가 모두 소설이라고 단정하는 근거는 무엇인가.”▲“그 사람 주장 중에, 79년 초 밤에 청와대 별관에 불려가 박정희 대통령께서 술잔을 따라주며 다른 아무 말없이 그냥 ‘나쁜 놈이로구나’하며 통탄했다는 대목을 봤다. 한마디로 기가 막히다. 마치 조폭 두목이 살인 교사를 할 때 고별주 주면서 용기를 심어주는 그런 장면을 연상시킨다. 청와대를 조폭집단처럼 묘사한 것은 그렇다손 치자. 그렇지만 박 대통령이 어떤 분인가. 냉정할 정도로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분이 그런 식으로 표현했겠는가. 그런 건 조폭들이나 하는 짓이지 국가 원수가 말단 행동대원을 불러 술을 하사하는 따위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이씨는 왜 자신이 김 전 부장을 직접 살해했다고 주장하는가.”▲“모른다. 분명한 것은 그가 김형욱 암살에 직접 관련이 없다는 건 증언할 수 있다. 한가지, 짐작컨대 그 사람이 양계장 분쇄기 이야기를 꺼낸 것을 보면, 암살 계획의 일부는 들은 것 같다. 하지만 그는 결코 실행조가 아니다.”

-“암살 계획이 따로 있었나. 어떤 내용이었나.”▲“도합 3가지 방안이 있었다. 제 1안은 생째로 납치해 차지철 경호실장 앞으로 끌고 오는 것이었다. 항간에는 박대통령 앞으로 끌고왔다는 소문도 있는데 사실이 아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1안을 추진하다가 벽에 막혀버린 것이다. 어떻게든 뚫어보려고 했지만 도저히 방법이 없었다. 무리해서 감행할 경우 자칫 국가간 큰 외교문제가 발생할 판국이었다. 그래서 불가능하다고 보고하자, 차 실장이 길길이 뛰었다. 당장 눈 앞에 끌고오라고 난리를 쳤다. 하지만 결국 그도 그 방안을 포기했다. 그 다음으로 검토된 안이 현지에서 제거하는 방법이었다. 양계장 분쇄기를 이용하는 방법도 이때 나왔다. 그러나 이 방법은 문제점이 많았다. 분쇄기에 넣어 처리하려면 구조상 토막내어 처리할 수밖에 없었는데 소요되는 시간뿐 아니라 흘린 피로 흔적이 남을 수 있어 과감히 포기했다. 결국 김형욱을 제거한 것은 마지막 제 3안이었다.”

-“구체적으로 밝혀달라. 제3안은 어떤 방법이었나.”▲“말할 수 없다. 아마 계획을 실행한 인물들이 무덤에 간 뒤에도 영원히 묻혀질 것이다.”

-“김 전 부장의 최후는 어떤 모습이었나.”▲“처참한 최후였다. 그렇게 알고 있다.”

-“배우 최지희씨에 대해서도 논란이 많다. 김 전 부장의 유인책으로 동원됐다, 본인은 ‘아니다. 그런 사실 없다’고 주장하고 있는데.”▲“최지희씨는…(이 부분에 대해 A씨는 말하기를 망설였다) 우리 조직 용어로 ‘망’ 차원이었다. 그렇다고 오해하지 말라. <시사저널>의 보도가 맞다는 뜻은 아니다. 최지희씨 역시 할 말이 많을 것이다. 여기까지만 밝히겠다. 그리고 김형욱은 동원된 여배우가 누가 됐든 여자보다는 돈이 목적이었다.”

-“김 전부장 제거에 A씨 본인도 관련됐나.”▲“말할 수 없다.”

-“지금까지 밝힌대로라면 결국 김형욱 암살 지시를 내린 인사는 김재규 부장이 아니라 차지철 실장이라는 얘긴데, 차 실장이 왜 자기 휘하가 아닌 중정조직을 끌어들여 지휘했나.”▲“그걸 이해하려면 당시 최고 권력자의 심중을 읽어야 한다. 뇌관같은 존재였던 김형욱의 처리를 놓고 김 부장은 돈으로 해결하려 했고, 차 실장은 행동으로 해결하려 했다. 이상이다. 더 묻지 말라.”

-“김 전 부장이 실종된 지 사반세기가 지났다. 유가족들을 생각해서도, 과거사 진상규명을 위해서도 이제는 밝힐 때가 됐다고 본다. 김 전 부장의 실종과 관련해 국가기관 어느, 어느 곳이 동원됐는지, 또 명령을 받고 실행에 나선 이는 어떤 인물들인지 많은 국민들이 궁금해한다. 진실을 밝혀달라.” ▲“아직은 때가 아니다. 얘기하고싶지 않지만, 그때 그 일에 가담했던 조직원 가운데 한 사람은 우울증에 걸려 지금까지 줄곧 고통을 받고 있다. 그런 처지의 사람도 있다는 것만 알아 달라.”

“100kg 넘는 거구가 어떻게…”

전문가들 한결같이 ‘불가능’…A씨 증언과 일치<사진2>A씨는 대화를 나누는 동안 내내 말을 아끼는 표정이 역력했다. 그러면서도 김 전부장 실종과 관련해 여러 가지 여운을 남기는 말을 했다. 특히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양계장 분쇄기에 의한 살해’ 보도와 관련해서는 허구라고 강하게 못박았다. 이에 <일요서울>은 양계장 분쇄기에 의한 살해가 가능한지 국내외 전문가들을 상대로 집중 취재했다. 그 결과 전문가의 설명과 A씨의 증언이 그림을 그린 듯 일치했다. 곡물 분쇄기 판매업체인 삼우기계 정보균 대표는 “100kg가 넘는 거구가 들어갈만한 곡물 분쇄기가 있다. 그러나 사람이 들어갈만한 것은 산업용밖에 없다”면서 “이같은 기기는 가격만 수억원에 달하기 때문에 일반 농가에서 사용하기에는 적절치가 않다”고 지적했다.최근 ‘곡물분쇄기의 특허기술 동향’을 조사한 김황경 한국특허정보원 조사분석 2팀장도 비슷한 의견이다.

그는 “내가 모르는 대용량 기기가 등록돼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상식적으로 볼 때 이해가 가지 않는다”면서 “곡물분쇄기는 입구가 크지만 아래로 갈수록 좁아지는 구조로 돼있다. 김형욱씨의 몸무게가 100kg이 넘는다면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고 조심스런 의견을 게재했다. 한국양계협회의 경우 아예 노골적으로 반발한다. 협회 관계자는 “우리도 보도를 봤다. 내용으로 볼 때 랜더링 기계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그러나 이치적으로 이모씨의 주장이 전혀 맞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는 “랜더링 기계는 보통 동물의 뼈를 세밀하게 분쇄해 사료를 만들 때 사용한다. 보통 3~4kg 정도의 노계나 중계를 사용한다. 그 이상이 되면 기계에 부하가 걸린다”면서 “김형욱씨의 몸무게가 100kg이 넘는다면 수십토막으로 나누지 않으면 불가능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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